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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성립과 수용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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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G3717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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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는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에 대한 성립과 이에 대한 전승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갖는 정치문학적 의미를 살피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 내용을 크게 (1) 신숭겸에 대한 역사적 행적, (2) 신숭겸의 문학적 초상화 성립, (3)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수용 양상, (4)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전승 의미 등으로 두어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고찰하기 위해 신숭겸과 관련된 유적과 문헌들을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각 내용별 연구에 따라 역사실증적, 작가전기적, 어석해석적, 거시문학사적 방법론 등을 활용하고자 한다. 각 내용별 연구 내용, 추진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신숭겸에 대한 역사적 행적’에서는 유적지 및 문헌 자료를 활용하여 신숭겸의 역사적 행보를 왕건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것이다. 그는 왕건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래 주군인 궁예를 제거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자 그는 왕건과 함께 신라를 구하자고 대구 공산에서 전투를 벌이다 왕건이 죽게 되자 대신 죽었다. 왕건을 추대한 공로로 1등 공신에 오르고,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으나 공산에서 사망하였던 것이다. 그가 죽은 뒤 왕건으로부터 절개 있는 충신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이면을 보면 그는 쿠데타의 선봉자요, 패전하여 전사한 무인에 불과하였다.
      ‘(2) 신숭겸의 문학적 초상화 성립’에서 예종 대의 정치외교사에 주목하여 신숭겸의 문학적 초상을 살필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국정 난맥에 시달리던 예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충의로운 무인을 찾았다. 왕건으로부터 물려받은 충성의 장군, 신숭겸을 문학적으로 가공하여 대내 갈등 관계에 있던 개경 세력에 경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도이장시>와 <도이장가>이다. 이 노래들은 신숭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철저히 걷어내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자, 군왕에 절대적 충성을 다하는 자로 포장한 다음 현재의 신료들에게 본받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신숭겸은 서경에서 왕건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로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3)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수용 양상’에서는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주목하여 살필 것이다. 고려 예종 대 가공된 신숭겸의 이미지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신숭겸에 대한 숭배는 사당과 서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정조는 그에 대한 치제시를 짓기도 하였다. 정조가 신숭겸에 관심을 갖고 문학적 초상화를 그린 것은 고려 예종이 그랬던 것처럼 정국 운영을 위한 방도로 선택한 것이다. 다만 정조의 치제시는 예종과 다른 차원에서 신숭겸을 포장하고 있다. 예종이 신숭겸을 ‘서경’에 두어 왕권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초상을 그렸다면 정조는 신숭겸을 동아시아의 보편적 충렬지사로 승격시키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우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4)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전승 의미’에서는 군왕에 의해 형성된 문학적 초상이 정치 문학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살필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역사적 평가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고 다듬는 가운데 우리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형상화된 인물상은 다양한 평가가 차단된 채 무비판적으로 전승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는 문학의 존재 가치를 흔들기도 한다. 게다가 형상화 된 인물의 행위가 공동체의 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욕망을 위한 강요된 희생일 때 그 위험성은 심각하다. 결국 예종과 정조는 문학 작품을 통해 신숭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거한 채 ‘절개’, ‘충의’의 옷을 입혀 군주를 위한 죽음을 찬양하고 선동했으므로 그들의 작품은 역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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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는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에 대한 성립과 이에 대한 전승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갖는 정치문학적 의미를 살피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 내용을 크게 (1) 신...

      이 연구는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에 대한 성립과 이에 대한 전승 과정을 통해 그것이 갖는 정치문학적 의미를 살피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 내용을 크게 (1) 신숭겸에 대한 역사적 행적, (2) 신숭겸의 문학적 초상화 성립, (3)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수용 양상, (4)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전승 의미 등으로 두어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고찰하기 위해 신숭겸과 관련된 유적과 문헌들을 조사하고 분석하면서 각 내용별 연구에 따라 역사실증적, 작가전기적, 어석해석적, 거시문학사적 방법론 등을 활용하고자 한다. 각 내용별 연구 내용, 추진 전략은 다음과 같다.
      ‘(1) 신숭겸에 대한 역사적 행적’에서는 유적지 및 문헌 자료를 활용하여 신숭겸의 역사적 행보를 왕건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재구성할 것이다. 그는 왕건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래 주군인 궁예를 제거하고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자 그는 왕건과 함께 신라를 구하자고 대구 공산에서 전투를 벌이다 왕건이 죽게 되자 대신 죽었다. 왕건을 추대한 공로로 1등 공신에 오르고, 평산을 식읍으로 받았으나 공산에서 사망하였던 것이다. 그가 죽은 뒤 왕건으로부터 절개 있는 충신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이면을 보면 그는 쿠데타의 선봉자요, 패전하여 전사한 무인에 불과하였다.
      ‘(2) 신숭겸의 문학적 초상화 성립’에서 예종 대의 정치외교사에 주목하여 신숭겸의 문학적 초상을 살필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국정 난맥에 시달리던 예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충의로운 무인을 찾았다. 왕건으로부터 물려받은 충성의 장군, 신숭겸을 문학적으로 가공하여 대내 갈등 관계에 있던 개경 세력에 경계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이 <도이장시>와 <도이장가>이다. 이 노래들은 신숭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철저히 걷어내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자, 군왕에 절대적 충성을 다하는 자로 포장한 다음 현재의 신료들에게 본받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신숭겸은 서경에서 왕건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자로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3)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수용 양상’에서는 조선 후기 정조 대에 주목하여 살필 것이다. 고려 예종 대 가공된 신숭겸의 이미지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신숭겸에 대한 숭배는 사당과 서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정조는 그에 대한 치제시를 짓기도 하였다. 정조가 신숭겸에 관심을 갖고 문학적 초상화를 그린 것은 고려 예종이 그랬던 것처럼 정국 운영을 위한 방도로 선택한 것이다. 다만 정조의 치제시는 예종과 다른 차원에서 신숭겸을 포장하고 있다. 예종이 신숭겸을 ‘서경’에 두어 왕권을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초상을 그렸다면 정조는 신숭겸을 동아시아의 보편적 충렬지사로 승격시키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우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4) 신숭겸에 대한 문학적 초상의 전승 의미’에서는 군왕에 의해 형성된 문학적 초상이 정치 문학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가를 살필 것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는 역사적 평가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생각들을 나누고 다듬는 가운데 우리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가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형상화된 인물상은 다양한 평가가 차단된 채 무비판적으로 전승되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는 문학의 존재 가치를 흔들기도 한다. 게다가 형상화 된 인물의 행위가 공동체의 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욕망을 위한 강요된 희생일 때 그 위험성은 심각하다. 결국 예종과 정조는 문학 작품을 통해 신숭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거한 채 ‘절개’, ‘충의’의 옷을 입혀 군주를 위한 죽음을 찬양하고 선동했으므로 그들의 작품은 역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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