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朝 開國初에 해당하는 太祖, 定宗代의 불교정책은 과도한 불교팽창으로 인해 시행된 麗末의 抑佛策을 답습한 경향이 짙다. 태조대의 불교정책은 儒臣들이 주장한 강경한 억불책보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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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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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朝 開國初에 해당하는 太祖, 定宗代의 불교정책은 과도한 불교팽창으로 인해 시행된 麗末의 抑佛策을 답습한 경향이 짙다. 태조대의 불교정책은 儒臣들이 주장한 강경한 억불책보다는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불교의 폐단을 시정하려는 입장이었다. 태조6년 7월의 전국사원에 대한 통제책은 사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의 폐해를 근절시키고자 한 조치로서 후대 太宗, 世宗初 寺院施策의 토대가 되었다. 定宗代의 불교정책 또한 태조대와 같이 불교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불교계가 끼친 사회적 폐해를 시정하려는 입장이었다.
朝鮮開國 후에도 고려조의 불교가 계승되어 간 사실은 麗末을 대표하는 사원인 演福寺, 檜巖寺, 敬天寺, 廣明寺 등이 새 王室의 보호를 받으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데에서 잘 나타나 있다. 고려 恭讓王 때 중창된 연복사는 조선 개국 이후에도 國刹로 기능하며 免稅의 대상이었고, 麗末 東國第一의 사찰로 이름난 회암사는 태조 재위 중에 王師 無學自超가 주지하며 왕실을 위한 많은 佛事를 열며 각별한 보호를 받은 사원이었다. 여말의 王室願堂이었던 경천사, 광명사 모두 개국초에 왕실원당으로 기능하며 여말의 전통과 그 위상을 계승하였다.
太宗代의 사원시책은 전국사원에 대한 經濟的 탄압을 가하며 公認寺院을 일정수로 제한하여 불교 세력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하였다. 태종초에는『密記』나『踏山記』에 실린 사원, 常住僧 100명 이상의 大寺刹, 太上王인 太祖와 친밀한 사원은 보호하되, 그 외의 사원은 革罷하는 시책이었다. 이것이 태종6년에 더욱 구체화 되어 11개 宗派 소속의 242寺를 公認寺院로 결정하였고, 다음 해에 7개 종파의 名刹 88寺가 資福寺로 지정되어 242사에 포함되었다. 태종대의 강경한 사원시책에 의해 많은 사원이 경제적 탄압을 받으며 혁파되어 갔지만, 그 이면에는 고려조 이래의 전통적인 불교종파가 인정된 채 전국의 명찰이 資福寺로 지정되어 보호받게 되었고, 예외적으로 보호 대상이 된 사원도 있었다. 특히 자복88사를 지정한 것은 당시 승려들의 불만을 수용하며 일정한 범위 내에서 古來의 전통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종대의 사원시책은 이후 世宗代에 더욱 강화되어 세종6년에 禪敎 36寺로 일단락되었다. 태종대의 7개 종파가 선교 兩宗으로 축소되고 36사만이 공인사원으로 결정된 것이다. 선교 36사 중 新舊都, 京畿 지역에 소재한 17寺 대부분은 陵墓 곁에 자리한 齋宮을 위시하여 왕실의 喪禮와 祭禮를 거행한 원당이었고 또 일부는 水陸社 사원이었다. 그 外의 지방사원 역시 왕실원당의 범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고, 수륙사 사원이거나 大藏經과 같은 국가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소장한 사원이었다. 세종초의 선교 36사 선정에는 水陸齋를 정기적으로 여는 수륙사 사원, 王陵 인근에 위치한 재궁, 또는 산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한 명찰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조선초의 대표적인 왕실원당으로는 재궁과 이와 유사한 형태의 사원인 宮城 내의 內願堂이 있었다. 조선초의 재궁에는 貞陵의 興天寺, 齊陵의 衍慶寺, 健元陵의 開慶寺, 厚陵의 興敎寺 등이었고, 이들 사원은 모두 세종초의 선교 36사에 속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원래 궁궐 내에서 佛道를 닦는 佛堂인 내원당은 개국초에도 그대로 존립하였다가 태종5년 漢城 還都 후에는 昌德宮 내의 仁昭殿 곁에 세워졌다. 내원당은 인소전이 文昭殿으로 개명된 후에도 그대로 존속하였고, 문소전이 세종14년 景福宮 내의 原廟로 이전해 가면서 철거되었다. 이것이 세종30년에 경복궁 내의 內佛堂으로 복구되었다. 또 조선초를 대표하는 사원으로「世宗實錄地理志」에 실린 52寺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 52사 중 31사는 선교 36사에 속한 사원이었다. 그 外 21사는 비록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 공인사원에서 제외되었지만, 대체로 유구한 역사와 전설을 자랑하는 古刹이거나 훌륭한 문화유산을 소장한 사원이었다.
연구결과 조선초의 사원연구 1. 서론 2. 開國初의 佛敎政策과 주요寺院 1) 開國政府의 佛敎政策 2) 開國初의 7寺 3. 太宗, 世宗初의 寺院施策과 公認寺院 1) 太宗初의 사원시책...
연구결과
조선초의 사원연구
1. 서론
2. 開國初의 佛敎政策과 주요寺院
1) 開國政府의 佛敎政策
2) 開國初의 7寺
3. 太宗, 世宗初의 寺院施策과 公認寺院
1) 太宗初의 사원시책
2) 太宗6,7년의 사원시책과 資福88寺
3) 世宗初의 사원시책
4) 禪敎 36寺
4. 朝鮮初의 주요 王室願堂과 전국寺院
1) 齋宮과 內願堂
2)「世宗實錄地理志」의 52寺
5.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