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은 1920년대 목포극장 개관과 이후 일련의 시각적 이벤트(events)의 사회사적 의미를 분석하여 식민지 근대문화 감각의 지역성을 규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핀 내용은 목포극장 설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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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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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1920년대 목포극장 개관과 이후 일련의 시각적 이벤트(events)의 사회사적 의미를 분석하여 식민지 근대문화 감각의 지역성을 규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핀 내용은 목포극장 설립과 ...
논문은 1920년대 목포극장 개관과 이후 일련의 시각적 이벤트(events)의 사회사적 의미를 분석하여 식민지 근대문화 감각의 지역성을 규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핀 내용은 목포극장 설립과 공진회 개최, 근대 도시문화의 등장, 목포극장의 지역성, 도시화와 서커스 공연의 연관성 그리고 이에 대한 지역민의 수용과 감각의 변화 등이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1920년대 목포는 이중적 의미의 식민지 지방(peripheral) 도시로 발견되는 과정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관한 목포극장은 일제의 지배 아래 조선인 공론을 형성하는 장소로서의 상징적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오락장으로서의 목포극장은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흥행성이 높고 구매력이 높은 일본인 대상의 프로그램을 구성하게 되었다. 목포극장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종족(ethnic)의 경계를 넘어서는 혼종의 문화 공간이 되었다.
목포극장에서 보는 바, 식민적 근대문화의 혼종적 성격은 당대 극장 밖에서 대중의 인기를 누린 서커스(circus) 공연에서도 발견되었다. 서커스는 인종 및 종족과 국적, 성별과 연령 그리고 계층의 경계를 넘어서며 관객에게 수용되었다. 1926년 목포극장이 개관한지 일 년 후인 1927년, 조선인 빈민과 ‘유랑’하는 일본인 하류층의 혼거지(混居地) 호남동에서 ‘동춘서커스(동춘연예단)’가 첫 선을 보였다. 식민지 조선의 최초 서커스 단체 동춘서커스는 조선의 토착 문화, 식민 서사 그리고 대중오락의 교차 지점을 보여주는 혼종의 영역이었다. 혼종성은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을 이해하는 절대적인 키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