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조의 도가관 : 정조의 도가 논의의 내용을 조사하고, 관점, 평가, 수용성을 연구한다. : 조선후기는 어느 때보다 주자학적 정치이념이 체제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던 시대였지만, 역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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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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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조의 도가관
: 정조의 도가 논의의 내용을 조사하고, 관점, 평가, 수용성을 연구한다.
: 조선후기는 어느 때보다 주자학적 정치이념이 체제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던 시대였지만, 역설적으로 주자학 이외의 제자학과 양명 불교 서학 등에 대한 사상적 요구가 거셌다. 이는 구체제의 모순과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시대정신의 모색일 것이다. 정조 역시 도가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는 도가를 노장, 청담, 황로, 신선도교 등으로 분류하였다. 도가의 단점은 유학의 도덕과 공적 원리성이 무시되고, 사사로운 견해와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노자와 도가 역시 세상을 위하고자는 것이며, 명실名實과 공리功利에 장점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2) 정조의 황로정치관
: 황로도가에 대한 정조의 정치적 관심과 평가, 관심의 의도를 분석한다.
: 정조가 이해하는 노자철학은 대부분 황로사상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노자 자체에 내재된 강한 정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소론을 중심으로 수기치인의 도덕반성으로 이해되었던 것과는 분명 차별적인 현상이다. 아마도 정조에게는 노자를 황로사상으로 해석하려고하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정조의 강한 통치권력에 대한 추구는 황로적 무위(淸靜無爲)로 에둘러 표현되었으며, 실제적으로는 신권을 통제하는(君無爲而臣有爲) 강력한 법제의 강제성을 구축하려고 하였다. 이 두 가지는 바로 황로사상의 핵심 정치이론이며, 정조의 제왕학의 중요한 내용이다.
(3) 정조의 한대정치론
: 정조가 이해하는 한대정치의 내용을 파악한다.
: 정조는 문경지치가 황로사상에 의해 성공적으로 운영된 정치였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그는 기본적으로 황로사상이 노장에 근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한대의 황로정치에는 유교 체제사상이 그 바탕에 놓여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노장보다 황로사상을 더 높이 평가하는 측면이 있는데, 황로를 유가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정조의 의도가 엿보인다.
(4) 정조의 성리학적 정치철학과 탕평정치
: 정조의 탕평정치의 일단이 황로사상과 관련지을 수 있음을 추론한다.
: 정조의 통치권력에 대한 강한 추구는 탕평정치로 구체화되는데, 탕평정치를 통해 신권을 통제하는 강력한 법제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또한 이념의 확립에만 구애되지 않고 정치의 현실적 작동방식을 용인했다. 이러한 측면은 황로사상의 핵심 정치이론인 황로적 무위나 순명책실循名責實과 상통점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정조가 노자를 황로사상으로 해석하고, 황로를 유교적 지평으로 옮겨 세우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것은 아마도 납득 가능한 일이다. 정조는 탕평정치의 현실논리 위에서 성리학적 정치이념과 현실적으로 효율적인 권도權道적 정치운영의 균형을 잡으려고 하였다. 이념적으로는 성리학의 도덕을 신민이 내면화하도록 하고 체제제도적으로는 강제적 법의 형식을 강제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전제의 방식일 것이다. 황로사상은 권도의 일환으로 그의 성리학 이념 확립과 충돌하지 않도록 자리매김된 것으로 보인다.
(5) 노론의 무위론과 노자관
: 노론 신료들이 정조에게 요구한 무위론의 성격과 성리학적 군신관계를 살펴보고, 정조의 정치사상과의 간격을 추론한다.
: 정조는 성리학적 군주론을 내세우면서 표면적으로는 신료의 정치적 역할과 권한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군사, 성인 군주로서 강한 통치력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황로사상은 법가의 형명론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군왕중심의 관료주의적 경향을 부채질하였다. 노론은 정조의 왕권중심적 순명책실적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요순의 무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한 무위는 사실 군왕의 적극성을 부정하는 도가적 무위에 다름 아니다.
(6) 주요 학파‧학자와의 사상적 영향 관계
: 주요한 학자 학파들의 사상을 검토하여 정조의 정치사상과의 계보관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 정조는 개혁군주로서 시대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상 조류에 민감하였고, 또 그 스스로 시대정신을 주도하고자 하였다. 이와 관련된 사상적 관계들을 살펴보고 사상적 지형도를 구성해보고자 한다.
대표적으로는 조성기와 홍대용의 한대정치론, 박지원의 한송절충론, 정약용의 강한 군주론 등을 들 수 있다. 정약용은 당대의 정치개혁을 위한 이론적 기초로서 ‘유위 대 무위’의 대결국면을 형성하고, 무위론을 기존의 신권중심적 정치 정세의 이론 기초로서 지목하면서 그것의 부당성을 훈고학적으로 비판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