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동모산에서 가까운 옛 고구려 영역을 확보한 데 이어 武王 이래로 주로 동북 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靺鞨諸部를 복속해 나갔다. 사료상 확인되는 9세기 발해의 영역은 대체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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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133-170(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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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발해는 동모산에서 가까운 옛 고구려 영역을 확보한 데 이어 武王 이래로 주로 동북 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靺鞨諸部를 복속해 나갔다. 사료상 확인되는 9세기 발해의 영역은 대체로 동...
발해는 동모산에서 가까운 옛 고구려 영역을 확보한 데 이어 武王 이래로 주로 동북 방면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靺鞨諸部를 복속해 나갔다. 사료상 확인되는 9세기 발해의 영역은 대체로 동남쪽으로는 泥河 즉 용흥강을 경계로 신라, 서쪽으로는 요하 상류를 경계로 거란, 그리고 북쪽으로는 송화강 하류를 경계로 흑수말갈과 접하였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연해주 지역까지 차지하였다. 서남쪽으로 압록강 하류의 泊?口까지 미쳤다.
698년 발해의 건국을 전후하여 안동도호부는 안동도독부로 축소되었고, 얼마후 복치된 안동도호부는 요서지역에 줄곧 존속하다가 757년 이후 폐지되었다. 그 이후 요동지역의 향방에 대해서는 당의 괴뢰국이었다가 안사의 난 이후 발해에 종속되었다는 ‘小高句麗’론, 요동지역에는 발해의 안원부 및 회원부가 설치되었고 대동강 이북에서 요동반도 남단까지는 발해의 제후국인 高麗侯國이 있었다는 ‘高麗侯國’론이 제기되었지만, 그 사료적ㆍ논리적 근거를 살펴본 결과 설득력이 부족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료에 근거할 때, 8세기 중반 이후 대동강 이북의 평양 일대에서 요하 이동의 요동지역까지는 신라와 발해, 그리고 당 가운데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니었다. 따라서 이 지역을 삼자간의 완충지대로 파악하여, 이 시기의 역사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study is on the southwest border of Balhae. Balhae took Goguryeo's former territory where lay close to Tongmosan. Then Balhae came to letMalgal Tribes submit to it, while it expanded its territory in the Northeast area since King Moo's reign. ...
This study is on the southwest border of Balhae. Balhae took Goguryeo's former territory where lay close to Tongmosan. Then Balhae came to letMalgal Tribes submit to it, while it expanded its territory in the Northeast area since King Moo's reign.
On the basis of historical materials, it was confirmed that Niha Stream thought as present Yonghung river marked the southeast border between Balhae and Silla in the 9th century. The Liao-ho devided Balhae from Khitan in the west. In the north, the downstream of Sungari river formed the boundary between Balhae and HuksuMalgal. Balhae occupied theMaritime Province of Siberia in the east. In addition to that, Balhae reached Bakjakgoo(泊?口) which lied in the downstream of the Yalu in the southwest.
Andong Protectorate changed into Andong ChiefMilitary Commission, a smaller unit than before around Balhae's establishment in 698. Andong Protectorate was revived shortly after founding of Andong Chief Military Commission. Andong Protectorate was shut down in the Liao-xi area since the year of 757.
There have been two kinds of view as to what happened in Liaodong area after the closing of Andong Protectorate. One is the theory of small Goguryeo(小高句麗論), the other is the theory of Goryeo prince country(高麗侯國論). The former argues that one puppet state of Tang dynasty founded in Liaodong area became a subordinate state to Balhae after the rebellion of An Lu-shan. The latter claims that Anwonbu(安遠府) and Hoewonbu(懷遠府) were built in Liaodong area. Also it argues that there lied a Goryeo prince country like feudal lords from the north Daedong river to the south Liaodong peninsula. However, it was found from the result of studies about historical and logical ground regarding them that both of those theories had little persuasion
Seen from historical materials, a boundary which lied from Pyeongyang area in the north Daedong river to Liaodong in the east of the Liao-ho was not under the rule of Silla, Balhae, or Tang since the middle of 8th century.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this area as a buffer zone amongst those countries and to reconstruct the history at that period.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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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종복, "발해정치외교사" 일지사 2009
5 王承禮, "발해의 역사" 翰林大學 아시아文化硏究所 1988
6 손영종, "발해의 서변에 대하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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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명성, "발해의 남변에 대하여 in: 발해사연구론문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2
9 장국종, "발해의 ≪고려후국≫의 존립과 그 수도에 대하여" 1992
10 김종복, "발해시대 遼東지역의 귀속 문제" 수선사학회 (31) : 135-16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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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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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 |
| 200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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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 1.69 | 1.69 | 1.84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1.64 | 1.57 | 3.463 | 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