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평양대부흥운동 당시에는 제대로 된 한글 성경이나 체계적이며 학문적인 성경 해석도 없었고 교회도 제대로 조직되지 않았지만, 지도자들은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순수하였기 때...
100년 전 평양대부흥운동 당시에는 제대로 된 한글 성경이나 체계적이며 학문적인 성경 해석도 없었고 교회도 제대로 조직되지 않았지만, 지도자들은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순수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전체적으로 신선하였다. 초기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기독교 신앙과 한국의 문화, 역사, 언어와의 융합에 힘을 쏟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특히 그들은 한글 성경을 번역하는 데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한글을 경전 언어로 거듭나게 하여 승화시켰고, 기독교의 가르침을 쉽게 가르치고 전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즉, 그들은 한국과 기독교의 접목을 통하여 한국이 자주 독립 국가로 우뚝 서고 문명사적인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힘썼다. 기독교와 한국의 융합이라는 발판 위에서 일어난 초기 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를 통하여 말씀과 성령의 강력한 융합이 일어나게 되었다. 초기 교회의 성경 해석은 현대 해석학의 기준으로 볼 때 지극히 미미하였지만, 당대에 인기 있던 해석학인 풍유적 해석을 도입함으로써 해석적 융화를 이룰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도(道)로서의 기독교를 가르침으로써 높은 경전 의식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며, 성령 체험을 통한 삶의 근원적 변화를 함께 이룰 수 있었다. 초기 교회는 죄를 전통적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충분히 가르치고 있었으나, 대부흥에 나타난 죄 고백과 회개는 정신적, 물질적, 윤리적 죄를 모두 다 포함하는 통전적 회개였으며, 포괄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전인격적이며 통전적인 회개는 자연스럽게 화해와 일치 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내국인과 외국인, 양반과 상놈, 주인과 종, 남자와 여자 모두가 소통하는 아름다운 융합을 이루어 내었다. 100년 전 평양대부흥은 21세기의 교회가 지향할 진정한 부흥의 모델과 다원화된 사회와 세계에서 이루어져야할 통전적 융합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