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연문장전산고」와의 관계가 남다른 바 있긴 하지만 편집자가 그런 녹유를 어떻게 알고서 써 달라는지 모르겠다.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야 할 30년 가까운 옛일로, 30대의 나는 「국수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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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Korean
800.000
KCI등재
학술저널
223-23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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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연문장전산고」와의 관계가 남다른 바 있긴 하지만 편집자가 그런 녹유를 어떻게 알고서 써 달라는지 모르겠다.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야 할 30년 가까운 옛일로, 30대의 나는 「국수망...
「오주연문장전산고」와의 관계가 남다른 바 있긴 하지만 편집자가 그런 녹유를 어떻게 알고서 써 달라는지 모르겠다. 아득한 기억을 더듬어야 할 30년 가까운 옛일로, 30대의 나는 「국수망이나 문자는 불가망이라」는 고인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신조선사에서 여암전서(신경준저)의 편찬을 맡아 보고 있는 중 경진년(서기1940년) 여름 어느 날 이었다. 당시 신문에 종사하던 소오설의식이 찾아와 그때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일과 동일한 성질의 고문헌 출판사업의 포부를 의논하고 자기에게 협력해 줄 것을 청하므로 좀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해 볼 것을 약속하였다.
그 당시 사회상은 여기에서 재론하지 않더라도 잘 알려져 있지만, 식자간에 우리 고문헌 정리ㆍ간포사업이 오늘에 못지않았으니 그 이유는 첫째, 나라를 잃고 일제에 억압당한 형변에 장래에 있을 독립의 사상적 기초작업의 일환으로였고 다음은 일제의 동화정책 내지 우리문화 말살정책의 반동으로, 스러져가는 고유문화를 지탱하려는 심사의 노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