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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원ㆍ영양왕대 고구려 불교조각에 대한 고찰 = A Study on the Buddhist Sculptures of Goguryeo during the reign of King Pyeongwon and King Ye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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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고구려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던 25대 평원왕(559~590)과 26대 영양왕(590~618)이 재위했던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까지 약 반 세기 간의 불교조각을 통해서 중국 南北朝와 倭에 대한 고구려의 불교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고찰하였다. 평원왕 18년(576) 북제에 갔던 고구려 승려 義淵은 法上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하여 고구려 불교를 一新하였다고 알려져있다. 의연은 북제에서 여러 불교 典籍을 가져왔으며, 이때 북제 불상도 고구려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평원왕 12년(570)에는 왜국에 사절을 보내 외교적 관계를 시작하였으며 영양왕 6년(595)에 왜로 건너간 慧慈(?~622)는 20년간 聖德太子의 스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僧隆과 雲聰(602년)을 비롯해서 慧灌(605년) 및 曇徵과 法定(609년) 등도 왜로 건너가 수준 높은 고구려 불교를 알린 기록이 있다. 불교문화를 앞세운 對倭교섭에서 ‘금동불상’은 고구려 왕실이 왜 조정에 보내는 중요한 예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현재 전하는 飛鳥時代불상들 가운데는 고구려 불상들과 이 상들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불상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원ㆍ영양왕대의 고구려 불교조각으로 소형의 在銘일광삼존불상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소형의 상들을 통해 당시 불교조각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나 6세기 불교조각은 5세기 후반의 고식적인 요소와 6세기의 새로운 요소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 전해오는 大津石山寺금동불입상, 法隆寺헌납보물 143호 금동삼 존불상, 飛鳥寺금동장육불좌상[飛鳥大佛]을 이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石山寺금동 불입상과 法隆寺헌납보물 143호는 고구려에서 전래된 불상으로 판단되며, 飛鳥寺금동장육 불좌상(飛鳥大佛)은 고구려에서 전해진 불상의 範本을 기초로 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의 두 상에서는 古式요소와 새로운 요소가 混在하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 飛鳥寺 금동장육불상에서는 착의형식의 일부분이 발해초기 이불병좌상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적인 요소를 보이는 점과 飛鳥寺가람배치가 고구려의 일탑삼금당식이라는 점, 飛鳥寺건축에 고려척[고구려척]이 사용된 점, 영양왕이 飛鳥寺불상의 주조에 황금 삼백냥을 보낸 기록을 들어 飛鳥寺창건과 불상조성에 고구려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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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던 25대 평원왕(559~590)과 26대 영양왕(590~618)이 재위했던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까지 약 반 세기 간의 불교조각을 통해서 중국 南北朝와 倭에 대한 고구려의 불...

      고구려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던 25대 평원왕(559~590)과 26대 영양왕(590~618)이 재위했던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까지 약 반 세기 간의 불교조각을 통해서 중국 南北朝와 倭에 대한 고구려의 불교문화 교류의 가능성을 고찰하였다. 평원왕 18년(576) 북제에 갔던 고구려 승려 義淵은 法上의 가르침을 받고 귀국하여 고구려 불교를 一新하였다고 알려져있다. 의연은 북제에서 여러 불교 典籍을 가져왔으며, 이때 북제 불상도 고구려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평원왕 12년(570)에는 왜국에 사절을 보내 외교적 관계를 시작하였으며 영양왕 6년(595)에 왜로 건너간 慧慈(?~622)는 20년간 聖德太子의 스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僧隆과 雲聰(602년)을 비롯해서 慧灌(605년) 및 曇徵과 法定(609년) 등도 왜로 건너가 수준 높은 고구려 불교를 알린 기록이 있다. 불교문화를 앞세운 對倭교섭에서 ‘금동불상’은 고구려 왕실이 왜 조정에 보내는 중요한 예물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현재 전하는 飛鳥時代불상들 가운데는 고구려 불상들과 이 상들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불상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원ㆍ영양왕대의 고구려 불교조각으로 소형의 在銘일광삼존불상들이 전해오고 있는데 소형의 상들을 통해 당시 불교조각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으나 6세기 불교조각은 5세기 후반의 고식적인 요소와 6세기의 새로운 요소가 섞여 있는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 전해오는 大津石山寺금동불입상, 法隆寺헌납보물 143호 금동삼 존불상, 飛鳥寺금동장육불좌상[飛鳥大佛]을 이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石山寺금동 불입상과 法隆寺헌납보물 143호는 고구려에서 전래된 불상으로 판단되며, 飛鳥寺금동장육 불좌상(飛鳥大佛)은 고구려에서 전해진 불상의 範本을 기초로 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의 두 상에서는 古式요소와 새로운 요소가 混在하는 점을 근거로 하였다. 飛鳥寺 금동장육불상에서는 착의형식의 일부분이 발해초기 이불병좌상에서 나타나는 고구려적인 요소를 보이는 점과 飛鳥寺가람배치가 고구려의 일탑삼금당식이라는 점, 飛鳥寺건축에 고려척[고구려척]이 사용된 점, 영양왕이 飛鳥寺불상의 주조에 황금 삼백냥을 보낸 기록을 들어 飛鳥寺창건과 불상조성에 고구려의 영향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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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monk Faxiang(法上), an eminent figure of the Daśabhūmikā school of Buddhism. When Uiyeon returned to Goguryeo in the year 576 or 577, it is assumed that he brought back a few Buddhist scriptures and images from Northern Chi, and that he renewed Goguryeo Buddhism.
      In 570, King Pyeongwon sent an envoy to Japan to start diplomatic relations and, years later, King Yeongyang sent the monk Hyeja, who stayed for twenty years in Japan as a teacher of Prince Shotoku. Many other Buddhist monks of Goguryeo were sent to Japan, and they developed the Buddhist culture of Asuka Japan. Several extant Buddhist images dated to King Pyeongwon and Yeongyang periods, though small in size, show that old traditional stylistic features of the later half of the fifth century are mixed with new aspects of the style of the sixth century in a single image.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Goguryeo Buddhist sculptures, three Buddha images in Japan gilt-bronze image of Ishiyama-dera(石山寺) at Otsu, No. 143 gilt-bronze Buddha triad of Horyuji(法隆寺) now in Tokyo National Museum, and gilt-bronze Great Buddha image of Asuka-dera(飛鳥寺) are stylistically and iconographically examined in comparison to the Buddhist sculptures of China and Korea in the fifth and sixth centuries. From this investigation, it is fair to assume that the Ishiyama-dera image and No. 143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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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nk Faxiang(法上), an eminent figure of the Daśabhūmikā school of Buddhism. When Uiyeon returned to Goguryeo in the year 576 or 577, it is assumed that he brought back a few Buddhist scriptures and images from Northern Chi, and that he renewed G...

      monk Faxiang(法上), an eminent figure of the Daśabhūmikā school of Buddhism. When Uiyeon returned to Goguryeo in the year 576 or 577, it is assumed that he brought back a few Buddhist scriptures and images from Northern Chi, and that he renewed Goguryeo Buddhism.
      In 570, King Pyeongwon sent an envoy to Japan to start diplomatic relations and, years later, King Yeongyang sent the monk Hyeja, who stayed for twenty years in Japan as a teacher of Prince Shotoku. Many other Buddhist monks of Goguryeo were sent to Japan, and they developed the Buddhist culture of Asuka Japan. Several extant Buddhist images dated to King Pyeongwon and Yeongyang periods, though small in size, show that old traditional stylistic features of the later half of the fifth century are mixed with new aspects of the style of the sixth century in a single image. Based on the characteristics of Goguryeo Buddhist sculptures, three Buddha images in Japan gilt-bronze image of Ishiyama-dera(石山寺) at Otsu, No. 143 gilt-bronze Buddha triad of Horyuji(法隆寺) now in Tokyo National Museum, and gilt-bronze Great Buddha image of Asuka-dera(飛鳥寺) are stylistically and iconographically examined in comparison to the Buddhist sculptures of China and Korea in the fifth and sixth centuries. From this investigation, it is fair to assume that the Ishiyama-dera image and No. 143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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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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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곽동석, "한국의 금동불 : 동아시아 불교문화를 꽃피운 삼국시대 금동불. 1" 다른세상 2016

      4 李炳鎬, "한국사, 한 걸음 더" 푸른역사 2018

      5 최성은, "프리어미술관 소장 金銅光背에 대한 考察 -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 불상 광배와의 비교고찰을 중심으로 -" 중국연구소 (12) : 43-84, 2012

      6 최성은, "중국 남북조시대 불교조각을 통해 본 고구려 延嘉 7년명 금동여래입상" 한국고대학회 (51) : 55-87, 2017

      7 문명대, "삼국시대 불교조각사 연구-관불과 고졸미" 도서출판 예경 2003

      8 최연식, "삼국시대 미륵신앙과 내세의식" 8 : 2002

      9 최성은, "발해 불교조각의 새로운 고찰" 고구려발해학회 26 : 125-146, 2007

      10 한일관계사학회, "동아시아 속에서의 高句麗와 倭" 경인문화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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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최성은, "중국 남북조시대 불교조각을 통해 본 고구려 延嘉 7년명 금동여래입상" 한국고대학회 (51) : 55-87, 2017

      7 문명대, "삼국시대 불교조각사 연구-관불과 고졸미" 도서출판 예경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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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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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59 0.59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6 1.438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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