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 : 생산, 유통 그리고 용도 =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s of the Xiongnu: Production, Distribution and Utilization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7936219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필자는 이번 연구에서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품은 없으며 한나라에서 제작된 제품이라는 결론을 우선적으로 도출한 후, 역으로 그 연구대상을 흉노 출토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한나라 본토와 낙랑, 남월, 하서지역 고분 출토 칠이배까지 비교대상으로 포함시켜 고찰해 보았다. 또한 본고에서는 흉노 고분에서 발견된 칠이배의 현상과 명문 내용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던 기존의 연구방법에서 벗어나 생산지를 포함한 유통 그리고 용도에 대해서도 고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매장의례를포함한 고분문화까지 살펴보고자 노력하였다. 우선 생산지를 파악하기 위해 몽골 경내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 중 명문과 보존상태가 양호한 6점을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나라 수도 장안에 소재한 고공에서 생산한 제품이 사천지역 생산품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 본토와 낙랑, 남월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이배는 사천지역 촉군서공과 광한군공 생산품이 장안 고공 제품보다더욱 우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옻나무의 서식지와 모방제품 유무를기준으로 판단하여도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흉노의 양상은낙랑, 남월지역 칠이배가 수입품 이외에 자체 생산품도 존재하였던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의 생산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배의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 집중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 1세기 한 무제가 집정한 이후 흉노 선우와 왕자, 귀족들이 빈번하게 장안을 방문 혹은 입조하였던 역사기록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입조 당시 흉노인들은 한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물품을 사여 받은 것 이외에 장안 상림원에 위치한 건장궁, 포도궁 등에 거주하면서 각종 한나라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B.C. 1세기에는 앞 시기와는 달리 흉노 상층 계급인들에 의해 한나라 문물이 전래되게 되었으며, 그 문물 속에는 한나라 고분과 매장의례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았다. 칠이배라는 단독 유물을 통해, 한나라 고분문화의 흉노 전래라는 필자의 가설은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의 용도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자는 흉노인들이 한나라에 요구하였거나 사여 받은조공품에는 한나라 술을 비롯하여 누룩, 고두밥 등 술을 빚는 재료들이 포함되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결론적으로 흉노 상층 계급인들은 한나라 곡주를 좋아하였으며, 그 결과 한나라 술잔이었던이배도 함께 요구하였던 것으로 추론하였다. 또한 실생활에서 주기 혹은 식기로 사용된 칠이배는사후에는 칠반 혹은 칠안과 함께 흉노 고분에 부장되게 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시 말해 흉노 고분에 매장된 칠이배는 한나라에서 수입된 칠기와 술이 유목민족의 매장의례 중 일부분으로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남월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이배는 사천지역 촉군서공과 광한군공 생산품이 장안 고공 제품보다더욱 우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옻나무의 서식지와 모방제품 유무를기준으로 판단하여도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흉노의 양상은낙랑, 남월지역 칠이배가 수입품 이외에 자체 생산품도 존재하였던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의 생산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배의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 집중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 1세기 한 무제가 집정한 이후 흉노 선우와 왕자, 귀족들이 빈번하게 장안을 방문 혹은 입조하였던 역사기록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입조 당시 흉노인들은 한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물품을 사여 받은 것 이외에 장안 상림원에 위치한 건장궁, 포도궁 등에 거주하면서 각종 한나라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B.C. 1세기에는 앞 시기와는 달리 흉노 상층 계급인들에 의해 한나라 문물이 전래되게 되었으며, 그 문물 속에는 한나라 고분과 매장의례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았다. 칠이배라는 단독 유물을 통해, 한나라 고분문화의 흉노 전래라는 필자의 가설은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의 용도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자는 흉노인들이 한나라에 요구하였거나 사여 받은조공품에는 한나라 술을 비롯하여 누룩, 고두밥 등 술을 빚는 재료들이 포함되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번역하기

    필자는 이번 연구에서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품은 없으며 한나라에서 제작된 제품이라는 결론을 우선적으로 도출한 후, 역으로 그 연구대상을 흉노 출토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한나라 ...

    필자는 이번 연구에서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품은 없으며 한나라에서 제작된 제품이라는 결론을 우선적으로 도출한 후, 역으로 그 연구대상을 흉노 출토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한나라 본토와 낙랑, 남월, 하서지역 고분 출토 칠이배까지 비교대상으로 포함시켜 고찰해 보았다. 또한 본고에서는 흉노 고분에서 발견된 칠이배의 현상과 명문 내용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던 기존의 연구방법에서 벗어나 생산지를 포함한 유통 그리고 용도에 대해서도 고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매장의례를포함한 고분문화까지 살펴보고자 노력하였다. 우선 생산지를 파악하기 위해 몽골 경내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 중 명문과 보존상태가 양호한 6점을 기준으로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한나라 수도 장안에 소재한 고공에서 생산한 제품이 사천지역 생산품보다 상대적으로 더욱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 본토와 낙랑, 남월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이배는 사천지역 촉군서공과 광한군공 생산품이 장안 고공 제품보다더욱 우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옻나무의 서식지와 모방제품 유무를기준으로 판단하여도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흉노의 양상은낙랑, 남월지역 칠이배가 수입품 이외에 자체 생산품도 존재하였던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의 생산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배의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 집중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 1세기 한 무제가 집정한 이후 흉노 선우와 왕자, 귀족들이 빈번하게 장안을 방문 혹은 입조하였던 역사기록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입조 당시 흉노인들은 한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물품을 사여 받은 것 이외에 장안 상림원에 위치한 건장궁, 포도궁 등에 거주하면서 각종 한나라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B.C. 1세기에는 앞 시기와는 달리 흉노 상층 계급인들에 의해 한나라 문물이 전래되게 되었으며, 그 문물 속에는 한나라 고분과 매장의례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았다. 칠이배라는 단독 유물을 통해, 한나라 고분문화의 흉노 전래라는 필자의 가설은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의 용도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자는 흉노인들이 한나라에 요구하였거나 사여 받은조공품에는 한나라 술을 비롯하여 누룩, 고두밥 등 술을 빚는 재료들이 포함되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결론적으로 흉노 상층 계급인들은 한나라 곡주를 좋아하였으며, 그 결과 한나라 술잔이었던이배도 함께 요구하였던 것으로 추론하였다. 또한 실생활에서 주기 혹은 식기로 사용된 칠이배는사후에는 칠반 혹은 칠안과 함께 흉노 고분에 부장되게 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다시 말해 흉노 고분에 매장된 칠이배는 한나라에서 수입된 칠기와 술이 유목민족의 매장의례 중 일부분으로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남월지역에서 발견된 한나라 칠이배는 사천지역 촉군서공과 광한군공 생산품이 장안 고공 제품보다더욱 우위를 차지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판단하였다. 또한 옻나무의 서식지와 모방제품 유무를기준으로 판단하여도 흉노 칠이배는 자체 생산은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러한 흉노의 양상은낙랑, 남월지역 칠이배가 수입품 이외에 자체 생산품도 존재하였던 내용과는 다른 것으로 판단하였다. 흉노 고분 출토 칠이배의 생산지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이배의 제작 시기가 B.C. 1세기에 집중되어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그 원인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B.C. 1세기 한 무제가 집정한 이후 흉노 선우와 왕자, 귀족들이 빈번하게 장안을 방문 혹은 입조하였던 역사기록에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입조 당시 흉노인들은 한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물품을 사여 받은 것 이외에 장안 상림원에 위치한 건장궁, 포도궁 등에 거주하면서 각종 한나라 문물을 직접 체험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B.C. 1세기에는 앞 시기와는 달리 흉노 상층 계급인들에 의해 한나라 문물이 전래되게 되었으며, 그 문물 속에는 한나라 고분과 매장의례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보았다. 칠이배라는 단독 유물을 통해, 한나라 고분문화의 흉노 전래라는 필자의 가설은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생각된다. 이에 필자는 흉노 고분에서 출토된 칠이배의 용도를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연구자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필자는 흉노인들이 한나라에 요구하였거나 사여 받은조공품에는 한나라 술을 비롯하여 누룩, 고두밥 등 술을 빚는 재료들이 포함되었던 사실에 주목하였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was initiated based on the conclusion that the lacquer ear cups of the Xiongnu were not produced by the Xiongnu people themselves but by craftsmen of the Chinese Han Dynasty. Therefore, the areas of study were not limited to the territory of the Xiongnu but also included the Han Dynasty and the areas of Lelang, Nanyue and Hexi in China. In addition, this study on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utilization of lacquer ear cups departs from existing research which focused mainly o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the cups and their inscriptions. Before mentioning the details of the study, the conclusions for the three keywords of this studyare as follows: first, most lacquer ear cups with the inscription ‘Xiongnu’ were produced by craftsmen from Chang an (present-day Xi an) in Han China and mainly dare from the first century B.C.; second, the distribution of the cups was estimated based on the fact that the Chanyu (supreme ruler) and nobles of the Xiongnu visited Chang an in the first century B.C.; third, lacquer ear cups were mainly used to contain Chinese foods or alcohols; and fourth, it is estimated that the cups were buried in Xiongnu tombs due to the influence of the burial rituals of the Han Dynasty. In order to identify the production areas of the cups, their well-preserved features and inscriptions were the main criteria for this study.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among the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Xiongnu tombs, relatively more of them were made by craftsmen based in Chang an, the capital of the Han Dynasty, than in Sichuan. Such a finding shows the difference in the fact that the lacquer ear cups discovered in the central area of China and the Lelang and Nanyue areas were mostly made by craftsmen in Shu Han and Guanghan in Sichuan, not in Chang an. Moreover, judging from the fact that no imitation products have ever been found, and no lacquer trees grew in the territory of the Xiongnu, it is assumed that it was difficult to produce lacquer ear cups in Xiongnu - regardless of the actual inscriptions on the cups. Research on the production of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s of the Xiongnu showed that they were mainly produced in the late first century B.C., which led to a further examination to determine the reason, the result of which shows that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Xiongnu and the Han Dynasty changed significantly after the regime of Emperor Wu of Han in the first century B.C., when Chanyus, princes, and nobles of Xiongnu frequented Chang an. It is also assumed that the people of Xiongnu received official gifts from the Han Dynasty when they attended the royal court, and that they also came into contact with the culture and products of the Han, including their clothes, cuisine, and housing, while they were staying at the royal palaces (Jianzhang Palace, Putao Palace, etc.) in Shangliyuan, Chang an. Therefore, it seems evident that the culture and products of the Han Dynasty were directly circulated by the Xiongnu elite in the late first century B.C., unlike in the previous periods, and this would have included the tomb and burial practices of the Han. Such assumptions are supported by research on the utilization of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Xiongnu tombs, attempting to be agreed by other researchers. In particular, it was noted that alcohol and ingredients for making alcoholic drinks were included in the list of tributary goods which the Xiongnu were required to give to the Han Dynasty, or which the latter gave to the Xiongnu. In conclusion, it is conjectured that the upper-class Xiongnu enjoyed the grain-based wines of the Han, and that Chinese ear cups were used to serve alcohol accordingly. It is also assumed that the type of lacquer ear cups used to contain alcohol or food in daily life were also buried together with other lacquerwares in Xiongnu tombs.
    번역하기

    This study was initiated based on the conclusion that the lacquer ear cups of the Xiongnu were not produced by the Xiongnu people themselves but by craftsmen of the Chinese Han Dynasty. Therefore, the areas of study were not limited to the territory o...

    This study was initiated based on the conclusion that the lacquer ear cups of the Xiongnu were not produced by the Xiongnu people themselves but by craftsmen of the Chinese Han Dynasty. Therefore, the areas of study were not limited to the territory of the Xiongnu but also included the Han Dynasty and the areas of Lelang, Nanyue and Hexi in China. In addition, this study on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utilization of lacquer ear cups departs from existing research which focused mainly on the origins and development of the cups and their inscriptions. Before mentioning the details of the study, the conclusions for the three keywords of this studyare as follows: first, most lacquer ear cups with the inscription ‘Xiongnu’ were produced by craftsmen from Chang an (present-day Xi an) in Han China and mainly dare from the first century B.C.; second, the distribution of the cups was estimated based on the fact that the Chanyu (supreme ruler) and nobles of the Xiongnu visited Chang an in the first century B.C.; third, lacquer ear cups were mainly used to contain Chinese foods or alcohols; and fourth, it is estimated that the cups were buried in Xiongnu tombs due to the influence of the burial rituals of the Han Dynasty. In order to identify the production areas of the cups, their well-preserved features and inscriptions were the main criteria for this study. As a result, it was found that among the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Xiongnu tombs, relatively more of them were made by craftsmen based in Chang an, the capital of the Han Dynasty, than in Sichuan. Such a finding shows the difference in the fact that the lacquer ear cups discovered in the central area of China and the Lelang and Nanyue areas were mostly made by craftsmen in Shu Han and Guanghan in Sichuan, not in Chang an. Moreover, judging from the fact that no imitation products have ever been found, and no lacquer trees grew in the territory of the Xiongnu, it is assumed that it was difficult to produce lacquer ear cups in Xiongnu - regardless of the actual inscriptions on the cups. Research on the production of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the ancient tombs of the Xiongnu showed that they were mainly produced in the late first century B.C., which led to a further examination to determine the reason, the result of which shows that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the Xiongnu and the Han Dynasty changed significantly after the regime of Emperor Wu of Han in the first century B.C., when Chanyus, princes, and nobles of Xiongnu frequented Chang an. It is also assumed that the people of Xiongnu received official gifts from the Han Dynasty when they attended the royal court, and that they also came into contact with the culture and products of the Han, including their clothes, cuisine, and housing, while they were staying at the royal palaces (Jianzhang Palace, Putao Palace, etc.) in Shangliyuan, Chang an. Therefore, it seems evident that the culture and products of the Han Dynasty were directly circulated by the Xiongnu elite in the late first century B.C., unlike in the previous periods, and this would have included the tomb and burial practices of the Han. Such assumptions are supported by research on the utilization of lacquer ear cups excavated from Xiongnu tombs, attempting to be agreed by other researchers. In particular, it was noted that alcohol and ingredients for making alcoholic drinks were included in the list of tributary goods which the Xiongnu were required to give to the Han Dynasty, or which the latter gave to the Xiongnu. In conclusion, it is conjectured that the upper-class Xiongnu enjoyed the grain-based wines of the Han, and that Chinese ear cups were used to serve alcohol accordingly. It is also assumed that the type of lacquer ear cups used to contain alcohol or food in daily life were also buried together with other lacquerwares in Xiongnu tombs.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I. 머리말 II. 생산: 공관명과 관직명 III. 유통: 승여와 연호 IV. 용도: 술 유통과 매장의례 V. 맺음말
    • I. 머리말 II. 생산: 공관명과 관직명 III. 유통: 승여와 연호 IV. 용도: 술 유통과 매장의례 V. 맺음말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洪石, "「西漢飮酒具硏究-以漆器爲中心」上" 12 : 2020

    2 新疆樓蘭考古隊, "樓蘭城郊古墓群發掘簡報" 7 : 1988

    3 洛陽市第二文物工作隊, "洛陽五女塚267號新莽墓發掘簡報" 1996

    4 榧本杜人, "樂浪漢墓" 樂浪漢墓刊行會 1974

    5 루덴코(S.I. Rudenko), "흉노의 문화와 노용 올 무덤" 소련 과학아카데미 출판사 1962

    6 정재훈, "흉노-제국의 미술" 국립문화재연구소·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2020

    7 국립문화재연구소, "흉노 제국의 미술" 2019

    8 G.에렉젠, "흉노" 진인진 2017

    9 黃曉芬, "한대의 무덤과 그 제사의 기원" 학연문화사 2006

    10 우치다 히로미(Үчида Хироми), "찬드만 하르-올 7호분에서 출토된 칠기의 연구" 2 : 61-, 2020

    1 洪石, "「西漢飮酒具硏究-以漆器爲中心」上" 12 : 2020

    2 新疆樓蘭考古隊, "樓蘭城郊古墓群發掘簡報" 7 : 1988

    3 洛陽市第二文物工作隊, "洛陽五女塚267號新莽墓發掘簡報" 1996

    4 榧本杜人, "樂浪漢墓" 樂浪漢墓刊行會 1974

    5 루덴코(S.I. Rudenko), "흉노의 문화와 노용 올 무덤" 소련 과학아카데미 출판사 1962

    6 정재훈, "흉노-제국의 미술" 국립문화재연구소·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2020

    7 국립문화재연구소, "흉노 제국의 미술" 2019

    8 G.에렉젠, "흉노" 진인진 2017

    9 黃曉芬, "한대의 무덤과 그 제사의 기원" 학연문화사 2006

    10 우치다 히로미(Үчида Хироми), "찬드만 하르-올 7호분에서 출토된 칠기의 연구" 2 : 61-, 2020

    11 주경미, "의도된 오독(誤讀) - 일제강점기 낙랑문양(樂浪文樣)의 창출"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18) : 120-153, 2016

    12 N.V.폴로스막, "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주류성 2016

    13 양시은, "몽골지역 흉노시대 분묘연구" 중앙문화재연구원 (22) : 67-94, 2017

    14 양시은, "몽골지역 흉노 토기의 제작기법 연구" 호서고고학회 (38) : 94-121, 2017

    15 국립중앙박물관, "몽골 흉노무덤 자료집성" 국립중앙박물관 2008

    16 Gelegdorj Eregzen, "몽골 흉노 무덤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9

    17 G.에렉젠, "동아시아 고대문화 속의 흉노 논문집" 중앙아시아학회·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2010

    18 미냐에프(S.S. Minyaev), "노용 올 쿠르간의 연대학" 5 : 2010

    19 폴로스막(N.V. Polos’mak), "노용 올 출토품: 러시아-몽골 탐사대 발굴 보고서, 2006-2012년" 인폴리오 출판사 2016

    20 치스탸코바(A.N. Chistyakova), "노용 올 20호 무덤에서 출토된 칠기의 상형문자" 3 (3): 2009

    21 이경미, "낙랑고분출토 칠기에 대한 일고찰" 11 : 1992

    22 洪石, "낙랑 칠기 연구" 2017

    23 윤형원, "광활한 몽골초원과 흉노인의 생존 - 고고학 증거를 중심으로 -" 중앙아시아학회 15 : 29-54, 2010

    24 뭉흐바야르(Л. Мөнхбаяр), "골모드20호분에서 출토된 반의 중국 명문" 과학아카데미 역사학고고학연구소 31 : 2011

    25 김병준, "고대 동아시아의 해양 네트워크와 使行 교역" 한국상고사학회 106 (106): 109-136, 2019

    26 兪偉超, "馬王堆一號漢墓出土漆器制地諸問題" 6 : 1975

    27 趙占銳, "陝西西安空港新城巖村東漢墓M7隨葬器物硏究" 4 : 2020

    28 陝西省博物館, "長安窩頭寨漢代錢範遺址調査" 5 : 1992

    29 陳黙溪, "貴州淸鎭平壩漢墓發掘報告" 1 : 1959

    30 馬利淸, "論漢代酒器的隨葬禮儀傳統" 5 : 2018

    31 劉慶柱, "西漢南越國考古與漢文化" 科學出版社 2010

    32 梅原末治, "蒙古ノイン·ウラ發現の遺物" 東洋文庫 1960

    33 王賽時, "秦漢時期的釀酒與飮酒" 4 : 2004

    34 王慶憲, "生活在匈奴地區的中原人口" 3 : 2005

    35 王仲殊, "漢長安城遺址硏究" 科學出版社 2010

    36 劉振東, "漢都長安的手工業與市」, 『西漢南越國考古與漢文化』, 科學出版社劉雪怡·步瑞蘭, 「麴蘖的藥物理論與應用" 41 (41): 2010

    37 "漢書" 中華書局 1962

    38 조윤재, "漢晉 喪葬儀禮의 形成과 棺槨制度의 變容" 중부고고학회 12 (12): 253-290, 2013

    39 李守德, "漢代의 酒 -律文과 政策을 중심으로-" 중국사학회 26 : 41-88, 2003

    40 彭衛, "漢代酒雜識" 11 (11): 2011

    41 包啓安, "漢代的釀酒及其技術" 5 : 1991

    42 白雲翔, "漢代“蜀郡西工造”的考古學論述" 6 : 2014

    43 甘肅省博物館, "武威磨咀子三座漢墓發掘簡報" 12 : 1972

    44 吐魯番地區文管所, "新疆鄯善蘇巴什古墓葬" 1 : 1984

    45 洪石, "戰國秦漢漆器硏究" 文物出版社 2017

    46 洪石, "戰國秦漢時期漆器的生産與管理" 4 : 2005

    47 李雨璐, "從貴州淸鎭13號漢墓漆耳杯看“蜀郡工官”" 8 : 2020

    48 葛麗, "從漢字看中國古代酒器文化" 3 : 2016

    49 羅開玉, "從出土文物看秦漢三國時期蜀郡工室,工官" 6 : 2010

    50 廣西壯族自治區博物館, "廣西貴縣羅泊灣漢墓" 文物出版社 1988

    51 廣西壯族自治區文物考古寫作小組, "廣西合浦西漢木槨墓" 5 : 1972

    52 安金槐, "密縣打虎亭漢代畫像石墓和壁畫墓" 1 : 1972

    53 동북아역사재단, "史記 外國傳 譯主" 동북아역사재단 2009

    54 施杰, "古代墓葬美術硏究" 湖南美術出版社 2013

    55 廣州博物館, "南海海上交通貿易二千年-The Maritime Silk Route" 堅而美印刷公司 1996

    56 江西省文物考古硏究所, "南昌市海昏侯墓" 7 : 2016

    57 강인욱, "匈奴遺蹟 출토 銘文자료에 대한 일고찰" 한국상고사학회 75 (75): 189-219, 2012

    58 陳直, "兩漢紡織漆器手工業" 2 : 1957

    59 首都博物館, "五色燦曜-南昌漢代海昏侯國考古成果" 江西人民出版社 2016

    60 趙榮光, "中國飮料史" 上海古籍出版社 2012

    61 張飛龍, "中國生漆文明的起源" 2 (2): 2010

    62 김병준, "中國古代における對外貿易のかたち-敦煌懸泉置漢簡を手掛かりとして" 91 : 2016

    63 폴로스막(N.V. Polos’mak), "『수직트 무덤 노용 올, 몽골』, 제1권" 노보시비르스크 인폴리오 출판사 2015

    64 국립중앙박물관, "『몽골 도르릭 나르스 흉노무덤』Ⅱ" 2014

    65 湖南省博物館, "『長沙馬王堆一號漢墓』上" 文物出版社 1973

    66 사마광, "『資治通鑑 ③』전한시대Ⅱ" 삼화 2009

    67 사마광, "『資治通鑑 ②』전한시대Ⅰ" 삼화 2009

    68 동북아역사재단, "『漢書 外國傳 譯主』上 匈奴傳" 동북아역사재단 2009

    69 廣州市文物管理委員會, "『廣州漢墓』上·下" 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文物出版社 1981

    70 수전 휫필드, "Silk Roads-Peoples, Cultures, Landscapes" 책과함께 2019

    71 Bryan K. Miller, "Power Politics in the Xiongnu Empire, University of Pennsylvania Francious Louis, 2006-2007, Han Lacquerware and the Wine Cups of Noin Ula" 4 (4): 2009

    72 Natal’ia V.Polos’mak, "Lacquer Ear-Cups from Burial Mound20 in Noyon Uul, Xiongnu Archaeology Multidisciplinary Perspectives of the First Steppe Empire in Inner Asia" Vor-und Frühgeschichtliche Archäologie Rheinische 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Bonn 2011

    73 L.Munkhbayar, Ch.Yeruul-Erdene, "Examination on the Chinese inscription from burial No.20 of Golmod 1 site" 1-13, 2011

    74 Sanjyot Mehendale, "Begram Ivory and Bone Carviengs" University of California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 0.7 0.7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2 0.89 1.572 0.26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