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개화당은 근본적으로 외국의 힘을 빌려 정권의 장악 또는 조선사회의 근본적 혁신을 지향한 비밀결사였다는 전제 하에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 밀파된 1879년부터 갑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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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5
학위논문 (박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 정치외교학부(외교학전공) , 2015. 2
2015
한국어
327 판사항(22)
서울
The origin of Gaehwa-dang and its backdoor diplomacy, 1879-1884
vii, 354 p. : 삽화 ; 2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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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개화당은 근본적으로 외국의 힘을 빌려 정권의 장악 또는 조선사회의 근본적 혁신을 지향한 비밀결사였다는 전제 하에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 밀파된 1879년부터 갑신정변이 발발한 1884까지 그 비밀외교의 실상을 규명하는 데 있다.
개화당 및 개화사상은 지금까지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연구주제로 다루어져 왔으나, 대부분의 연구들은 특정한 관점의 사상사적 해석에 경도되어 왔다. 그 특정한 관점의 사상사적 해석이란, 이른바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萌芽論)과 궤를 같이 하여 지성계에도 내재적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실학(實學)과 개화사상(開化思想) 간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선험적으로 전제하는 1960년대 이후의 연구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개화당의 기원, 목적, 활동에 관해 중대한 오해를 초래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연구에서는 1880년대 초반 영국·미국·일본·중국 등 각국 외교관들이 남긴 외교문서(diplomatic documents)를 통해 개화당의 정체를 밝히고 그 활동과 사상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했다.
비밀외교(backdoor diplomacy)란 일반적으로 대중의 눈을 피해 은밀한 형태로 이뤄지는 외교교섭을 의미하는데, 이 연구에서는 개화당이 정부의 공식명령이나 국왕의 밀명을 받아서 외국에 출사(出使)했으면서도 그 이면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은밀히 비밀 교섭을 추진하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 개화당이 획책한 복잡한 비밀외교는 이 비밀결사의 목적이 처음부터 정권의 장악 또는 조선사회의 근본적 혁신에 있었으며, 그 수단으로서 외세를 이용하는 방식을 구상했음을 보여준다. 또 그것은 고종외교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준다. 즉, 고종은 비선(秘線)을 활용한 외교를 즐겨 활용했으며, 이른바 별입시(別入侍)는 이러한 비선외교가 이뤄지는 주된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는 개화당이 비밀외교를 실천하는 데는 대단히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
이 논문의 구성과 각 장(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Ⅱ장에서는 1879년에 김옥균·박영효의 밀촉(密囑)으로 일본에 밀항한 승려 이동인(李東仁)의 활동과 사상을 규명했다. 특히 개화당의 비밀외교의 배후에는 조선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해서라면 외세를 끌어들여도 무방하다는 사유방식이 있었던 바, 이 장에서는 ‘以毒制毒’의 논리로 그 해명을 시도했다. 제Ⅲ장에서는 1882년에 김옥균의 첫 번째 도일(渡日) 당시의 행적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관계를 다루었다. 통설에 따르면, 후쿠자와는 김옥균에게 독립자주(獨立自主)의 사상을 고취시킨 인물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김옥균이 후쿠자와와 결탁한 이유가 오히려 그의 강경한 조선정략이 개화당의 비밀외교의 구상과 일치한 데서 기인한 것임을 주장했다.
제Ⅳ장에서는 임오군란 직후 설치된 기무처(機務處)가 당시 조선의 외교와 관련해서 갖는 의미를 재조명하고, 수신사 겸 특명전권공사로 일본에 파견된 박영효와 그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 김옥균의 비밀외교를 살펴보았다. 특히 당시 그들이 제시한 조선독립론(朝鮮獨立論)의 이면에 내재된 정치적 동기를 규명하고자 했다. 제Ⅴ장에서는 비밀외교의 정돈(停頓)이라는 관점에서 갑신정변의 원인을 재해석했다. 특히 1883년 가을에 김옥균이 차관교섭에 실패한 직후에 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郞)와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의 재야세력과 결탁한 이유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었으며, 또 조선주재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竹添進一郞)의 정변개입 여부에 관해 검토했다.
제Ⅵ장에서는 1880년대 조선과 일본사회에서의 개화(開化) 담론의 양상을 다루었다. 우리가 김옥균 일파를 개화당(開化黨)이라고 부를 때는, 그들이 지향한 대의(大義)가 조선의 개화에 있었다는 전제를 내포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료에 따르면,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이 1884년 이전에 개화 혹은 개화당이라는 말을 사용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김옥균이 개화당을 자처하기 시작한 것은 1884년 여름에 일본에서 귀국한 이후였다. 이는 김옥균이 개화라는 말을 수용한 이유가 정변의 준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제Ⅶ장에서는 김옥균의 수기(手記)로서 갑신정변에 관한 일급사료로 꼽히는 『甲申日錄』의 저술배경을 살펴보았다. 특히 후쿠자와 유키치의 갑신정변 기록인 「明治十七年朝鮮京城變亂之始末」과의 대조를 통해 『甲申日錄』이 그것을 일부 수정하거나 증보하는 방식으로 저술된 글임을 밝히고, 또 『甲申日錄』의 저술과정에서 후쿠자와의 제자이자 동시에 고토의 비서였던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가 깊이 개입한 사실을 미간사료 「井上角五郞自記年報」를 통해 규명했다.
개화당은 조선사회를 뒤흔들고, 또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필요한 힘(sheer force)을 누대의 적국인 일본이나 전통적으로 금수(禽獸)로 간주되어온 서양열강에서 구했다. 또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전술을 수정하거나 제휴대상을 달리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이러한 개화당의 현실주의적 사고와 행태는, 그들의 사상적 기원이 조선실학에 있지 않으며, 이른바 의역중인(醫譯中人)들이 주도한 19세기의 사회변혁운동과 맥이 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개화당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외국세력과의 공모(共謀)에서 구했다는 점에서 부정할 수 없는 반역집단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국가와 백성을 분리해서 사유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후자의 생존에 두었으며, 조선사회의 강고한 신분질서를 넘어 개인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비밀결사를 조직했다는 점에서 전혀 새로운 변혁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개화당의 비밀외교는 19세기 조선사회의 위기를 배경으로 발생한 의역중인(醫譯中人)과 일부 젊은 양반들의 정치사회 변혁운동이었으며, 또한 조선사회가 이미 내적으로 분해되고 있음을 알리는 하나의 징후였다.
목차 (Table of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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