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후기 정재의 예술사적 특성을 예악사상을 통해 분석했으며, 접근방법으로 정재가 기록된 원전자료와 기록화를 적극 활용하였다. 조선후기는 한국무용사에 있어 유례없는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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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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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후기 정재의 예술사적 특성을 예악사상을 통해 분석했으며, 접근방법으로 정재가 기록된 원전자료와 기록화를 적극 활용하였다. 조선후기는 한국무용사에 있어 유례없는 변동기였다. 조선후기 궁중정재는 주제와 양식면에서 조선전기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조선전기의 정재는 성리학적 이념에 의한 중국 고대의 예악사상의 수용으로 '치국평천하'라는 시대담론의 구현에 이바지 하였다. 이에 반해 조선후기에 발흥된 실학사상은 정재의 주제와 형식, 창작정신과 미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순조조 효명세자와 김창하는 조선후기 향악정재의 활성화를 추동하면서 '정재의 황금기'를 이룩하였다. 특히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기간인 1827년(순조 27년)부터 1829년(순조 29년)까지 매년 궁중연향이 개최되면서 23종에 이르는 정재가 새롭게 창작되었다. 춘앵전, 무산향, 춘대옥촉, 영지무, 헌천화, 보상무, 장생보연지무, 가인전목단 등 소재와 주제 면에서 다양한 정재가 선보였다. 이들 정재에서 확인되듯이 조선후기 정재는 꽃과 자연경관을 정서적으로 수용하여 대상화하거나 춤의 소도구를 적극 활용하는 등 양식적 다양화를 꽤하였다. 주제 면에서도 조선전기 유가의 예악사상에 기초한 이른바 중국적 전통이 약화되었고, 대신 실학의 영향으로 주체적 예악관이 발현되어 향악정재가 활성화되었다. 주체적 예악관에 입각한 실학의 영향으로 조선후기 공연예술은 악, 가, 희, 놀이 등 다양한 형식들이 출현했다. 향악정재의 활성화는 이러한 당대 공연예술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하는 데, 가령 민간의 중인 출신 가객이 정재의 창사를 짓는데 직접 참여한 예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영향으로 조선후기 정재는 주제와 양식면에서 뚜렷한 특성을 나타내었고, 나아가 새로운 미의식이 산출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