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자기의식’을 연구하되, 그것의 내적 구조를 피히테의 초기 저작인 『지식학의 새로운 서술 시도』와 『새로운 방법에 따른 지식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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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Korean
피히테 ; 의식 ; Fichte ; Consciousness ; Self-Consciousness ; Pre-Reflexive ; Philosophy of Mind ; 자기의식 ; 선(先)반성적 ; 심리철학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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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자기의식’을 연구하되, 그것의 내적 구조를 피히테의 초기 저작인 『지식학의 새로운 서술 시도』와 『새로운 방법에 따른 지식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려 한다. ...
본 연구에서는 ‘인간의 자기의식’을 연구하되, 그것의 내적 구조를 피히테의 초기 저작인 『지식학의 새로운 서술 시도』와 『새로운 방법에 따른 지식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려 한다. 본 연구에는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될 것이다. 하나는 피히테의 작품에 대한 철저한 문헌 연구요, 다른 하나는 사상사적 통시적 방법으로 이 문헌에 드러난 피히테의 근본 통찰이 슐라이에르마허와 키에르케고어, 그리고 브렌타노와 후설, 사르트르 등 유럽 대륙의 낭만주의, 현상학, 실존철학 전통으로, 더 나아가서 현대 영미 심리철학의 헥토르-네리 카스타네댜와 단 차하비, 테리 호간과 우리야 크리겔이 표방한 ‘자기표상주의’ 진영으로 이어지는 이어지는 맥을 짚는 것이다.
문헌연구는 헨리히가 제안했던 것처럼 위의 두 저작에 담긴 핵심 테제 및 주요 논변의 ‘합리적-재구성’이 기본이 될 것이다. 핵심 논변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의식은 지향적이다. 이렇듯 의식이 뭔가를 향해 있음을 피히테는 – 칸트, 그리고 라인홀트와 더불어 – ‘표상’이란 용어로 드러내려 했다.
(2) 표상을 통해 주체는 객체와 관계하기에 내가 대상을 의식하려면,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먼저 내가 그 대상들을 표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대상들을 표상하는 이가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한다.
(3) 뭔가에 대한 의식, 외부 대상에 대한 표상은 자기의식을 필수조건으로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상과 대상에 대한 표상은 구별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가진 표상에 대해 내가 앎이 있으려면, 나는 이 표상을 가진 나 자신에 대해 의식해야만 할 것이다.
(4) 그렇다면 이러한 자기의식은 어떤 구조를 가져야만 할까? 이를 위해 피히테가 동원하는 논법은 귀류법이다. 만일 자기의식을 흔히 생각했듯이 주-객 모델에 따라 이해하려 한다면, 그때 나는 표상하는 나 자신이 제2의 표상의 객체가 될 때 비로소 나를 의식할 것이다. 그런데 이때 제2의 표상 주체는 또다시 미지의 것이 되기에, 이를 객체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3의 표상이 필요할 것이고, 이러한 소급 과정은 무한히 진행될 것이며, 결국 표상하는 주체인 ‘나’는 끝까지 의식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한소급은 의식의 주객 계열 전체를 사상누각으로 만들 것이다.
(5) 피히테는 (4)와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로 자기의식이 해명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기의식은 의식이 가능하기 위한 필수조건이고, 우리는 엄연히 현실 속에서 의식 활동을 한다. 그러니까 자기의식의 현존 역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기존의 설명 방식이 잘못된 것이기에, 새롭고 보다 적절한 자기의식 설명 모델이 필요하다고 피히테는 역설한다. 기존의 설명 방식은 헨리히가 이끄는 하이델베르크 학파에 따르면 ‘자기의식의 반성 모델’이라 부를 수 있겠다. 그러므로 피히테는 자기의식의 반성 모델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설명 모델이라고 보았다.
(6) 자기의식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조건 한 가지는 ‘의식하는 자아와 의식되는 자아가 분리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둘이 주체와 객체의 두 항으로 분리되면, 무한소급의 함정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그리고 의식 주체와 객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도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피히테는 둘의 직접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리고 후에 사르트르가 이야기할 ‘선반성성’도 강조한다.
마지막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히테가 이 작품에서 제시한 답변이 흡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피히테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수많은 시도를 전개하였다. 노발리스와 셸링, 슐라이에르마허 같은 낭만주의자들은 ‘직접성’에 착안하여 ‘감정’에서 답을 찾아보려 했고, 브렌타노, 후설, 사르트르 등도 현상학적 방법에 입각해 바로 그 직접적 자기관계를 해명해 보려 했다. 본 연구자는 이런 모델이 우리 시대의 심리철학에 보다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이 논리적으로 우월하고, 더 나아가서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인간의 고유성을 주장하고 설득하는 데도 보다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