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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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influence française.
En effet, les institutions et la politique cinématographique coréennes se sont inspirées de la France, mais en Corée ce sont les cinéphiles qui ont pris l’initiative de cette renaissance; en France l’initiative de l’Etat se révélait significative. En témoignent la comparaison de quelques moteurs principaux, soit la création d’un établissement public et d’un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et le mouvement cinéphilique(critique et cinémathèque). L’écart entre les deux pays provient de la différence du statut du cinema et des contextes historico-politiques. Si le cinema a fait l’objet du soutien constant en France indépendemment de l’alternance du pouvoir, il n’a jamais été une priorité étatique en Corée; les milieux du cinéma coréen ont plutôt entretenu des rapports de tension avec le pouvoir. Avec le temps, les cinéphiles ont adapté le savoir faire acquis à la situation sur place, en s’orientant vers d’autres références que la France. D’autre part, les rapports distants avec l’Etat les a conduits à demander le soutien d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Il en faudrait une meilleure conscience de l’intérêt public et de la non-intervention par l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ainsi que l’esprit d’ouverture de la cinéphilie coréenne, ceci pour maintenir l’équilibre entre la localité et l’internationalité.
국문 초록 (Abstract)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화정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정책 기관과 국제 영화제의 출범, 시네필문화의 본격화에서 나타나는 양국 간 연결고리들을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 시네필문화와 영화정책이 프랑스가 선구적으로 닦아놓은길을 참조했으나, 토착화 및 시대 변화에 따라 고유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국가 주도의 재정지원이나 시스템 구축이 돋보이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시네필들이 영화의 장을 주도했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변별점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영화가 국가적 사안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지원의 대상이었던 반면 한국 시네필문화는 정권과 긴장관계 속에 존속해 왔다는 영화적 전통과 정치․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다. 양국 영화 중흥기의 비교에서드러난 국가와의 관계 맺기의 차이는 오늘날 한국의 경우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현실임을 확인시켜준다. 지자체의 불간섭 원칙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 제고는 물론, 시네필문화의 대중화로써 영화문화가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해야 할 이유이다.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미현 외,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2003
2 양경미, "한국영화산업의 보호정책과 이익집단의 역할에 관한 연구 : 스크린쿼터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0
3 최승희, "한국영화산업 구조 변화와 영화산업정책~수직적 결합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연구원 2006
4 조준형, "한국영화사 공부" 이채 2005
5 조준형, "한국영화 정책사" 나남출판 2005
6 조준형, "한국영화 정책사" 나남출판 2005
7 임인택, "프랑스문화원 ‘시네 키즈’ 욕망 채우던 놀이터"
8 이수원, "프랑스 영화지원정책 초창기에 대한 고찰 : 대미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회 (50) : 523-538, 2005
9 이수원, "카이에 뒤 시네마" 이앤비플러스 2013
10 문재철, "영화적 경험양식으로서 한국 시네필에 대한 연구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한국영화학회 (47) : 113-13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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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노철환, "195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시네필-평론가 연구: 영화문화와 영화정책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프랑스문화예술학회 69 : 69-91, 2019
31 김승구,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에 끼친 프랑스영화의 영향" 인문학연구원 71 (71): 105-140, 2014
김현의 ‘한국문학의 이념형’ 구체화 작업 연구 - 1971∼1977년의 저작을 중심으로
치유를 위한 소설교육과 정전의 재해석 - 김동리의 「역마」를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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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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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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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9 | 0.49 | 0.42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6 | 0.49 | 0.818 | 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