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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 비교 - 국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 Une étude comparative de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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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049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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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influence française.
      En effet, les institutions et la politique cinématographique coréennes se sont inspirées de la France, mais en Corée ce sont les cinéphiles qui ont pris l’initiative de cette renaissance; en France l’initiative de l’Etat se révélait significative. En témoignent la comparaison de quelques moteurs principaux, soit la création d’un établissement public et d’un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et le mouvement cinéphilique(critique et cinémathèque). L’écart entre les deux pays provient de la différence du statut du cinema et des contextes historico-politiques. Si le cinema a fait l’objet du soutien constant en France indépendemment de l’alternance du pouvoir, il n’a jamais été une priorité étatique en Corée; les milieux du cinéma coréen ont plutôt entretenu des rapports de tension avec le pouvoir. Avec le temps, les cinéphiles ont adapté le savoir faire acquis à la situation sur place, en s’orientant vers d’autres références que la France. D’autre part, les rapports distants avec l’Etat les a conduits à demander le soutien d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Il en faudrait une meilleure conscience de l’intérêt public et de la non-intervention par l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ainsi que l’esprit d’ouverture de la cinéphilie coréenne, ceci pour maintenir l’équilibre entre la localité et l’internationali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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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

      Cette étude porte sur l’essor de la scène cinématographique en Corée dans les années 1990 et en France au lendema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Nous avons pris comme hypothèse que les principaux moteurs de cet essor en Corée étaient sous influence française.
      En effet, les institutions et la politique cinématographique coréennes se sont inspirées de la France, mais en Corée ce sont les cinéphiles qui ont pris l’initiative de cette renaissance; en France l’initiative de l’Etat se révélait significative. En témoignent la comparaison de quelques moteurs principaux, soit la création d’un établissement public et d’un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et le mouvement cinéphilique(critique et cinémathèque). L’écart entre les deux pays provient de la différence du statut du cinema et des contextes historico-politiques. Si le cinema a fait l’objet du soutien constant en France indépendemment de l’alternance du pouvoir, il n’a jamais été une priorité étatique en Corée; les milieux du cinéma coréen ont plutôt entretenu des rapports de tension avec le pouvoir. Avec le temps, les cinéphiles ont adapté le savoir faire acquis à la situation sur place, en s’orientant vers d’autres références que la France. D’autre part, les rapports distants avec l’Etat les a conduits à demander le soutien d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Il en faudrait une meilleure conscience de l’intérêt public et de la non-intervention par les collectivités régionales ainsi que l’esprit d’ouverture de la cinéphilie coréenne, ceci pour maintenir l’équilibre entre la localité et l’internationalit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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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화정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정책 기관과 국제 영화제의 출범, 시네필문화의 본격화에서 나타나는 양국 간 연결고리들을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 시네필문화와 영화정책이 프랑스가 선구적으로 닦아놓은길을 참조했으나, 토착화 및 시대 변화에 따라 고유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국가 주도의 재정지원이나 시스템 구축이 돋보이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시네필들이 영화의 장을 주도했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변별점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영화가 국가적 사안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지원의 대상이었던 반면 한국 시네필문화는 정권과 긴장관계 속에 존속해 왔다는 영화적 전통과 정치․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다. 양국 영화 중흥기의 비교에서드러난 국가와의 관계 맺기의 차이는 오늘날 한국의 경우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현실임을 확인시켜준다. 지자체의 불간섭 원칙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 제고는 물론, 시네필문화의 대중화로써 영화문화가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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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

      1990년대 한국영화와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영화의 재정비기는 근 50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사성을 보인다. 본고에서는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 토대들이 프랑스영화와 영화정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정책 기관과 국제 영화제의 출범, 시네필문화의 본격화에서 나타나는 양국 간 연결고리들을고찰하였다. 그 결과 한국 시네필문화와 영화정책이 프랑스가 선구적으로 닦아놓은길을 참조했으나, 토착화 및 시대 변화에 따라 고유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국가 주도의 재정지원이나 시스템 구축이 돋보이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시네필들이 영화의 장을 주도했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변별점이다. 이는 프랑스에서 영화가 국가적 사안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적지원의 대상이었던 반면 한국 시네필문화는 정권과 긴장관계 속에 존속해 왔다는 영화적 전통과 정치․역사적 상황의 차이에 기인한다. 양국 영화 중흥기의 비교에서드러난 국가와의 관계 맺기의 차이는 오늘날 한국의 경우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현실임을 확인시켜준다. 지자체의 불간섭 원칙과 공공성에 대한 인식 제고는 물론, 시네필문화의 대중화로써 영화문화가 지역성과 세계성 사이에서 균형을 꾀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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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미현 외,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2003

      2 양경미, "한국영화산업의 보호정책과 이익집단의 역할에 관한 연구 : 스크린쿼터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0

      3 최승희, "한국영화산업 구조 변화와 영화산업정책~수직적 결합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연구원 2006

      4 조준형, "한국영화사 공부" 이채 2005

      5 조준형, "한국영화 정책사" 나남출판 2005

      6 조준형, "한국영화 정책사" 나남출판 2005

      7 임인택, "프랑스문화원 ‘시네 키즈’ 욕망 채우던 놀이터"

      8 이수원, "프랑스 영화지원정책 초창기에 대한 고찰 : 대미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회 (50) : 523-538, 2005

      9 이수원, "카이에 뒤 시네마" 이앤비플러스 2013

      10 문재철, "영화적 경험양식으로서 한국 시네필에 대한 연구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한국영화학회 (47) : 113-138, 2011

      1 김미현 외, "한미투자협정과 스크린쿼터" 2003

      2 양경미, "한국영화산업의 보호정책과 이익집단의 역할에 관한 연구 : 스크린쿼터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0

      3 최승희, "한국영화산업 구조 변화와 영화산업정책~수직적 결합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연구원 2006

      4 조준형, "한국영화사 공부" 이채 2005

      5 조준형, "한국영화 정책사" 나남출판 2005

      6 조준형, "한국영화 정책사" 나남출판 2005

      7 임인택, "프랑스문화원 ‘시네 키즈’ 욕망 채우던 놀이터"

      8 이수원, "프랑스 영화지원정책 초창기에 대한 고찰 : 대미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프랑스학회 (50) : 523-538, 2005

      9 이수원, "카이에 뒤 시네마" 이앤비플러스 2013

      10 문재철, "영화적 경험양식으로서 한국 시네필에 대한 연구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를 중심으로-" 한국영화학회 (47) : 113-138, 2011

      11 김지석, "영화의 바다 속으로" 본북스 2015

      12 구회영, "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가지 것들" 한울 1991

      13 고현실, "영화계 숙원 충무로 ‘서울시네마테크’ 오늘 첫 삽…2022년 완공"

      14 이선주, "영화(KINO)의 시대-영화잡지 <키노>와 1990년대 ‘비판적 시네필리아’의 문화정치" 대중서사학회 23 (23): 415-452, 2017

      15 정성일,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바다출판사 2010

      16 강소원, "부산독립영화에 대하여 (역사․현황․작품경향)" 한국독립영화협회 2 : 1999

      17 김호일, "부산국제영화제~아시아 영화의 허브" 자연과 인문 2009

      18 박은지, "부산 프랑스문화원과 트랜스로컬 시네필리아: 198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영화학회 (75) : 211-246, 2018

      19 곽용수, "문화학교 서울’의 기억" 한국독립영화협회 18 : 2003

      20 유성관, "대담-정성일, 구회영을 만나다" 한국영상자료원 48 : 2016

      21 정성일, "내가 사랑한 프랑스 영화" BIFF 2015

      22 김성욱,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네마테크"

      23 Léglise, Paul, "T2 : Cinéma entre deux Républiques, 1940∼1946" Lherminier 1977

      24 Mairie de Cannes, "L’histoire du Festival de Cannes : de l’anecdote à la légende"

      25 Bonnel, René, "La 25ème image : une économie de l’audiovisuel" Gallimard 2001

      26 Mannoni, Laurent, "Histoire de la Cinémathèque Française" Gallimard 2006

      27 Loubes, Olivier, "Cannes 1939. Le festival qui n’a pas eu lieu" Armand Colin 2016

      28 De Baecque, "Antoine, La cinéphilie : Invention d’un regard, histoire d’une culture, 1944∼1968" Fayard 2003

      29 김홍준, "1995∼2015 변모하는 영화의 풍경"

      30 노철환, "1950년대 『카이에 뒤 시네마』의 시네필-평론가 연구: 영화문화와 영화정책의 상관관계에 관하여" 프랑스문화예술학회 69 : 69-91, 2019

      31 김승구,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에 끼친 프랑스영화의 영향" 인문학연구원 71 (71): 105-14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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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5-11-09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Comparative Korean Studies -> 비교한국학 Comparative Korean Studies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KCI등재후보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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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9 0.49 0.4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6 0.49 0.818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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