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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년 치타의 조선인 - 이광수의 여행기를 중심으로 = Koreans of Chita in 1914: Focusing on Yi Kwang su's Travel Es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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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97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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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Among the Koreans in Russia, probably the Koreans of Chita were the second bestknown to the public next to those of Vladivostok. That was because Chita was where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KNA) was based and its bulletin Daehanin Jeonggyobo (Journal of Korean Russian Orthodox Church) was published. There is another source that let us know about them; it is a series of Yi Kwangsu’s travel essays. His essays on Chita is just one part of his writings on his travel in Shanghai, Vladivostok, Murin and Chita, but among those cities, Chita is where he had the longest stay and he described the Koreans there the most. Yi Kwangsu in Chita was not just a sojourner but an important member of the city as an exile because he was the chief editor of Daehanin Jeonggyobo. This article examines the Koreans of Chita shown in his writings and his perspective on them. Yi Kwangsu was on the borderline between a mere sojourner and an exile and hence he could look at things from both insider and outsider's viewpoint. This position of his being on the borderline his resonated with Chita Koreans who were also on the borderline. That was why he wrote many essays on stay in Chita and why these writings assume importance as a testimony to the Koreans of Ch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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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ong the Koreans in Russia, probably the Koreans of Chita were the second bestknown to the public next to those of Vladivostok. That was because Chita was where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KNA) was based and its bulletin Daehanin Jeonggyobo (Jou...

    Among the Koreans in Russia, probably the Koreans of Chita were the second bestknown to the public next to those of Vladivostok. That was because Chita was where the Korean National Association (KNA) was based and its bulletin Daehanin Jeonggyobo (Journal of Korean Russian Orthodox Church) was published. There is another source that let us know about them; it is a series of Yi Kwangsu’s travel essays. His essays on Chita is just one part of his writings on his travel in Shanghai, Vladivostok, Murin and Chita, but among those cities, Chita is where he had the longest stay and he described the Koreans there the most. Yi Kwangsu in Chita was not just a sojourner but an important member of the city as an exile because he was the chief editor of Daehanin Jeonggyobo. This article examines the Koreans of Chita shown in his writings and his perspective on them. Yi Kwangsu was on the borderline between a mere sojourner and an exile and hence he could look at things from both insider and outsider's viewpoint. This position of his being on the borderline his resonated with Chita Koreans who were also on the borderline. That was why he wrote many essays on stay in Chita and why these writings assume importance as a testimony to the Koreans of Ch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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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치타의 조선인은 아마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조선인 다음으로는 가장 많이 알려진 러시아 거주 조선인일 것이다. 그것은 치타가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의 소재지로서 그 기관지인 대한인 정교보가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치타 조선인에 관한 또 하나의 자료로서 이광수의 일련의 치타 여행기가 있다. 이광수는 치타에서 조선인 망명자, 정주민, 금광 노동자 등 일군의 조선인들을 만났으며, 그들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이광수의 치타 여행기는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무린, 치타로 이어지는 여행기의 한 편이지만, 이광수는 치타에서 가장 오래 체류하였기 때문에 그의 여행기 중에서 치타 부분의 분량이 가장 많았으며 자신의 내면과 그가 만난 조선인에 대한 기술도 가장 많았다. 이광수가 치타에서 체류한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로서 러시아의 조선인뿐만 아니라 이광수에게도 매우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광수는 치타에서 7개월 가량 머무는 사이에 대한인 정교보의 편집과 주필로서 활동하였다. 이것은 그가 단순한 체류자가 아니라 치타 조선인 사회의 중요한 일원인 망명자의 한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곧 이광수는 체류자와 망명자의 경계 위에 서 있었는데, 이것이 이광수로 하여금 치타 조선인의 경계성과 공명할 수 있게 했고, 치타 조선인에 대해서 내부자와 외부자의 이중적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이광수가 치타 여행기를 반복해서 서술하는 이유였으며, 이광수의 여행기가 치타 조선인에 대한 증언으로서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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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타의 조선인은 아마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조선인 다음으로는 가장 많이 알려진 러시아 거주 조선인일 것이다. 그것은 치타가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의 소재지로서 그 기관지인 대한...

    치타의 조선인은 아마도 블라디보스토크의 조선인 다음으로는 가장 많이 알려진 러시아 거주 조선인일 것이다. 그것은 치타가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총회의 소재지로서 그 기관지인 대한인 정교보가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치타 조선인에 관한 또 하나의 자료로서 이광수의 일련의 치타 여행기가 있다. 이광수는 치타에서 조선인 망명자, 정주민, 금광 노동자 등 일군의 조선인들을 만났으며, 그들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이광수의 치타 여행기는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무린, 치타로 이어지는 여행기의 한 편이지만, 이광수는 치타에서 가장 오래 체류하였기 때문에 그의 여행기 중에서 치타 부분의 분량이 가장 많았으며 자신의 내면과 그가 만난 조선인에 대한 기술도 가장 많았다. 이광수가 치타에서 체류한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로서 러시아의 조선인뿐만 아니라 이광수에게도 매우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광수는 치타에서 7개월 가량 머무는 사이에 대한인 정교보의 편집과 주필로서 활동하였다. 이것은 그가 단순한 체류자가 아니라 치타 조선인 사회의 중요한 일원인 망명자의 한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곧 이광수는 체류자와 망명자의 경계 위에 서 있었는데, 이것이 이광수로 하여금 치타 조선인의 경계성과 공명할 수 있게 했고, 치타 조선인에 대해서 내부자와 외부자의 이중적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이광수가 치타 여행기를 반복해서 서술하는 이유였으며, 이광수의 여행기가 치타 조선인에 대한 증언으로서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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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박노자, "혁명, 급진적 ‘민족차별 철폐’ 이뤄: [미래를 향한 추억]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쏘련의 민족정책" 레디앙

    2 이광수, "해삼위로서"

    3 심헌용,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1

    4 박용옥, "한국여성독립운동가" 국학자료원 2018

    5 박용옥,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31권: 여성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6 윤홍로, "춘원의 용동 체험과 글짓기 과정" 3 : 2010

    7 주요한, "추정 이갑" 민중서관 1964

    8 조재곤, "전쟁과 인간 그리고 '평화' : 러일전쟁과 한국사회" 일조각 2017

    9 조재곤, "전쟁과 변경- 러일전쟁과 함경도의 현실 -" 동북아역사재단 (41) : 357-402, 2013

    10 이광수, "자료 : 이광수의 ‘권업신문’ ‘대한인졍교보’ 기고문" 9 : 1996

    1 박노자, "혁명, 급진적 ‘민족차별 철폐’ 이뤄: [미래를 향한 추억]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쏘련의 민족정책" 레디앙

    2 이광수, "해삼위로서"

    3 심헌용,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11

    4 박용옥, "한국여성독립운동가" 국학자료원 2018

    5 박용옥,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31권: 여성운동"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6 윤홍로, "춘원의 용동 체험과 글짓기 과정" 3 : 2010

    7 주요한, "추정 이갑" 민중서관 1964

    8 조재곤, "전쟁과 인간 그리고 '평화' : 러일전쟁과 한국사회" 일조각 2017

    9 조재곤, "전쟁과 변경- 러일전쟁과 함경도의 현실 -" 동북아역사재단 (41) : 357-40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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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이광수, "이광수전집 9" 삼중당 1966

    13 이광수, "이광수전집 13" 삼중당 1962

    14 김경남, "이광수의 작문관과 기행 체험의 심미적 글쓰기" 중앙어문학회 58 : 247-269, 2014

    15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 2" 한길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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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권보드래, "『학지광』 제8호, 편집장 이광수와 새 자료" 민족문학사연구소 (39) : 388-39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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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윤홍로, "「흙」과 민족갱생력" 춘원연구학회 (2) : 47-102, 2009

    47 "https://cyberleninka.ru/article/n/from-cultural-history-of-eastern-trans-baikal-region-musical-culture-of-chita-within-a-context-of-artistic-culture-of-the-city-pre-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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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김미영, "1910년대 이광수의 해외체험 연구" 인문학연구원 72 (72): 305-34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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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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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54 1.54 1.1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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