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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Study on the Economic Development Experiences of Korea = 韓國의 經濟開發經驗에 관한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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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지난 30년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공사례의 하나이다. 1962년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 우리경제는 연 3%의 인구증가율, 83불의 일인당 GNP,만성적민 高失業率, 부존자원 빈약 등 전형적인 저개발국 경제였다 더욱이 R.Nurkse교수가 지적한 대로 저소득 → 저저측 → 저투자 → 저생산 → 저소득으로 되돌아오는 貧因의 惡循環을 계속함으로서 경제 성장의 轉機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우리의 유일한 資産은 높은 교육열로 가꾸어낸 우수한 人力資源 뿐이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경제개발에 대한 온국민의 절박한 열망이 있었으나 우리 경제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정부가 1962년부터 직접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바 개발의 基本戰略을 輸出主導型 對對指向開發(Outward-looking development strategy)에 두었다. 이러한 개발전략은 빈약한 천연자원, 협소한 국내시장, 풍부한 양질의 노동인력을 가진 경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개발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수출주도 산업으로는 당시 우리 경제가 比較優位에 있었던 勞動集約的인 輕工業을그 대상으로 결정하였는바 경공업을 우선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시 후진국 개발 모형논쟁에서 A.0.Hirschman의 不均衡成長論에 따른 것이며, 노동집약적 산업을 선택한 것은 潛在失業을 資本蓄積에 동원할 것을 주장한 W.A. Lewis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경공업에 대한 주요수출촉진책으로는 수출산업에 대한 조세감면, 보조금지급, 보호관세등으로 幼稚단계에 있는 수출산업을 직접 보호하고,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의 탈출을위한 막대한 신규 투자소요를 조달하기 위해 국세청신설, 차관자금에 대한 정부지불보증제의 도입등 과감한 제도개선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62∼'71 기간에 섬유, 신발 등 경공업제품을 위주로 한 년평균 40%의 수출증가에 힘입어 년평균 9.5%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괄목할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 경공업의 이러한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증대되는 海外原資材需要를 輪入代替하기 위하여, 또한 비교우위가 점차 약화되는 단순노동집약적 경공업으로부터 高附加價値의 산업으로의 이행을 위해 중화학 공업 건설에 주력하게 되었다. 중화학공업은 투자의 懷妊기간이 길어서 자금조달자체가 인플레적이며 또한 그간의 고도성장과 中東건설수출 등에 힘입어 '70년대 말까지 년평균 17%이상의 높은 물가상승을 유발했고, 이것은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소득분배를 크게 惡化시키게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기조를 安定化政策으로 전환하여 통화량의 증가억제, 재정규모긴축, 일부 중화학공업투자의 연기 등의 정책 전환으로 이후 고도성장을 위한 成長潛在力을 배양하는데 주력하였다.
    한편 정부는 개방화, 국제화추세에 따라 국내산업의 競爭기반을 다지고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自由化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수입 자유화를 단행하여 1988년에 수입자유화율을 95%로 제고시켰고, 대내적으로는 가격규제를 완화하면서 공정경쟁의 촉진을 위해 공정거래제도를 도입 시행하였다. '80년대 전반기 및 중반기에 시행된 이 같은 안정화정책과 자유화정책은 우리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제고시켜 때마침 "3低" 現象과 더불어 '80년대 하반기에 고도의 경제성장과 국제수지흑자전환, 물가안정 달성이라는 우리 경제의 황금기를 맞게 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일련의 민주화 과정에서 임금수준의 급등, 근로 및 기업의욕의 저상, 소득증가 및 수입자유화에 편승한 과소비열풍 등으로 '80년대 말에 이룩한 우리경제의 괄목할 성과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여 成長潛在力을 유지하는데 실패함으로서 또다시 경제성장의 둔화, 국제수지의 赤字反轉, 물가상승의 재현등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경제가 이제 선진국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또 한번 고도성장을 해야하며 그 승패여부는 현재의 이러한 새로운 挑戰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서 이제는 사회경제적인 均衡과 衡平의 바탕위에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鼓舞的으로 일할 수 있는 經濟的 力動性(Economic Dynamism)을 창조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지난 30년간의 한국경제의 개발경험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경제개발 성공의 주요요인으로서 첫째 수출주도형 대외지향 개발전략, 둘째, 물가안정위에서의 시장기능, 셋째투자재원부족에 충당하기 위한 외자도입, 넷째 한국경제의 경제개발 吸收能力, 다섯째 정치사회적인 안정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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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0년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공사례의 하나이다. 1962년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 우리경제는 연 3%의 인구증가율, 83불의 일인당 GNP,만성적민 高失業率, 부존...

    지난 30년간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공사례의 하나이다. 1962년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 우리경제는 연 3%의 인구증가율, 83불의 일인당 GNP,만성적민 高失業率, 부존자원 빈약 등 전형적인 저개발국 경제였다 더욱이 R.Nurkse교수가 지적한 대로 저소득 → 저저측 → 저투자 → 저생산 → 저소득으로 되돌아오는 貧因의 惡循環을 계속함으로서 경제 성장의 轉機를 마련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우리의 유일한 資産은 높은 교육열로 가꾸어낸 우수한 人力資源 뿐이었다.
    이러한 여건하에서 경제개발에 대한 온국민의 절박한 열망이 있었으나 우리 경제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정부가 1962년부터 직접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는바 개발의 基本戰略을 輸出主導型 對對指向開發(Outward-looking development strategy)에 두었다. 이러한 개발전략은 빈약한 천연자원, 협소한 국내시장, 풍부한 양질의 노동인력을 가진 경제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개발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수출주도 산업으로는 당시 우리 경제가 比較優位에 있었던 勞動集約的인 輕工業을그 대상으로 결정하였는바 경공업을 우선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시 후진국 개발 모형논쟁에서 A.0.Hirschman의 不均衡成長論에 따른 것이며, 노동집약적 산업을 선택한 것은 潛在失業을 資本蓄積에 동원할 것을 주장한 W.A. Lewis 교수의 권고를 받아들인 것이다.
    경공업에 대한 주요수출촉진책으로는 수출산업에 대한 조세감면, 보조금지급, 보호관세등으로 幼稚단계에 있는 수출산업을 직접 보호하고,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의 탈출을위한 막대한 신규 투자소요를 조달하기 위해 국세청신설, 차관자금에 대한 정부지불보증제의 도입등 과감한 제도개선도 단행하였다. 그 결과 1962∼'71 기간에 섬유, 신발 등 경공업제품을 위주로 한 년평균 40%의 수출증가에 힘입어 년평균 9.5%의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괄목할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 경공업의 이러한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증대되는 海外原資材需要를 輪入代替하기 위하여, 또한 비교우위가 점차 약화되는 단순노동집약적 경공업으로부터 高附加價値의 산업으로의 이행을 위해 중화학 공업 건설에 주력하게 되었다. 중화학공업은 투자의 懷妊기간이 길어서 자금조달자체가 인플레적이며 또한 그간의 고도성장과 中東건설수출 등에 힘입어 '70년대 말까지 년평균 17%이상의 높은 물가상승을 유발했고, 이것은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소득분배를 크게 惡化시키게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기조를 安定化政策으로 전환하여 통화량의 증가억제, 재정규모긴축, 일부 중화학공업투자의 연기 등의 정책 전환으로 이후 고도성장을 위한 成長潛在力을 배양하는데 주력하였다.
    한편 정부는 개방화, 국제화추세에 따라 국내산업의 競爭기반을 다지고 국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自由化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대외적으로는 수입 자유화를 단행하여 1988년에 수입자유화율을 95%로 제고시켰고, 대내적으로는 가격규제를 완화하면서 공정경쟁의 촉진을 위해 공정거래제도를 도입 시행하였다. '80년대 전반기 및 중반기에 시행된 이 같은 안정화정책과 자유화정책은 우리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제고시켜 때마침 "3低" 現象과 더불어 '80년대 하반기에 고도의 경제성장과 국제수지흑자전환, 물가안정 달성이라는 우리 경제의 황금기를 맞게 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일련의 민주화 과정에서 임금수준의 급등, 근로 및 기업의욕의 저상, 소득증가 및 수입자유화에 편승한 과소비열풍 등으로 '80년대 말에 이룩한 우리경제의 괄목할 성과를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여 成長潛在力을 유지하는데 실패함으로서 또다시 경제성장의 둔화, 국제수지의 赤字反轉, 물가상승의 재현등 새로운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국경제가 이제 선진국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또 한번 고도성장을 해야하며 그 승패여부는 현재의 이러한 새로운 挑戰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서 이제는 사회경제적인 均衡과 衡平의 바탕위에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鼓舞的으로 일할 수 있는 經濟的 力動性(Economic Dynamism)을 창조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지난 30년간의 한국경제의 개발경험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은 경제개발 성공의 주요요인으로서 첫째 수출주도형 대외지향 개발전략, 둘째, 물가안정위에서의 시장기능, 셋째투자재원부족에 충당하기 위한 외자도입, 넷째 한국경제의 경제개발 吸收能力, 다섯째 정치사회적인 안정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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