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쌍방향의 장르 교섭 및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이다. 문자와 영상이라는 상이한 표현 양식을 기반으로 각기 다른 예술 영역을 구축해 온 문학과 영화 또한 자신의 경계...
바야흐로 쌍방향의 장르 교섭 및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이다. 문자와 영상이라는 상이한 표현 양식을 기반으로 각기 다른 예술 영역을 구축해 온 문학과 영화 또한 자신의 경계를 넘어선 창조적 만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근 TV 드라마의 사극과 영화에서는 역사적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기 보다는 역사적 개연성과 허구성의 외연을 확장시킴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해나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른바 ‘정체성’의 본질을 기존의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 스스로 ‘찾으며 만들어가는 구성적 개념’으로 파악할 때, 최근의 경향은 장르간의 교섭과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시대의 사극 양식을 개척하는 시도로 보인다. 당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는 야담 문학은 시대 현실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역사적 상상력에 요긴한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ꡔ於于野譚ꡕ에 실린 李禮順과 黃眞伊에 대한 이야기와 TV 드라마 <왕의 여자>와 영화 <황진이>(배창호 감독, 1986년 작)의 인물 형상을 대비해봄으로써 이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예순은 광해군과 金介屎, 李爾瞻의 대북파와 李貴, 金自點의 서인 세력과의 갈등 양상을 다층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 고리이다. 아울러 이예순의 파격적 삶은 조선조 유교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갈등하는 여성들의 정체성 문제 또한 환기시킬 만한 요소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할 만 하다. 요컨대 이예순은 드라마 전개에 있어 단순히 선악 대비의 인물 구도를 타파하고 보다 진지한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 형상인데, <왕의 여자>에서 이를 빠뜨린 것은 아쉽게 생각된다.
영화 <황진이>에서 ꡔ어우야담ꡕ의 삽화를 차용한 것은 李生과의 관계인데, 그것이 불화하는 연인 정도의 사이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ꡔ어우야담ꡕ의 이야기를 상당히 왜곡한 형태이며, 금강산 유람의 진정한 의미 또한 전혀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아울러 花潭과의 만남이나 李士宗과의 계약결혼은 반영되지 않았다. 고전 작품을 소재로 하여 새롭게 역사소설을 쓰거나, 영화로 만든다고 할 때 원래의 이야기를 변형하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의 문제로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변형은 의미 있는 재해석을 거쳐 오늘날에 요구되는 새로운 형상을 창출해 낼 때 가치를 지닌다 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영화 <황진이>에서는 의미 없는 변형만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서사적 스토리가 빈약하고 주제의식이 모호한 상태로 전락해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TV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당대의 시대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야담 문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역사적 개연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환기시키는 데에 일정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문학 연구자와 영상 산업 관계자의 활발한 소통과 공동 작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