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高麗時期 居士의 生活方式과 그 意味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0258084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고려시기 居士는 남성으로서 대부분 지배 신분에 속하였고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들은 속인이었지만 신실한 佛道의 추구 모습은 승려와 견줄만 했다. 거사라고 일컫지 않는 일반 속인들 가운데에도 독실한 信佛의 자세를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거사들은 불교 경전을 읽고 깊이 이해하거나,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禪旨를 깨닫기도 하였는데, 佛學수준에서 승려를 능가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거사들이 집단을 이루어 공동 수행하는 일은 거의 보이지 않아 개인적 차원에서의 信佛로 일관한 것으로 이해된다.
    거사들은 의식주의 생활에서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고 매우 검소한 모습을 보였다. 주로 베옷을 입었으며 짚신을 신었고, 육식을 피하여 채소?나물 등 거친 음식을 먹었으며, 가옥은 겨우 비바람을 막을 정도였다. 거사들의 이러한 철저한 생활은 승려의 그것을 뛰어넘는 수도 있었다.
    거사들은 생산에 소홀하고 재화를 늘려 가는 데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대체로 地代를 가혹하게 징수하거나 고리대와 상업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 없었으며, 非理나 不法을 저질러 致富하는 일을 삼가하였다.
    거사들은 불교의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보시행을 적극 실천하였다. 그들은 의술을 익히고 약을 조제해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힘썼으며, 먹거리를 제공해 굶주린 이를 구제하는 일에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여행자의 불편에 대해서도 그들은 관심을 기울였다. 고려사회에서 보시문화가 널리 보급되는 데에 거사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교설에 따른 생활방식이 고려 사회에서 널리 확산되도록 하는 데에는 거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생활모습은 당시에 높이 추앙되었으며, 당시인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불교가 지배적인 사회였지만, 거사가 보여준 삶의 방식이나 생활태도가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럼에도 거사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사회를 정화하는 의미를 가지며, 사회의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수용되고 이후 보편화하면서 불교 가치를 적극 실천하는 거사는 출현하기 힘들어졌다.
    번역하기

    고려시기 居士는 남성으로서 대부분 지배 신분에 속하였고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들은 속인이었지만 신실한 佛道의 추구 모습은 승려와 견줄만 했다. 거사라고 일컫지 않는 일반 속인들 가...

    고려시기 居士는 남성으로서 대부분 지배 신분에 속하였고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들은 속인이었지만 신실한 佛道의 추구 모습은 승려와 견줄만 했다. 거사라고 일컫지 않는 일반 속인들 가운데에도 독실한 信佛의 자세를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거사들은 불교 경전을 읽고 깊이 이해하거나,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禪旨를 깨닫기도 하였는데, 佛學수준에서 승려를 능가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거사들이 집단을 이루어 공동 수행하는 일은 거의 보이지 않아 개인적 차원에서의 信佛로 일관한 것으로 이해된다.
    거사들은 의식주의 생활에서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고 매우 검소한 모습을 보였다. 주로 베옷을 입었으며 짚신을 신었고, 육식을 피하여 채소?나물 등 거친 음식을 먹었으며, 가옥은 겨우 비바람을 막을 정도였다. 거사들의 이러한 철저한 생활은 승려의 그것을 뛰어넘는 수도 있었다.
    거사들은 생산에 소홀하고 재화를 늘려 가는 데 무관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대체로 地代를 가혹하게 징수하거나 고리대와 상업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 없었으며, 非理나 不法을 저질러 致富하는 일을 삼가하였다.
    거사들은 불교의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보시행을 적극 실천하였다. 그들은 의술을 익히고 약을 조제해 병든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힘썼으며, 먹거리를 제공해 굶주린 이를 구제하는 일에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여행자의 불편에 대해서도 그들은 관심을 기울였다. 고려사회에서 보시문화가 널리 보급되는 데에 거사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교설에 따른 생활방식이 고려 사회에서 널리 확산되도록 하는 데에는 거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생활모습은 당시에 높이 추앙되었으며, 당시인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삶에 가까운 것이었다. 불교가 지배적인 사회였지만, 거사가 보여준 삶의 방식이나 생활태도가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럼에도 거사가 보여준 삶의 자세는 사회를 정화하는 의미를 가지며, 사회의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고려말 성리학이 수용되고 이후 보편화하면서 불교 가치를 적극 실천하는 거사는 출현하기 힘들어졌다.

    더보기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e Goryeo era Buddhistic votary(geosa, 居士), male devotees of Buddhism, mostly belonged to the ruling class and held government posts. They were laymen, but comparable to Buddhist monks in sincerely seeking the way to Buddhahood. In addition, quite a few among ordinary laymen who were not referred to as geosa also strongly believed in Buddhism.
    Geosas showed impeccable attitudes in practicing their Buddhist beliefs. They read and profoundly understood Buddhist scriptures and grasped the essence of Seon, or meditation, by practicing meditation. Some of them outperformed monks in Buddhist studies. However, few geosas carried out these Buddhist activities in a group, suggesting that their Buddhist beliefs were practiced on the individual level.
    Geosas did not seek luxury in terms of clothing, food and shelter and led a very humble life. They largely wore hemp clothes and straw shoes, ate coarse food including vegetables instead of meat, and lived in shelters that barely protected them from the rain and cold. Some of them lived a more than humble life than Buddhist monks.
    Geosas neglected the production of crops, showing little interest in increasing their wealth. They neither imposed high rents nor actively involved in loan sharking or commerce. In addition, they avoided acquiring wealth through corruption or illegal activities.
    Geosas were actively involved in charity work to express the mercy of Buddhism. They learned medicine to prescribe drugs for sick people and willingly shared their crops with those suffering from hunger. They also offered their kindness to travelers. Given all this, it can be said that they contributed a lot to the prevalence of charity culture in Goryeo society.
    It is thought that geosas played a big role in spreading a life style based on Buddhist doctrines in Goryeo society. Their life style was highly respected and was considered close to the ideal life pursued by people in those days. Although Buddhism dominated society, geosas’ lifestyle and living attitudes were not common for people in those days. Such lifestyle and living attitudes were observed among only a small number of people. Nevertheless, geosas’ living attitudes helped to purify society and to alleviate tensions in society. Thanks to geosas, Buddhism could maintain a solid foundation in Goryeo society. However, as Neo-Confucianism was accepted and prevalent in the late Goryeo era, it became difficult to find geosas who actively practiced Buddhist value.
    번역하기

    In the Goryeo era Buddhistic votary(geosa, 居士), male devotees of Buddhism, mostly belonged to the ruling class and held government posts. They were laymen, but comparable to Buddhist monks in sincerely seeking the way to Buddhahood. In addition, q...

    In the Goryeo era Buddhistic votary(geosa, 居士), male devotees of Buddhism, mostly belonged to the ruling class and held government posts. They were laymen, but comparable to Buddhist monks in sincerely seeking the way to Buddhahood. In addition, quite a few among ordinary laymen who were not referred to as geosa also strongly believed in Buddhism.
    Geosas showed impeccable attitudes in practicing their Buddhist beliefs. They read and profoundly understood Buddhist scriptures and grasped the essence of Seon, or meditation, by practicing meditation. Some of them outperformed monks in Buddhist studies. However, few geosas carried out these Buddhist activities in a group, suggesting that their Buddhist beliefs were practiced on the individual level.
    Geosas did not seek luxury in terms of clothing, food and shelter and led a very humble life. They largely wore hemp clothes and straw shoes, ate coarse food including vegetables instead of meat, and lived in shelters that barely protected them from the rain and cold. Some of them lived a more than humble life than Buddhist monks.
    Geosas neglected the production of crops, showing little interest in increasing their wealth. They neither imposed high rents nor actively involved in loan sharking or commerce. In addition, they avoided acquiring wealth through corruption or illegal activities.
    Geosas were actively involved in charity work to express the mercy of Buddhism. They learned medicine to prescribe drugs for sick people and willingly shared their crops with those suffering from hunger. They also offered their kindness to travelers. Given all this, it can be said that they contributed a lot to the prevalence of charity culture in Goryeo society.
    It is thought that geosas played a big role in spreading a life style based on Buddhist doctrines in Goryeo society. Their life style was highly respected and was considered close to the ideal life pursued by people in those days. Although Buddhism dominated society, geosas’ lifestyle and living attitudes were not common for people in those days. Such lifestyle and living attitudes were observed among only a small number of people. Nevertheless, geosas’ living attitudes helped to purify society and to alleviate tensions in society. Thanks to geosas, Buddhism could maintain a solid foundation in Goryeo society. However, as Neo-Confucianism was accepted and prevalent in the late Goryeo era, it became difficult to find geosas who actively practiced Buddhist value.

    더보기

    목차 (Table of Contents)

    • 요약
    • 머리말
    • Ⅰ. 佛道의 추구
    • Ⅱ. 蔬食과 布衣 생활
    • Ⅲ. 生産과 蓄財에 대한 무관심
    • 요약
    • 머리말
    • Ⅰ. 佛道의 추구
    • Ⅱ. 蔬食과 布衣 생활
    • Ⅲ. 生産과 蓄財에 대한 무관심
    • Ⅳ. 적극적인 布施行의 실천
    •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李智冠, "歷代高僧碑文(高麗篇1․2․3․4)" 伽山文庫 1994

    2 "懶翁和尙歌頌"

    3 이병희, "한국불교사연구입문 下" 지식산업사 2013

    4 "한국고전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5 申榮勳, "주생활" 국사편찬위원회 2003

    6 이재율, "종교와 경제: 유교 불교 기독교의 경제윤리" 탑북스 2013

    7 조용헌, "이자현의 능엄선 연구" 12 : 1996

    8 장을병, "이승휴의 삶과 정치활동" 경인문화사 2008

    9 변동명, "이승휴" 2000

    10 李京子, "의생활" 국사편찬위원회 2003

    1 李智冠, "歷代高僧碑文(高麗篇1․2․3․4)" 伽山文庫 1994

    2 "懶翁和尙歌頌"

    3 이병희, "한국불교사연구입문 下" 지식산업사 2013

    4 "한국고전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5 申榮勳, "주생활" 국사편찬위원회 2003

    6 이재율, "종교와 경제: 유교 불교 기독교의 경제윤리" 탑북스 2013

    7 조용헌, "이자현의 능엄선 연구" 12 : 1996

    8 장을병, "이승휴의 삶과 정치활동" 경인문화사 2008

    9 변동명, "이승휴" 2000

    10 李京子, "의생활" 국사편찬위원회 2003

    11 이혜옥, "여성의 경제관념, 富의 추구, 가정 관리" 혜안 2007

    12 尹瑞石, "식생활" 국사편찬위원회 2003

    13 김용선, "생활인 이규보" 일조각 2013

    14 박진훈, "사치, 허영 그리고 검약" 혜안 2007

    15 朴奎祥, "불교사회경제학" 경서원 1999

    16 박경준, "불교사회경제사상"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0

    17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18 남동신, "목은 이색과 불교 승려의 시문(詩文) 교유" 한국역사연구회 (62) : 111-157, 2006

    19 이정호, "고려시대의 농업생산과 권농정책" 경인문화사 2009

    20 신규탁, "고려 중기 거사 불교와 이자현의 선 사상" 23 : 2004

    21 김상영, "고려 예종대 선종의 부흥과 불교계의 변화" 5 : 1988

    22 김영미, "고려 여성들의 불교 신앙과 수행"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9

    23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계율과 불교윤리" 조계종출판사 2011

    24 한국역사연구회, "개경의 생활사" 휴머니스트 2007

    25 徐景洙, "高麗의 居士佛敎" 1975

    26 李景植, "高麗時期土地制度硏究" 지식산업사 2012

    27 李炳熙, "高麗時期佛敎界의 布施活動" 4 : 2008

    28 이병희, "高麗時期 寺院의 술 生産과 消費" 효원사학회 44 : 227-269, 2013

    29 鄭濟奎, "高麗後期의 居士觀과 그 特性" 11 : 1999

    30 鄭濟奎, "高麗後期在家佛敎信者의 役割과社會的意味" 17 : 2002

    31 金龍善, "高麗墓誌銘集成" 翰林大學校出版部 2012

    32 "高麗史節要"

    33 "高麗史"

    34 崔柄憲, "高麗中期李資玄의 禪과 居士佛敎의 性格" 1983

    35 朴京安, "高麗中期庶民들의 經濟生活小考 - 徐兢의 高麗圖經을 중심으로 -" 혜안 2000

    36 조명제, "高麗中期 居士禪의 사상적 경향과 看話禪 수용의 기반" 부산경남사학회 (44) : 99-120, 2002

    37 "韓國佛敎大辭典(明文堂)"

    38 李景植, "韓國中世土地制度史 - 高麗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39 權近, "陽村集"

    40 崔滋, "補閑集 上"

    41 李穀, "稼亭集"

    42 許興植, "禪의 復興과 看話禪의 展開" 一潮閣 1986

    43 李仁老, "破閑集"

    44 "眞靜國師湖山錄"

    45 "眞覺國師語錄"

    46 李齊賢, "益齋亂藁"

    47 "白雲和尙語錄"

    48 고혜령, "牧隱集을 통해 본 李穡의 불교와의 관계" 진단학회 102 (102): 351-386, 2006

    49 宋昌漢, "牧隱李穡의 斥佛論에 대하여 - 恭愍王元年四月의 上疏文을 중심으로 -" 59 : 2000

    50 趙明濟, "牧隱李穡의 佛敎認識 - 性理學의 理解와 관련하여 -" 6 : 1993

    51 李穡, "牧隱文藁"

    52 "漢韓大辭典(단국대동양학연구소)"

    53 "漢語大詞典" 漢語大詞典出版社

    54 홍성익, "淸平寺와 韓國佛敎" 경인문화사 2009

    55 "東文選"

    56 李奎報, "東國李相國集"

    57 安啓賢, "李穡의 佛敎觀" 1965

    58 변동명, "李承休와 佛敎" 2001

    59 崔瀣, "拙稿千百"

    60 "太祖實錄"

    61 "太古和尙語錄"

    62 "大漢和辭典" 諸橋轍次

    63 李承休, "動安居士集"

    64 李載昌, "佛敎의 社會經濟觀" 10 : 1975

    65 申炳周, "16세기 處士型學者의 學風과 現實觀 - 金大有와 朴河談을 중심으로 -" 5 : 1997

    66 申炳周, "16세기 處士型士林의 擡頭와 學風 - 南冥曺植과 花潭徐敬德을 중심으로 -" 21 : 1998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4-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1 1.11 1.03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3 1.05 2.153 0.42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