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론: 북방민족 역사상의 복원을 통한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동아시아 역사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하여 북방민족의 역사상을 첫째, 10~14세기, 둘째, 14세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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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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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론: 북방민족 역사상의 복원을 통한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동아시아 역사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하여 북방민족의 역사상을 첫째, 10~14세기, 둘째, 14세기 후...
((1) 총론: 북방민족 역사상의 복원을 통한 동아시아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
동아시아 역사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하여 북방민족의 역사상을 첫째, 10~14세기, 둘째, 14세기 후반 원명 교체기, 셋째, 16~17세기 왜란과 호란이 발발한 시기, 넷째, 17세기 후반 만주족이 흥기하는 시기로 나누어 동아시아와 북아시아의 국제질서가 형성, 변화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혀보고자 한다.
(2) 전연의 맹과 고려의 외교적 대응
요·송이 대치하는 국제관계에서 전연의 맹을 체결하기까지 고려의 외교적 대응과 기본 전략을 분석하고, 전연의 맹에 대한 고려의 인식을 검토하며, 고려의 외교정책이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서 끼친 영향에 대해 접근하고자 한다.
(3) 明朝의 국제질서 재편 시도와 遼東
명의 국제질서 재편이라는 시각 하에 요동정책을 보는 시각의 문제점과 한계, 몽골 여진세력의 성장 과정에서 본 명-조선관계의 성격 등을 서술함으로써 명대 동북아시아사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4) 壬辰亂 전후 조선과 明祖의 북방인식과 역사공동운명론
조선은‘고구려 고토 회복’을 계승하고 동북지역을 조선의 북방지역으로 인식하고 북방정책을 전개하였지만, 명조의 동북지역 안정화 정책 때문에 억압되었다. 그런데 조선의 북방정책은 조선이 북경을 비롯한 중국 북부지역과의 관방교류에 편중하였고 상대적으로 강남지역과의 교류를 소홀히 하고 희생시켰다. 본 연구는 그러한 역사적 이유를 조선과 명조의 공동운명론적 역사인식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5) 明末 遼東의 동향과 朝·明 관계 ―‘監護朝鮮’論을 중심으로 ―
후금의 본격적인 요동 진출에 즈음하여, 조선의 동향에 대한 명의 의구심이 심화되면서 양국관계의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었다. 그 단적인 표현이 徐光啓 등의‘監護朝鮮’論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접하게 된 조선 당국은 연행사에게 辨誣의 중임을 맡겼다. 필자는 조선의 변무 공작 및 대명외교의 성공의 이면에는 조선의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외교활동이라는 주관적인 요인 외에, 당시 조선과 명조가 처한 객관적인 상황 및 양국의 중대 관련 국가인 후금의 동향, 특히 조선과 명조 그리고 후금 사이의 국제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6) 조선인의 기록을 통해 본 滿洲의 都城
도성의 역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도성공간구조는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다. 명말청초 만주 도성의 변화과정은 퍼아라성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산성중심의 만주식 도성으로부터, 중국식 도성제가 처음으로 이식되기 시작하는 허투아라성, 그리고 전형적인 중국식 도성제와 만주식 城市구조가 결합되는 형태의 요양 동경성, 그리고 중국식 도성제와 융합하여 독특한 만주식 도성제가 완성되는 형태를 나타내는 심양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만주의 도성문화의 변화상에 대하여 이 시기 만주를 방문하거나 체류하면서 직접 목도한 조선인들의 기록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7) 入關 전후 청과 조선관계―婚媾과 徵女 문제를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나타났던 국가간 혼인 관계 형성의 전통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특히 만주가 대청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만주와 몽골의 혼인 관계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만주-몽골간의 혼인관계가 대청체제를 수립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만주(청)-조선의 혼인관계가 갖고 있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입관 전 조선에 대한 만주(청)의 혼인 요구와 입관 후 도르곤 섭정기의 여자 징발 문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8) 18세기 북아시아 정세와 조선의 북방 인식
18세기는 소위 ‘康·雍·乾 盛世’로 불리는 淸朝의 극성기였지만, 청조는 이 시기에 ‘준갈 정벌’과‘티벳 복속’등 일련의 서북진출정책에 전념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식은 주로 燕行使를 통해 조선 조정에 보고되고 있었다. 본고는 이와 같은 조선의 자료에 담겨있는 청조의 서북진출과 관련된 사료를 중심으로 18세기 북아시아 정세를 재구성하고 이에 대한 조선의 인식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사에 있어서 북방민족의 의미와 역할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