譯經史의 관점에서 중국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시기는 인도불전의 漢譯이 시작되는 시점인 기원후 2세기 중반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後漢의 桓帝․靈帝 시기에 해당하는 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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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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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經史의 관점에서 중국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해진 시기는 인도불전의 漢譯이 시작되는 시점인 기원후 2세기 중반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後漢의 桓帝․靈帝 시기에 해당하는 이 무렵에 安世高는 아함경류의 초기불교와 아비다르마 불교 전적을, 支婁迦讖은 대승불교의 경전을 주로 번역하였다. 안세고와 지루가참이 처음으로 인도불전의 번역작업을 수행하던 시기인 2세기 중반 무렵부터 진정한 의미에서 중국문화와 인도문화의 대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초창기 불교는 중국의 전통사상, 특히 黃老思想인 神仙方述과 결합하였다가, 魏末에서 西晉 초기에 이르러 老莊思想의 일종인 玄學이 크게 유행하자 다시 魏晉玄學과의 융합을 시도하였다. 古譯 시대의 지루가참이 般若道行品經을 漢譯하면서 śūnya(空)와 tathatā(眞如)를 현학의 핵심 개념인 ‘無’와 ‘本無’로 각각 번역한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번역 사례는 당시의 역경가들이 般若空 사상과 玄學의 융합을 통해 인도불교와 중국 고유의 사상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측면을 해소하여,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인도불교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고역 시대에 자주 등장하는 핵심 번역어 가운데 노장사상의 전문술어가 많다는 사실을 통해, “중국문화가 노장사상의 세계 지평에 의거하여 인도불전의 세계관에 접근하는 해석학적 先理解의 기틀을 이미 마련하고 있었다”(이종철 2008: 24)는 사실을 알 수 있다.
格義는 ‘義’(의미)를 ‘格’(헤아리다)한다는 의미이다. “외래 종교인 불교를 전래자들이 중국 고유 사상과의 이질적인 면을 해소시키는 방법으로써 중국 고유 사상 가운데 불교 교리와 비슷한 개념을 이용하여 불교를 보다 쉽게 중국인들에게 접근 시키는 방법”(원필성 2011: 45), 즉 중국의 전통 사상체계에서 낯선 불교의 전문용어들을 중국인들에게 익숙한 유가 또는 도가의 유사한 개념을 빌어 이해시키는 방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노장사상의 ‘無’와 ‘本無’로 ‘空’과 ‘眞如’를 번역한 것 이외에, 노장사상의 ‘無爲’로 ‘涅槃’을, 노장사상의 ‘非身’으로 ‘無我’를, 유가사상의 ‘禮’로 ‘戒’를 번역 또는 해석한 것 등이 格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格義는 古譯 시대뿐 아니라 인도불교가 중국에 수용되는 과정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으로, 중국 불교의 시작과 함께 끊임없이 발전되어왔다고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 格義는 중국의 유사한 전통 개념과 인도불교의 전문술어를 대치시키는 방법이므로, 중국 전통 개념에 대한 선이해가 전문술어의 핵심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방해할 위험이 크다. 格義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동진 무렵에 이미 格義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중국문화와 인도문화의 대화 과정에서 발생한 格義는 생소한 인도불교의 개념들을 중국인들에게 친숙하게 접근시킨 功과 더불어, 전문술어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방해한 過를 함께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인도 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채택한 格義와 근대 동아시아가 서양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다듬어진 근대 번역어는 출발어(source language)와 도착어(target language) 사이의 의미 등가성(equivalence)을 둘러싸고 진행된 오랜 논쟁사의 두드러진 두 국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魏晉南北朝와 隋․唐을 거치면서 구마라습과 현장 등 번역가들의 노력에 의해 성립된 漢譯佛經은 동아시아 공동문어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렇게 형성된 동아시아 공동문어의 시대는 근대까지 이어졌다. 다시 말해, 魏晉 시기 이후의 格義와 근대 번역어의 생산은 모두 동아시아 공동문어라는 磁場 내에서 이루어진 번역 성과인 셈이다. 魏晉 이후로 축적된 格義의 성과에 대한 참조가 없었다면 근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서양의 학문과 사상, 제도 등을 담은 생소한 개념어를 번역하는 과정은 훨씬 지난하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근대 번역어들 가운데 ‘自由’와 같이 고대중국어의 어휘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으며 서양 개념어의 번역어로 채택된 ‘회귀 번역어’의 사례들은, 서양 개념어에 대한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작용도 했지만, 기존에 사용되던 단어에 의미 전환을 초래하여 불가피하게 혼란과 모순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이는 중국의 전통 개념과 인도불교의 전문술어를 대치시키는 과정에서 중국 전통 개념에 대한 선이해가 전문술어의 핵심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에 오히려 방해가 기도 하였던 格義라는 상황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요컨대 格義를 통해 탄생한 불교용어들이 산스크리트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중국어이기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근대 번역어들도 유럽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중국어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