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le oppres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Buddhism was still practiced by the people including the royal family. Many Buddhist services were carried out despite the opposition of Confucian authorities. Hunmin-jeongeum (訓民正音, Korean Alpha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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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oppres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Buddhism was still practiced by the people including the royal family. Many Buddhist services were carried out despite the opposition of Confucian authorities. Hunmin-jeongeum (訓民正音, Korean Alphabet)...
While oppres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Buddhism was still practiced by the people including the royal family. Many Buddhist services were carried out despite the opposition of Confucian authorities.
Hunmin-jeongeum (訓民正音, Korean Alphabet) played an important role during these royal Buddhist services. Many Buddhist texts have been written in Hunmin-jeongeum. Royal families of the Joseon Dynasty were involved in both Buddhism and Hunmin-jeongeum directly or indirectly.
After inventing Hunmin-jeongeum or the Korean Alphabet, texts written in Chinese characters were replaced with those in Korean by translating Chinese into Korean, or Eonhae (諺解). A representative book of the Eonhae style was the Seokbo-sangjeol (釋譜詳節, Short and Details of Sakyamuni Buddha’s Biography), which was print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King Sejo established the Gangyeong-dogam (刊經都監), or the Ministry of Printing and Publishing Buddhist Sutras, and ordered many Buddhist texts to be translated and published in Korean. The Won-gakgyeong-eonhae (圓覺經諺解) has strong ties to the establishment of Won-gaksa (圓覺寺) Temple, one of royal memorial temples. The Sangwonsa-jungchang-gwonseonmun (上院寺重創勸善文) depicts how royal families carried out their Buddhist services.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and King Yeonsan after King Sejo, it became common practice for the wives and mothers of nobility to perform sacred Buddhist rites.
불교는 조선조에 많은 억압을 받았으나, 여전히 왕실을 비롯한 백성들에게신앙되었다. 유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실을 중심으로 한 불사가 행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불사의 과...
불교는 조선조에 많은 억압을 받았으나, 여전히 왕실을 비롯한 백성들에게신앙되었다. 유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실을 중심으로 한 불사가 행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불사의 과정에 훈민정음이 한 역할을 하였다.
세종은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정음으로 된 글의 다수는 불교와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종대에서 연산군대에 이르기까지 편찬된 우리글 가운데 60%이상이 불교와 관련되어있다. 이것은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친숙한불교로 유포하려 한 의도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왕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었음이 나타난다. 왕실은 또한 불사 행위에 있어서훈민정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자에서 우리글로의 전환은 언해라고 하는 과도기적현상을 겪는다. 이 언해의 대표적인 글이 『석보상절』을 비롯한 각 경전의 언해본이다. 세종은 또한 내불당 불사의 과정에 『사리영응기』를 편찬하였다. 세조는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많은 불전언해를 편찬하였다. 『원각경언해』는 왕실의 원찰인 원각사의 창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상원사중창권선문』 은 왕실이 주도의 불사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조 이후 성종, 연산군대의 불사 설행의 주체는 왕에서 왕후 혹은 대비로 전향되게 된다. 왕실 여인들의 종교적 신념으로 불교관련 정음문헌의 편찬과 불사가 이루어짐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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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량부-세친의 찰나설의 재고 ‒ 찰나의 연속과 단절에 대한 중관학파 제논사의 해석을 중심으로 ‒
혜영(慧影) 『대지도론소(大智度論疏)』에 대한 기초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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