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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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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司馬遷이 天人과 古今의 이치를 궁구해 一家의 말을 이루고자 《史記》를 기획했을 때,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오늘날 신화전설이라 부르는 ‘너무나 오래된 것’에 대한 처리, 즉 司馬遷이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역사관에 부합하도록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찰이 본 연구의 첫 번째 연구범주이다.
      하나의 중심을 정점으로 삼아 체계적으로 조직된 질서, 이것은 漢의 大一統 제국이 추구하던 바이자 중국신화의 역사화가 도달한 귀착점이기도 하다. 중국신화 역사화의 완성과 관련하여 漢의 大一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신화역사화의 완성자인 司馬遷은 어떤 방식으로 신화를 역사화하여 大一統 사상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냈는지에 대한 고찰이 본 연구의 두 번째 연구범주이다.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과 그 의미, 이는 주어만 달리하게 되면 어느 시대에나 되물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즉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는 司馬遷의 시대로 종결된 문제가 아니며, 신화와 역사는 늘 맞부딪치며 현재적 의미망을 만들어낸다. 신화와 역사의 경계선은 합리성과 실재성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고 궁극적으로는 해석주체의 시각이 관건이 된다. 신화와 역사에 대한 司馬遷의 선택과 의미, 그리고 오늘날 학자들의 시각을 아울러 고찰함으로써 신화와 역사의 끝없는 마주침 속에 드러나는 선택과 배제의 메커니즘, 그리고 민족역사로서의 신화에 대한 반성이 본 연구의 세 번째 연구범주이다.


      1. 신화와 역사의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

      ① 진실과 허구의 기준은 무엇인가
      과거 전체의 역사를 쓰고자 했던 司馬遷은 〈五帝本紀〉로부터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史記》 〈五帝本紀贊〉에는 그가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자료를 다루었는지 밝혀져 있다. 司馬遷 자신의 언급대로 “五帝의 시대는 너무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믿고 서술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했다. 司馬遷은 역사를 서술하는 데 문헌자료뿐만 아니라 현지조사를 통해 확보한 구비전승자료도 참고하였으며, ‘합리’의 기준으로 그 자료들을 취사선택하였다. 儒家 외의 여러 학파들이 黃帝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거기에는 비합리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한편 孔子가 전한 〈五帝德〉과 〈帝系姓〉은 비교적 신뢰가 가는 문헌임에도 유가의 정식경전이 아니라서 유학자들조차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司馬遷은 현지조사를 통해 五帝의 사적이 노인들에게서 구비전승되고 있음을 알고 五帝의 실체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비록 《尙書》에는 五帝의 사적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春秋》·《國語》·〈五帝德〉·〈帝系姓〉 등의 문헌을 통해 빠진 부분들을 보충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司馬遷은 百家의 설과 현지조사를 통해 확보한 구비전승 자료를 ‘雅馴’, 즉 합리성이라는 기준에 의거하여 유가의 문헌기록과 비교한 뒤 취사선택을 통해 〈五帝本紀〉를 기술한 것이다.
      진실과 허구에 대한 司馬遷의 선택기준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司馬遷이 구비전승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던 현지조사의 경로를 추적하는 인문지리학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五帝本紀〉에서 밝힌 空桐·涿鹿·長江·淮水 지역은 물론 〈太史公自序〉·〈屈原賈生列傳〉·〈河渠書〉 등에서 밝힌 司馬遷의 현지조사 지역들이 黃帝·顓頊·堯·舜·禹 등의 자료출처지로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司馬遷이 신뢰했던 《尙書》·《春秋》·《國語》 및 〈五帝德〉과 〈帝系姓〉의 기록이 《史記》에 미친 영향관계를 추적하는 문헌학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물론 “考信於六藝”, “折中於夫子”로 요약할 수 있는 유가경전과 孔子에 대한 司馬遷의 신뢰 및 禮樂정신도 다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司馬遷의 최종적 선택기준이었던 ‘합리성’의 문제를 고대인들의 신화관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은 일상적이고 이치에 맞는 ‘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취하고 그에 반하는 ‘怪異’한 이야기를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진실과 허구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司馬遷의 인식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② 通史의 시각에서 어떻게 자료들을 처리할 것인가
      진실과 허구에 대한 司馬遷의 선택과 그의 역사관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가 현지조사 자료와 문헌기록을 상호검증하고 그것을 합리성에 비추어 취사선택해낸 진실은 그의 역사관이 보여주는 진실의 일부분이다. 司馬遷에게 있어서 그의 역사관이 추구하는 진실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에 의해 좌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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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司馬遷이 天人과 古今의 이치를 궁구해 一家의 말을 이루고자 《史記》를 기획했을 때,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오늘날 신화전설이라 부르는 ‘너무...

      司馬遷이 天人과 古今의 이치를 궁구해 一家의 말을 이루고자 《史記》를 기획했을 때,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보다 큰 문제였다. 오늘날 신화전설이라 부르는 ‘너무나 오래된 것’에 대한 처리, 즉 司馬遷이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취사선택하여 자신의 역사관에 부합하도록 만들었는지에 대한 고찰이 본 연구의 첫 번째 연구범주이다.
      하나의 중심을 정점으로 삼아 체계적으로 조직된 질서, 이것은 漢의 大一統 제국이 추구하던 바이자 중국신화의 역사화가 도달한 귀착점이기도 하다. 중국신화 역사화의 완성과 관련하여 漢의 大一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신화역사화의 완성자인 司馬遷은 어떤 방식으로 신화를 역사화하여 大一統 사상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냈는지에 대한 고찰이 본 연구의 두 번째 연구범주이다.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과 그 의미, 이는 주어만 달리하게 되면 어느 시대에나 되물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즉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는 司馬遷의 시대로 종결된 문제가 아니며, 신화와 역사는 늘 맞부딪치며 현재적 의미망을 만들어낸다. 신화와 역사의 경계선은 합리성과 실재성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고 궁극적으로는 해석주체의 시각이 관건이 된다. 신화와 역사에 대한 司馬遷의 선택과 의미, 그리고 오늘날 학자들의 시각을 아울러 고찰함으로써 신화와 역사의 끝없는 마주침 속에 드러나는 선택과 배제의 메커니즘, 그리고 민족역사로서의 신화에 대한 반성이 본 연구의 세 번째 연구범주이다.


      1. 신화와 역사의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

      ① 진실과 허구의 기준은 무엇인가
      과거 전체의 역사를 쓰고자 했던 司馬遷은 〈五帝本紀〉로부터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史記》 〈五帝本紀贊〉에는 그가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자료를 다루었는지 밝혀져 있다. 司馬遷 자신의 언급대로 “五帝의 시대는 너무 오래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로 믿고 서술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했다. 司馬遷은 역사를 서술하는 데 문헌자료뿐만 아니라 현지조사를 통해 확보한 구비전승자료도 참고하였으며, ‘합리’의 기준으로 그 자료들을 취사선택하였다. 儒家 외의 여러 학파들이 黃帝에 관해 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거기에는 비합리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한편 孔子가 전한 〈五帝德〉과 〈帝系姓〉은 비교적 신뢰가 가는 문헌임에도 유가의 정식경전이 아니라서 유학자들조차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司馬遷은 현지조사를 통해 五帝의 사적이 노인들에게서 구비전승되고 있음을 알고 五帝의 실체를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비록 《尙書》에는 五帝의 사적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春秋》·《國語》·〈五帝德〉·〈帝系姓〉 등의 문헌을 통해 빠진 부분들을 보충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司馬遷은 百家의 설과 현지조사를 통해 확보한 구비전승 자료를 ‘雅馴’, 즉 합리성이라는 기준에 의거하여 유가의 문헌기록과 비교한 뒤 취사선택을 통해 〈五帝本紀〉를 기술한 것이다.
      진실과 허구에 대한 司馬遷의 선택기준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司馬遷이 구비전승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던 현지조사의 경로를 추적하는 인문지리학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五帝本紀〉에서 밝힌 空桐·涿鹿·長江·淮水 지역은 물론 〈太史公自序〉·〈屈原賈生列傳〉·〈河渠書〉 등에서 밝힌 司馬遷의 현지조사 지역들이 黃帝·顓頊·堯·舜·禹 등의 자료출처지로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司馬遷이 신뢰했던 《尙書》·《春秋》·《國語》 및 〈五帝德〉과 〈帝系姓〉의 기록이 《史記》에 미친 영향관계를 추적하는 문헌학적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물론 “考信於六藝”, “折中於夫子”로 요약할 수 있는 유가경전과 孔子에 대한 司馬遷의 신뢰 및 禮樂정신도 다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司馬遷의 최종적 선택기준이었던 ‘합리성’의 문제를 고대인들의 신화관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보고자 한다.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司馬遷의 선택은 일상적이고 이치에 맞는 ‘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취하고 그에 반하는 ‘怪異’한 이야기를 제거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진실과 허구의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司馬遷의 인식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② 通史의 시각에서 어떻게 자료들을 처리할 것인가
      진실과 허구에 대한 司馬遷의 선택과 그의 역사관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가 현지조사 자료와 문헌기록을 상호검증하고 그것을 합리성에 비추어 취사선택해낸 진실은 그의 역사관이 보여주는 진실의 일부분이다. 司馬遷에게 있어서 그의 역사관이 추구하는 진실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실재했는지에 의해 좌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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