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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궁산문화 연구 과정과 편년 논리 = Historical Review of the Researches on Goongsan Culture in North Korea : Logic behind Chro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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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attempts to understand the logic of chronology and the study of Goongsan culture in the Pyeongnam and Whanghae Provinces where Chulmun(comb-pattern) pottery was found for the first time in Korean Peninsula.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in the 60’s, archaeology in North Korea had developed along with increased excavations following the development of works as national projects, as well as the growth of the number of researchers despite confusion about restoration under the new regime. The study of Goongsan culture had been done in this situation.
    The term Chulmun pottery, originally meaning pottery with a round base in the Pyeongnam and Whanghae Provinces, has been expanded to all kinds of Neolithic pottery after the 60’s. Chulmun pottery had been recognized as the one from the north of Korea or Siberia. However, the theory of origin was cahnged in accordance with regularized North Korea’s Juche ideology and purge of a leading archaeologist, Yuho Do. Rather from the north or Siberia, origin of the comb-pattern has been believed to come from North Korea itself, which emphasizes itso riginality.
    The chronological study of Goongsan culture has been changed; it has been divided into two phases or four phases in the 60’s, formulated into four phases in the 70’s, subdivided third and fourth phases and formulated into five phases in the 80’s and designated as Woonha culture and subdivided the five phases. Yuho Do had taken the lead in this chronological study until the mid 6’0s, and then Younggan Kim, Youngnam Kim and Guktae Seo followed him and took the lead until 80’s.
    The absolute date of Goongsan culture had been changed according to discovery of Seopo-hang site in the 60’s, and excavations around the northeast part of China in the 80’s, and excavation of Tangun’s tomb and the discussion about Dae-dong river culture in the 90’s. The upper limit of the absolute dat echanged from 2000 B.C .
    to 5000.B.C. and back to 7000 B.C., and the lowest limit from the end of 2000 B.C.
    to the first half of 4000 B.C.
    After the 90’s, the study of chronology in pottery still continues under the modern political-cultural situation. This nationalistic and doctrinal interpretation within anabruptly changing political situation hinders the development of academic freedom that Do aimed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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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ttempts to understand the logic of chronology and the study of Goongsan culture in the Pyeongnam and Whanghae Provinces where Chulmun(comb-pattern) pottery was found for the first time in Korean Peninsula.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ru...

    This study attempts to understand the logic of chronology and the study of Goongsan culture in the Pyeongnam and Whanghae Provinces where Chulmun(comb-pattern) pottery was found for the first time in Korean Peninsula.
    After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in the 60’s, archaeology in North Korea had developed along with increased excavations following the development of works as national projects, as well as the growth of the number of researchers despite confusion about restoration under the new regime. The study of Goongsan culture had been done in this situation.
    The term Chulmun pottery, originally meaning pottery with a round base in the Pyeongnam and Whanghae Provinces, has been expanded to all kinds of Neolithic pottery after the 60’s. Chulmun pottery had been recognized as the one from the north of Korea or Siberia. However, the theory of origin was cahnged in accordance with regularized North Korea’s Juche ideology and purge of a leading archaeologist, Yuho Do. Rather from the north or Siberia, origin of the comb-pattern has been believed to come from North Korea itself, which emphasizes itso riginality.
    The chronological study of Goongsan culture has been changed; it has been divided into two phases or four phases in the 60’s, formulated into four phases in the 70’s, subdivided third and fourth phases and formulated into five phases in the 80’s and designated as Woonha culture and subdivided the five phases. Yuho Do had taken the lead in this chronological study until the mid 6’0s, and then Younggan Kim, Youngnam Kim and Guktae Seo followed him and took the lead until 80’s.
    The absolute date of Goongsan culture had been changed according to discovery of Seopo-hang site in the 60’s, and excavations around the northeast part of China in the 80’s, and excavation of Tangun’s tomb and the discussion about Dae-dong river culture in the 90’s. The upper limit of the absolute dat echanged from 2000 B.C .
    to 5000.B.C. and back to 7000 B.C., and the lowest limit from the end of 2000 B.C.
    to the first half of 4000 B.C.
    After the 90’s, the study of chronology in pottery still continues under the modern political-cultural situation. This nationalistic and doctrinal interpretation within anabruptly changing political situation hinders the development of academic freedom that Do aimed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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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처음으로 빗살무늬토기 유적이 발굴되고, 신석기시대 편년을 주도한 지역인 평남, 황해지역의 궁산문화 연구 과정과 편년 논리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북한의 고고학은 해방 후 1960년대에 이르기 까지 정권 수립과 전후 복구 과정 속에서 제도 및 기구 정비, 개발에 따른 발굴조사의 폭증, 연구 인력의 양성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궁산문화의 설정 및 편년 역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능하였다. 서북조선에 보이는 유문의 원저・환저 토기만을 지칭하던 ‘빗살무늬토기’ 개념은 1960년 이후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으며, 북구 및 시베리아 계통으로 처음부터 인식되었다. 이러한 계통론은 1960년대 중후반 주체사상의 전면화 및 도유호의 숙청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문화 발전의 고유성이 강조된다. 궁산문화 편년 연구 추이는 60년대의 궁산문화 설정 및 전・후기 세분, 4기 편년, 70년대의 궁산 4기 체제 공식화 및 편년 조정, 80년대 궁산 3・4기의 세분 시도 및 5기 체제 확립, 90년대 이후 운하 문화 설정 및 5기 세분 시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이전은 도유호가, 그 이후 1980년대까지는 김용간, 김용남, 서국태가 연구를 주도하였다. 궁산문화의 절대연대는 문화명 설정 이후 1960년대 서포항유적 발굴(유적 발굴 성과), 1980년대 중국 동북지역 포괄(대상 범위 확장), 1990년대 단군릉 발굴과 대동강문화론(정치 논리 개입) 등의 주요한 계기들을 겪으면서 상한은 기원전 2천년기에서 5천년기를 거쳐 7천년기로, 하한은 기원전 2천년기 말에서 4천년기 전반으로 변화되었다. 1990년대 정치 논리개입 이전까지는 조사와 연구 성과의 확대에 힘입은 긍정적 변화 과정이었지만 그 이후는 학문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북한신석기고고학 분야는 1960년대 이래 도유호의 유산을 극복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화종태를 중시하여 편년하는 입장, 태토의 차이를 편년에서 매우 중시하는 입장 등 주요 방법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정치적 환경 변화 속에서 전파론적 해석을 대신한 국수주의적이고 교조적인 해석틀은 오히려 도유호가 원했던 자유로운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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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처음으로 빗살무늬토기 유적이 발굴되고, 신석기시대 편년을 주도한 지역인 평남, 황해지역의 궁산문화 연구 과정과 편년 논리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북한의 고고학은 해방 후 196...

    본고는 처음으로 빗살무늬토기 유적이 발굴되고, 신석기시대 편년을 주도한 지역인 평남, 황해지역의 궁산문화 연구 과정과 편년 논리 검토를 목적으로 하였다. 북한의 고고학은 해방 후 1960년대에 이르기 까지 정권 수립과 전후 복구 과정 속에서 제도 및 기구 정비, 개발에 따른 발굴조사의 폭증, 연구 인력의 양성과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궁산문화의 설정 및 편년 역시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능하였다. 서북조선에 보이는 유문의 원저・환저 토기만을 지칭하던 ‘빗살무늬토기’ 개념은 1960년 이후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으며, 북구 및 시베리아 계통으로 처음부터 인식되었다. 이러한 계통론은 1960년대 중후반 주체사상의 전면화 및 도유호의 숙청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문화 발전의 고유성이 강조된다. 궁산문화 편년 연구 추이는 60년대의 궁산문화 설정 및 전・후기 세분, 4기 편년, 70년대의 궁산 4기 체제 공식화 및 편년 조정, 80년대 궁산 3・4기의 세분 시도 및 5기 체제 확립, 90년대 이후 운하 문화 설정 및 5기 세분 시도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이전은 도유호가, 그 이후 1980년대까지는 김용간, 김용남, 서국태가 연구를 주도하였다. 궁산문화의 절대연대는 문화명 설정 이후 1960년대 서포항유적 발굴(유적 발굴 성과), 1980년대 중국 동북지역 포괄(대상 범위 확장), 1990년대 단군릉 발굴과 대동강문화론(정치 논리 개입) 등의 주요한 계기들을 겪으면서 상한은 기원전 2천년기에서 5천년기를 거쳐 7천년기로, 하한은 기원전 2천년기 말에서 4천년기 전반으로 변화되었다. 1990년대 정치 논리개입 이전까지는 조사와 연구 성과의 확대에 힘입은 긍정적 변화 과정이었지만 그 이후는 학문적으로 평가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북한신석기고고학 분야는 1960년대 이래 도유호의 유산을 극복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화종태를 중시하여 편년하는 입장, 태토의 차이를 편년에서 매우 중시하는 입장 등 주요 방법론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정치적 환경 변화 속에서 전파론적 해석을 대신한 국수주의적이고 교조적인 해석틀은 오히려 도유호가 원했던 자유로운 학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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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정백운, "해방 후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 4 : 1958

    2 황기덕, "함경북도 지방 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2 )" 2 : 1957

    3 한창균, "한국의 선사시대에 대한 북한 고고학계의 동향과 시각" 한국고대사학회 25 : 5-28, 2002

    4 이성주, "한국선사고고학사" 까치 1992

    5 문화유산편집실, "학계소식-도유호 동지에게 박사학위 수여" 3 : 1961

    6 한은숙, "평양지방에서의 신석기시대 말기~청동기시대 초기 질그릇갖춤새변천에 대한 고찰" 4 : 2008

    7 전경수, "평양 정권이 숙청한 인류학자 한흥수韓( 興洙 1909~?)" 11 : 2015

    8 리주현, "총론"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9

    9 이기성, "초기 북한 고고학의 신석기·청동기시대 구분 - 일제강점기 고고학의 극복과 문화전파론 -" 호서고고학회 (25) : 4-29, 2011

    10 문화유산편집실,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 6 : 1958

    1 정백운, "해방 후 우리나라 고고학의 발전" 4 :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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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창균, "한국의 선사시대에 대한 북한 고고학계의 동향과 시각" 한국고대사학회 25 : 5-28, 2002

    4 이성주, "한국선사고고학사" 까치 1992

    5 문화유산편집실, "학계소식-도유호 동지에게 박사학위 수여" 3 : 1961

    6 한은숙, "평양지방에서의 신석기시대 말기~청동기시대 초기 질그릇갖춤새변천에 대한 고찰" 4 : 2008

    7 전경수, "평양 정권이 숙청한 인류학자 한흥수韓( 興洙 1909~?)" 11 : 2015

    8 리주현, "총론"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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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도유호, "지탑리유적발굴중간보고(2)" 57 (5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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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한창균, "1950년대의 북한고고학 연구" 53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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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20-07-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archaeology -> Archaeology: Journal of the Jungbu Archaeological Society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0-04-23 학회명변경 한글명 : 서울경기고고학회 -> 중부고고학회
    영문명 : Seoul Kyonggi Archaeology Society -> The Jungbu Archaeolog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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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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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4 1.04 0.9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8 0.95 2.135 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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