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유호와 한흥수는 초기 북한 고고학계의 동향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유럽에서 유학하여 민속학과 선사학 등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해방 이후에...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5298850
2013
-
900
KCI등재
학술저널
76-117(42쪽)
8
0
상세조회0
다운로드국문 초록 (Abstract)
도유호와 한흥수는 초기 북한 고고학계의 동향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유럽에서 유학하여 민속학과 선사학 등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해방 이후에...
도유호와 한흥수는 초기 북한 고고학계의 동향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유럽에서 유학하여 민속학과 선사학 등에 관한 연구를 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북한에서 활동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도유호는 193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에서, 그리고 한흥수는 1940년 스위스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각각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비엔나 시절, 도유호에게 학문적으로 영향을 준 학자들은 헤르더, 그레브너, 슈미트, 코퍼스, 하이네겔데른, 멩힌 등이다. 도유호는 헤르더의 역사철학적 인식을 토대로 변증법적 발전사관의 논리를 세웠고, 20세기 초반 비엔나학파가 주창했던 문화권설을 배경으로 민속학과 선사고고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 나갔다. 이러한 지적 기반 위에서 중국 도시문화의 기원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는 1946년 10월 삼팔선을 넘어 월북하였다. 유럽 유학 이전, 한흥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 근거하여 조선의 원시시대 사회사를 연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반면에 그는 비엔나학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유물사관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강한 이론(異論)을 제기하였던 슈미트와 코퍼스, 그리고 1900년대 초반 스페인의 구석기문화 연구에 기여했던 오버마이어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였다. 그는 1947년 6월 체코 프라하에서 김일성의 친서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1948년경에 입북하였다. 도유호와 한흥수는 원시시대, 고고학, 민속학 등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면서 북한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원시사회의 성격, 생산관계, 혈연관계 등을 고찰하는 데 있어, 서로 상반된 주장과 접근 방법을 표명하며 여러 차례 학술 논쟁을 벌였다. 한국 고고학사의 측면에서 판단할 때, 그들의 논쟁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고조된 초기 북한 고고학계의 학문적인 동향을 반영해준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그들의 논쟁과 거기에서 논의된 주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시간적 공간에서 이루어진 한국 고고학사의 빈틈을 채워주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y went to Europe to study prehistory and ethnology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n proceeded to do research on prehistoric archaeology in North Korea after liberation. In Vienna, Do began to establish a dialectic development view of history...
They went to Europe to study prehistory and ethnology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n proceeded to do research on prehistoric archaeology in North Korea after liberation. In Vienna, Do began to establish a dialectic
development view of history and he extended his understanding to archaeology and ethnology on the basis of theory of Kulturkreise or ‘Cultural Circle’, prevalent in the Vienna School of Ethnology. Before studying in Europe, Han was deeply interested in elucidating social history of the primitive age in Korea on the basis of Marxist perspectives. However, he was writing his Ph.D thesis under the supervision of Obermaier and under the supervision of Schmidt and Koppers, the leading members of the Vienna School of Ethnology. They were actively worked in North Korea together sharing their academic interests. However, they had several enthusiastic debates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primitive society, relation of production, and kinship system, etc. Their discussions show two important aspects in the historical context in Korean archaeology. First, their debates reflect the academic trend of North Korean archaeology with a highly elated atmosphere of socialism in the early phase. Second, their discussion topics contribute to filling the gap, between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and the outbreak of Korean War, which was missing in the history of Korean archaeology.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손철성, "헤겔 & 마르크스. 역사를 움직이는 힘" 김영사 2008
2 강성호, "해제: 헤르더의 역사 사상, In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책세상 2010
3 이상엽, "해제: 리케르트의 문화과학론과 철학의 과제, In 문화과학과 자연과학" 책세상 246-263, 2007
4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휴전사" 1989
5 야로슬라브 올샤, jr, "한국을 여행한 7명의 체코인 이야기, In 1901년 체코인 브리즈의 서울 방문. 체코 여행가들의 서울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주한체코공화국대사관 144-211, 2011
6 강만길,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창작과 비평사 1996
7 방기중,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 1930・40년대 백남운의 학문과 정치경제사상" 역사비평사 1992
8 오바야시 다료, "프로베니우스의 이론, In 문화인류학 이론의 역사와 전개" 파란나라 98-116, 1995
9 박갑동, "통곡의 언덕에서" (주)서당 1991
10 리주현, "총론" 사화과학원 고고학연구소・사회과학정보쎈터 2009
1 손철성, "헤겔 & 마르크스. 역사를 움직이는 힘" 김영사 2008
2 강성호, "해제: 헤르더의 역사 사상, In 인류의 역사철학에 대한 이념" 책세상 2010
3 이상엽, "해제: 리케르트의 문화과학론과 철학의 과제, In 문화과학과 자연과학" 책세상 246-263, 2007
4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 휴전사" 1989
5 야로슬라브 올샤, jr, "한국을 여행한 7명의 체코인 이야기, In 1901년 체코인 브리즈의 서울 방문. 체코 여행가들의 서울 이야기" 서울역사박물관・주한체코공화국대사관 144-211, 2011
6 강만길,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 창작과 비평사 1996
7 방기중,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 1930・40년대 백남운의 학문과 정치경제사상" 역사비평사 1992
8 오바야시 다료, "프로베니우스의 이론, In 문화인류학 이론의 역사와 전개" 파란나라 98-116, 1995
9 박갑동, "통곡의 언덕에서" (주)서당 1991
10 리주현, "총론" 사화과학원 고고학연구소・사회과학정보쎈터 2009
11 한창균, "초기(1945~1950년)의 북한 고고학, In 中齋 張忠植博士 華甲紀念論叢(歷史 學篇)" 중재 장충식박사 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701-719, 1992
12 이기성, "초기 북한 고고학의 신석기·청동기시대 구분 - 일제강점기 고고학의 극복과 문화전파론 -" 호서고고학회 (25) : 4-29, 2011
13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 "창간사, In 문화유물 1" 1-2, 1949
14 "조선중앙년감 1953, in 』「국제 민주 법률가 협회 조사단이 발표한 조선에서의 미국 범죄에 관한 보고서」" 조선중앙통신사 1953
15 "조선중앙년감 1951~1952(국내편)" 조선중앙통신사
16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 임명에 관하여"
17 "조선력사편찬위원회의 조직 및 기본과업에 관한 결정서"
18 도유호, "조선 석기 시대 사상(史上)에서 새로 판명된 몇가지 사실에 관하여" 1 : 41-54, 1955
19 앨런 바너드, "인류학의 역사와 이론" 한길사 2003
20 동아일보, "윈大學에 朝鮮人講師, 都宥浩博士가 十年만에 歸國"
21 한흥수, "우리 전평대표는 세계근노대중 압헤 민족의 슯흠을 호소"
22 한흥수, "우리 민족의 명예를 위하야"
23 재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 기획, "오스트리아 속의 한국인" 리더스가이드 2012
24 오까 지꾸마, "슈미트의 이론, In 문화인류학 이론의 역사와 전개" 파란나라 84-97, 1995
25 요제프 스탈린,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마르크스의 언어학" 두레 85-150, 1986
26 브루스 트리거, "브루스 트리거의 고고학사" 사회평론 2010
27 이선복, "북한 고고학사 시론"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74 : 1-74, 1992
28 아야베 츠네오, "민족과 문화. 빌헬름 슈미트" 자작나무 134-143, 1999
29 나라사랑 편집부, "마르크스주의와 민족문제(발췌), In 마르크스 레닌주의 민족이론" 나라사랑 315-338, 1989
30 "독립(Korean Independence)"
31 고종석, "도유호: 한반도 ‘구석기’ 입증, 고고학 최고봉"
32 김오성, "다른 정당들과의 통합을 위한 인민당의 활동에대한 보고서(이 보고는 인민당 중앙위원이자 공산당원인 김오성이 진술하였다), In 러시아 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 문서군 172, 목록 614631, 문서철 3"
33 최광식, "논평: 한흥수의 〈原始社會史 硏究에 關한 覺書〉에 대한 검토, In 북한의 우리고대사 인식(I). 연구성과와 평가" 대륙연구소 출판부 31-35, 1991
34 김기석, "김일성종합대학의 창설에 관한 연구, In 북한의 교육과 과학기술" 경인문화사 45-87, 2006
35 유리우쓰・푸췩, "교형수의 수기" 조쏘문화협회중앙본부 1949
36 고든 차일드, "고든 차일드의 사회고고학" (주)사회평론 2009
37 프리드리히 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두레 2012
38 김정배, "韓民族 本土起源說과 辰國의 古代國家說, In 북한이 보는 우리 역사" 을유문화사 39-61, 1989
39 한길언, "金日成綜合大學歷史博物館" 2 : 65-73, 1950
40 "金大, 敎員履歷書, 文學部"
41 조운, "農樂에 關하여(座談會)" 2 : 41-51, 1950
42 김재원, "賀書, In 李丙燾博士九旬紀念韓國史學論叢" 두계이병도박사구순기념 한국사학논총간행위원회, 지식산업사 1987
43 유동주 증언, "蘇滿국경에서 바르샤바까지. 폴란드 교포의 體驗記" 436-451, 1989
44 한흥수, "維也納通信" 6 (6): 46-49, 1938
45 한흥수, "維也納日誌. 荒波의 孤舟 같은 墺地利의 近情" 5 (5): 24-44, 1937
46 中山淸隆, "第2次大戰後の北朝鮮考古學界と都宥浩の業績について, In 심봉근선생 고희기념논문선집 2" 심봉근선생 고희기념논문선집간행위원회 303-317, 2012
47 岡正雄, "石器時代の世界史(上卷)" 聖紀書房 1943
48 한흥수, "瑞西通信: 프리부륵에서" 3 (3): 66-69, 1941
49 국가보훈처, "獨立有功者功勳錄 제16권 (2004~2005년도 포상자)"
50 아・드・우달쪼브, "物質文化史硏究院30年" 2 : 87-94, 1950
51 한흥수, "海外短信" 5 (5): 104-106, 1937
52 한흥수, "民族文化遺産의 保存과 繼承에 關한 諸問題" 1 : 9-39, 1949
53 도유호, "民族問題에 關하야" 30 : 102-, 1932
54 한흥수, "朝鮮의 巨石文化硏究" 3 : 132-147, 1935
55 민주주의민족전선, "朝鮮解放年報" 1946
56 한흥수, "朝鮮石器文化槪說" 4 : 127-145, 1936
57 한흥수, "朝鮮民俗學의 樹立을 爲하여" 2 : 1-18, 1950
58 한흥수, "朝鮮文化硏究의 特殊性" 4 (4): 2-5, 1936
59 한흥수, "朝鮮原始社會論. 白南雲氏著 「朝鮮社會經濟史」에 對한 批判을 兼하야" 3 (3): 3-19, 1935
60 한흥수, "朝鮮原始史硏究에 關한 考古學上諸問題" 15 : 4-55, 1950
61 "會員消息" 14 : 192-, 1941
62 "昭和・戰前篇: K門 內外人外國在留, 旅行及保護, 取締"
63 자유신문, "新民, 共産黨에 合同正式提案"
64 도유호, "感想 (中) 感謝와 訂正"
65 도유호, "感想 (上) 感謝와 訂正"
66 한흥수, "彙報: 韓興洙氏의 書信" 6 : 157-160, 1936
67 "彙報" 15 : 151-153, 1947
68 매일신보, "建準, 第1回 委員會 開催를 위한 招請狀 發送(135人)"
69 도유호, "安岳에서 發見된 高句麗古墳들" 1 : 89-95, 1949
70 동아일, "太西洋 거친 波濤에 英獨軍의 海戰目睹. “餘生은 朝鮮史硏究에 바친다”, 動亂歐洲에서 都宥浩博士 昨夕 着京"
71 "在朝鮮美國陸軍司令部軍政廳 任命辭令 第56號"
72 "在朝鮮美國陸軍司令部軍政廳 任命辭令 第16號"
73 한흥수, "原始社會硏究의 重大性과 그 다음에 오는 諸問題" 3 (3): 56-62, 1935
74 한흥수, "原始社會史硏究에 關한 覺書" 2 : 117-132, 1948
75 이광린, "北韓의 考古學. 특히 都宥浩의 硏究를 中心으로"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20 : 105-136, 1990
76 도유호, "先史學의 唯物史觀的 考察을 爲한 몇개의 基本問題(下)" 16 : 22-45, 1950
77 도유호, "先史學의 唯物史觀的 考察을 爲한 몇개의 基本問題(上)" 15 : 56-103, 1950
78 심지연, "人民黨硏究"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경남대학교출판부 1991
79 "京城高等商業學校卒業生氏名"
80 도유호, "中國都市文化의 起源(二)" 13 : 110-145, 1941
81 도유호, "中國都市文化의 起源(三)" 14 : 149-191, 1941
82 도유호, "中國都市文化의 起源(一)" 12 : 160-201, 1940
83 Han, Hung-su, "The neolithic culture of Corea, with special regard to megalithic culture" 1940
84 Henninger, J., "Schmidt, Wilhelm"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14 : 56-58, 1974
85 "SUMMARY OF PROCEEDINGS, Fourth Session, Sub-Delegation on Agenda Item 2, Kaesong Armistice Conference"
86 Kaneko, E., "Robert von Heine-Geldern: 1885-1968" XIII : 1-10, 1970
87 Grottanelli, V., "Robert Heine-Geldern’s Contribution to Historical Ethnology" 10 (10): 374-376, 1969
88 Kohl, P.L, "Region, Politics, and Prehistory. Reassessing the Lingering Legacy of Oswald Menghin" 43 (43): 561-586, 2002
89 Cyong-Ho Do, "Probleme der koreanischen Geschichte in kulturellem Zusammenhang" Universität Wien 1935
90 "Nikolai Marr and his excavation at Ani"
91 Hohenwart-Gerlachstein, A., "Koppers, Wilhelm"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8 : 444-446, 1974
92 Cyong-Ho Do, "KONFUZIUS UND LAOTSE IM LICHTE DER CHINESISCHEN SOZIALGESCHICHTE 支那社會史上으로 본 公子와 老子(獨 文)" 8 : 1937
93 Baumann, H., "Graebner, Fritz" The Macmillan Company & The Free Press 6 : 240-241, 1974
94 Hung-Soo Han, "Die Stellung der Megalithkultur in der koreanischen Urgeschichte" Universität Freiburg 1940
세형동검 단계 중국 동북지역의 동과와 동모 遼寧式銅戈와 柳葉形銅鉾·細身形銅鉾를 중심으로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3 | 평가예정 | 계속평가 신청대상 (등재유지) | |
2018-01-01 | 평가 | 우수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1.49 | 1.49 | 1.2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32 | 1.4 | 2.51 | 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