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왕릉 23기를 대상으로 풍수지리학의 핵심 요소인 용맥(龍脈) 을 중심으로 왕릉 입지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조선 왕실이 풍수 원리 를 어떻게 인식하고 적용했는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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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전문대학원, 2026
학위논문(박사)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전문대학원 , 동양학과 천문지리학전공 , 2026. 2
2026
한국어
충청남도
158 ; 26 cm
지도교수: 김기찬
I804:44032-200000959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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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왕릉 23기를 대상으로 풍수지리학의 핵심 요소인 용맥(龍脈) 을 중심으로 왕릉 입지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조선 왕실이 풍수 원리 를 어떻게 인식하고 적용했는지를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풍수지리학에서 용·혈·사·수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지만, 본 논문은 특히 혈의 형성 과 직결되는 용맥을 연구의 중심 대상으로 삼았다. 연구 결과, 조선 왕릉은 일반 사대부 및 서민 묘와 달리 탐랑성·거문성· 무곡성 등 길성(吉星)만을 주산으로 선택하였으며, 용맥의 폭 또한 15~30m에 이르는 광폭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는 왕릉이 왕기를 수용·보존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었음을 의미하며, 용맥의 규모 역시 신분 질서를 반영하는 기 준으로 작용하였음을 보여준다. 반면 사대부와 서민 묘는 길성이 아닌 산에도 조성되었고, 용맥의 폭 역시 현저히 좁았다. 한편 일부 왕릉에서는 생룡이 아닌 읍룡·복룡·사룡·병룡이 선택되거나, 용맥이 단절된 위치에 능이 조성된 사례도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 후기 왕릉 에서는 용맥과의 연결이 약화되거나 산복에 조성된 경우가 증가하였는데, 이 는 정치적 상황, 왕권 약화, 대비 주도의 결정 구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전기와 후기의 비교 분석 결과, 전기에는 모든 왕릉이 용맥 위에 조성 되고 풍수 원리가 체계적으로 적용된 반면, 후기에는 용맥의 폭이 축소되고 용맥을 도외시한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풍수 원리의 쇠 퇴라기보다는 왕권 구조의 변화와 정치 환경이 풍수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 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조선왕릉의 용맥 분석을 통해 풍수지리학이 단순한 지형 판단을 넘어, 왕권과 정치 질서를 반영하는 사상적·제도적 장치였음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주제어: 조선왕릉, 용(龍), 용맥, 풍수, 기(氣), 혈, 지맥(地脈), 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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