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삼국시대 영역국가와 그 주변에 존재하였던 종족 및 지역을 해명하기 위하여 韓과 濊를 대상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삼국이 영역국가로 전환한 초기에도 그 내부에 종족 및 지역국...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A101087943
2015
Korean
종족 ; 생업 ; 예 ; 동예(영동예) ; 영서예 ; 한 ; race ; living styles ; Yae ; DongYae(the Yae race in Yeongdong) ; the Yae race in Yeongseo ; Han
KCI등재
학술저널
97-134(38쪽)
11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이 글은 삼국시대 영역국가와 그 주변에 존재하였던 종족 및 지역을 해명하기 위하여 韓과 濊를 대상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삼국이 영역국가로 전환한 초기에도 그 내부에 종족 및 지역국...
이 글은 삼국시대 영역국가와 그 주변에 존재하였던 종족 및 지역을 해명하기 위하여 韓과 濊를 대상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삼국이 영역국가로 전환한 초기에도 그 내부에 종족 및 지역국가가 존재한 이유를 외부요인에서 찾지 않고, 종족이 처한 자연 환경을 기반으로 한 생업경제라는 내부요인에서 찾아보았다.
삼국시대 한과 예의 존재양상을 잘 보여주는 예가 〈광개토대왕비〉에 보이는 ‘新來韓穢’이다. 광개토대왕은 정복한 한강유역의 구백제민을 城 단위로 편제하였는데, 종족명을 붙인 경우는 58성 가운데 6성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한강유역의 한족과 예족이 일정 지역에서 종족성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었지만, 두 종족 간 융화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보이는 예, 영동예, 영서예를 종래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은 영서예, 동쪽지역은 영동예로 파악하였지만, 『삼국지』와 낙랑 목독(木牘)에 근거하여 낭림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지역은 영서예, 동쪽지역은 영동예로 이해하였다. 산과 내 등 자연지형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던 예족은 수렵과 어로를 중요한 생업으로 하고 있었다. 결국 영동과 영서가 해양 어로와 수렵·하천 어로를 계기로 생업환경이 분화되면서 지역적으로 구분되어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삼국시대에 예족과 한족은 생업환경을 달리하면서 존재하였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생업을 공유하기 시작하였다. 예족은 산과 하천을 무대로 사냥과 어로 등의 생업을 통해 생존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예족 지역에 벼농사 등 농경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한족이 들어오면서 예족과 한족은 생업환경을 함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예족과 한족이 융합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한족과 예족은 종족적으로 구분되기보다는 점차 백제인, 고구려인으로 융화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Examined in this article is the issue of races and states during the ThreeDynasties period, in order to find a way to explain the dynamics between the ancient states(“Three Dynasties”) and the races in the area, based on tribal groups and local re...
Examined in this article is the issue of races and states during the ThreeDynasties period, in order to find a way to explain the dynamics between the ancient states(“Three Dynasties”) and the races in the area, based on tribal groups and local regions. And the focus of such examination is Han and Yae. Political entities based on races and local regions still existed even after the Three Dynasties became states with officially established territories, as entities ‘within them.’ Such coexistence seemingly came to form up because of the fact that all those races had been counting on specific natural environments and their own production methods.
The living condition of the people of Han and Yae that prevailed during the ThreeDynasties period is well documented in the term “SillaHanYae,” found from the Gwang’gaetoe Dae’wangbi epitaph. The Great Goguryeo king Gwang’gaetoe conquered the Hangang river basin, and absorbed the Baekje people in the region to have them serve as guardians of Goguryeo mausoleums. Such absorption process continued from one castle to another, as recorded in the epitaph, but among 64 cases in general, only 6 of them were recorded in the epitaph with their original names. This shows us the fact that the Han tribe and the Yae tribe had been maintaining a recognizable level of racial identity in the Hangang river area, and also the fact that they were already beginning to merge with each other at the time, to a certain degree.
Regarding the Yeongdong Yae group and the Yeongseo Yae group, all referred to in the “Eastern Barbarians” section(“Dong’Ihjeon”) of『Samgukji』(the “Chinese Three Dynasties”), previous studies considered the Yeongdong group as the one on the east side of the Taebaek mountains range and the Yeongseo group as the one on the west side. In this article, based on the record of Nak’rang Mokdok(木牘), the Mountain range in question is suggested as the Nang’rim mountains instead of the Taebaek mountains. The Yae race heavily depended upon mountains and streams, and pursued hunting and fishing for a living. The divergence into Yeongdong and Yeongseo was because their respective living environments forced them to choose between hunting and fishing. As living methods were dictated, outer perception of them also began to split.
However, upon the arrival of the Han race, which had long developed its living style upon agricultural production, the Yae race and Han race came to share the same living environment. They began to merge with each other, and in the process, racial distinctions continued to become less relevant, while their identities as either ‘Baekje’ or ‘Goguryeo’ citizens became more apparent and important.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송만영, "六角形住居址와漢城期百濟聚落" 한국고고학회 (74) : 76-117, 2010
2 이현혜, "한국사 4" 국사편찬위원회 1997
3 노태돈, "한국고대사" 경세원 2014
4 金度憲, "청동기시대 수렵과 채집" 한국청동기학회 3 : 2005
5 박경신, "중부지방 원삼국시대 취락 구조" 중부고고학회 11 (11): 75-114, 2012
6 손영종, "조선단대사(고구려사1)"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6
7 한지선,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한강Ⅰ" 2009
8 심재연,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한강Ⅰ" 2009
9 권오영, "원삼국기 한강유역 정치체의 존재양태와 백제국가의 통합양상" 중부고고학회 8 (8): 31-49, 2009
10 손영종, "요동지방 전한 군현들의 위치와 그 후의 변천(1)"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199 : 2006
1 송만영, "六角形住居址와漢城期百濟聚落" 한국고고학회 (74) : 76-117, 2010
2 이현혜, "한국사 4" 국사편찬위원회 1997
3 노태돈, "한국고대사" 경세원 2014
4 金度憲, "청동기시대 수렵과 채집" 한국청동기학회 3 : 2005
5 박경신, "중부지방 원삼국시대 취락 구조" 중부고고학회 11 (11): 75-114, 2012
6 손영종, "조선단대사(고구려사1)"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6
7 한지선,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한강Ⅰ" 2009
8 심재연,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한강Ⅰ" 2009
9 권오영, "원삼국기 한강유역 정치체의 존재양태와 백제국가의 통합양상" 중부고고학회 8 (8): 31-49, 2009
10 손영종, "요동지방 전한 군현들의 위치와 그 후의 변천(1)"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199 : 2006
11 金貞培, "예맥족에 관한 연구" 5 : 1968
12 김도헌, "신라고고학 上" 2014
13 金在弘, "신라(사로국)의 형성과 발전" 21 : 1996
14 김도헌, "수렵함정과 사냥법에 대한 검토" 호남고고학회 22 : 69-92, 2005
15 이준정, "선사 농경 연구의 새로운 동향" 사회평론 2009
16 尹善泰, "삼국지 동이전의 세계"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3
17 박경신, "백제의 변경; 화천 원천리유적" 2013
18 이상길, "백제의 변경; 화천 원천리유적" 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2013
19 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백제의 변경; 화천 원천리유적" 2013
20 김경호, "낙랑군 호구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10
21 윤선태, "낙랑군 호구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10
22 이성제, "낙랑군 호구부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10
23 손영종, "낙랑군 남부지역의 위치; ‘낙랑군 초원4년 현별 호구다소’통계자료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198 : 2006
24 金在弘, "금강유역 출토 百濟 儀仗用 살포" 考古學探究會 (創刊) : 2007
25 심재연, "근초고왕 때 백제 영토는 어디까지였나" 한성백제박물관 2014
26 朴時亨, "광개토왕릉비" 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27 서영수, "광개토대왕비의 재조명" 동북아역사재단 2013
28 부산복천박물관, "고대전사와 무기" 1999
29 박경철, "고구려와 예맥" 48 : 1997
30 박진욱, "고고학자료집 4" 1974
31 곽종철, "가야 고고학의 새로운 조명" 혜안 2003
32 武田幸男, "高句麗史と東アジア" 岩波書店 1989
33 李丙燾, "韓國史 古代篇" 을유문화사 1959
34 李丙燾,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35 金在弘, "韓國 古代 農業技術史 硏究; 鐵製 農具의 考古學" 考古 2011
36 예맥문화재연구원, "華川 原川里 遺蹟" 2013
37 畿甸文化財硏究院, "華城 石隅里 먹실遺蹟" 2007
38 노태돈, "百濟의 起源과 建國" 2007
39 朴淳發, "漢城百濟의 誕生" 서경문화사 2001
40 金在弘, "武器·武具와 農工具·漁具" 한일교섭의 고고학(삼국시대)연구회 2014
41 金在弘, "樂浪地域의 鳳山 養洞里 5호 塼室墓 출토 U자형쇠날" 韓國考古美術硏究所 14 : 2005
42 畿甸文化財硏究院, "坡州 瓦洞里Ⅲ 遺蹟" 2005
43 金庠基, "史海 1" 조선사연구회 1948
44 山中英彦, "古墳時代の鐵製漁撈具" 344 : 1992
45 李成市, "古代東アジアの民族と國家" 岩波書店 1998
46 김창석, "古代 嶺西地域의 種族과 文化變遷" 한국고대사학회 (51) : 5-49, 2008
47 徐榮洙, "中國正史 朝鮮傳 譯註一" 국사편찬위원회 1987
48 江原文化財硏究所, "下花溪里·哲亭里·驛內里遺蹟" 2005
49 김재홍, "『정관박물관』개관기념도록" 2014
50 이준정, "『농업의 고고학』, 한국고고학회편" 사회평론 2013
51 宋滿榮, "『고대사 연구의 변경』 강좌 한국고대사 10"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2003
52 경기도박물관, "『漢城百濟』 특별전 도록" 2006
53 여호규, "<廣開土王陵碑>에 나타난 高句麗 天下의 공간범위와 주변 族屬에 대한 인식" 역사문화연구소 (32) : 3-48, 2009
54 김창석, "4세기 이전 한반도 중부지역의 정치체와 정세 변동 -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 중부고고학회 13 (13): 31-58, 2014
55 우병철, "4~6세기 영남 동해안 지역의 문화와 사회" 동북아역사재단 2009
56 金在弘, "4~6세기 영남 동해안 지역의 문화와 사회" 동북아역사재단 2009
학술지 이력
|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 2026 | 평가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 202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 |
| 2017-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 2013-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10-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 |
| 2008-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 2005-01-01 | 등재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 2004-01-01 | 등재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 |
| 2002-01-01 | 등재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 |
학술지 인용정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 2016 | 1.69 | 1.69 | 1.84 |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 1.64 | 1.57 | 3.463 | 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