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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초기 왕릉제도의 정비과정 = Improving process of king's grave system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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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Joseon king's grave began to promote by making Korea Dynasty Gongmin king(恭愍王)'s grave to normal form. Many establishments which set up in Gongmin king's grave show a process of system of Song(宋) and Myeong(明) introduced at the society that buddhism was the mainstream. Taejo(太祖) of Joseon appointed four ancestors then made grave, constructed Jeong-Reung(貞陵). In particular, Jeong-Reung was built in a capital city as he conducted public service personally modeling Gongmin king's grave, it made change in the shape of Nanganseok(欄干石). Taejong(太宗) made a change in Jangmeongdeung(長明燈) as he built Je-Reung(齊陵) in 1407, and a new combination was born in 1408 by making Geonwon-Reung(建元陵) which selected form of Nanganseok of Jeong-Reung, Jangmeongdeung of Je-Reung. When Joseon was in the process of making confucianism society which based on 『Jujagarye(朱子家禮)』, also factors of buddhism was gotten rid of at king's grave. Sejong(世宗) devised a new Seoksil(石室) to bury together, and took steps to intensify establishments which is necessary for confucianism ceremony except buddhism establishments that arranged at king's grave. King's grave system that Sejong organized was arranged 『Sejongsillok Oryeui(世宗實錄 五禮儀)』 「Chijang(治葬)」. Improving king's grave system by Sejong reflected at 『Gukjo Oryeui(國朝五禮儀)』 and it could regulated Seokmul(石物) constitution of Joseon king's grave which built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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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seon king's grave began to promote by making Korea Dynasty Gongmin king(恭愍王)'s grave to normal form. Many establishments which set up in Gongmin king's grave show a process of system of Song(宋) and Myeong(明) introduced at the society that ...

    Joseon king's grave began to promote by making Korea Dynasty Gongmin king(恭愍王)'s grave to normal form. Many establishments which set up in Gongmin king's grave show a process of system of Song(宋) and Myeong(明) introduced at the society that buddhism was the mainstream. Taejo(太祖) of Joseon appointed four ancestors then made grave, constructed Jeong-Reung(貞陵). In particular, Jeong-Reung was built in a capital city as he conducted public service personally modeling Gongmin king's grave, it made change in the shape of Nanganseok(欄干石). Taejong(太宗) made a change in Jangmeongdeung(長明燈) as he built Je-Reung(齊陵) in 1407, and a new combination was born in 1408 by making Geonwon-Reung(建元陵) which selected form of Nanganseok of Jeong-Reung, Jangmeongdeung of Je-Reung. When Joseon was in the process of making confucianism society which based on 『Jujagarye(朱子家禮)』, also factors of buddhism was gotten rid of at king's grave. Sejong(世宗) devised a new Seoksil(石室) to bury together, and took steps to intensify establishments which is necessary for confucianism ceremony except buddhism establishments that arranged at king's grave. King's grave system that Sejong organized was arranged 『Sejongsillok Oryeui(世宗實錄 五禮儀)』 「Chijang(治葬)」. Improving king's grave system by Sejong reflected at 『Gukjo Oryeui(國朝五禮儀)』 and it could regulated Seokmul(石物) constitution of Joseon king's grave which built af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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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 왕릉은 고려 공민왕릉을 기본형태로 삼아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공민왕릉에 설치된 여러 시설물은 불교가 주류였던 사회에서 송나라와 명나라의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의 태조는 4대조를 추존하여 封陵하고, 貞陵을 조성하였다. 특히 정릉은 공민왕릉을 모델로 태조가 직접 공역을 지휘하며 도성 안에 조성되었는데, 난간석 형태에 변화를 주었다. 태종은 1407년 제릉을 조성하면서 장명등에 변화를 주었고, 1408년 정릉의 난간석과 제릉의 장명등 형식을 취하여 건원릉을 조성함으로써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졌다.
    조선이 점차 『주자가례』에 입각한 유교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왕릉에서도 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세종은 합장을 위한 새로운 석실을 고안하였으며, 왕릉에 배설되던 불교적인 시설물을 제외하고 유교의례에 필요한 시설물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세종이 정비한 왕릉제도는 『세종실록오례의』 「치장」조로 정리되었다. 세종의 왕릉제도 정비는 『국조오례의』에 반영되었으며, 이후 조성되는 조선왕릉의 석물구성을 규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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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왕릉은 고려 공민왕릉을 기본형태로 삼아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공민왕릉에 설치된 여러 시설물은 불교가 주류였던 사회에서 송나라와 명나라의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

    조선 왕릉은 고려 공민왕릉을 기본형태로 삼아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공민왕릉에 설치된 여러 시설물은 불교가 주류였던 사회에서 송나라와 명나라의 제도가 도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의 태조는 4대조를 추존하여 封陵하고, 貞陵을 조성하였다. 특히 정릉은 공민왕릉을 모델로 태조가 직접 공역을 지휘하며 도성 안에 조성되었는데, 난간석 형태에 변화를 주었다. 태종은 1407년 제릉을 조성하면서 장명등에 변화를 주었고, 1408년 정릉의 난간석과 제릉의 장명등 형식을 취하여 건원릉을 조성함으로써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졌다.
    조선이 점차 『주자가례』에 입각한 유교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왕릉에서도 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세종은 합장을 위한 새로운 석실을 고안하였으며, 왕릉에 배설되던 불교적인 시설물을 제외하고 유교의례에 필요한 시설물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세종이 정비한 왕릉제도는 『세종실록오례의』 「치장」조로 정리되었다. 세종의 왕릉제도 정비는 『국조오례의』에 반영되었으며, 이후 조성되는 조선왕릉의 석물구성을 규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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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원룡, "한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2003

    2 김원룡, "한국미술사" 범우사 1973

    3 鄭鍾秀, "조선초기 상장의례 연구" 中央大學校 大學院 1994

    4 김규연, "조선왕릉의 神路․御路 형식에 관한 연구 - 非定型 신로․어로를 중심으로 -" 한국전통조경학회 29 (29): 38-49, 2011

    5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Ⅰ] 종합학술조사보고서" 2009

    6 김상협, "조선왕릉 현궁(玄宮) 조성방법, In 능묘를 통해 본 동아시아 諸國의 위상" 고려대학교 박물관 2010

    7 전나나, "조선왕릉 봉분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일고 - 문헌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구조를 중심으로 -" 국립문화재연구소 45 (45): 52-69, 2012

    8 황정연, "조선시대 능비(陵碑)의 건립과 어필비(御筆碑)의 등장" 국립문화재연구소 42 (42): 20-49, 2009

    9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 신구문화사 2009

    10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으로 보는 북한국보유적" 2006

    1 김원룡, "한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2003

    2 김원룡, "한국미술사" 범우사 1973

    3 鄭鍾秀, "조선초기 상장의례 연구" 中央大學校 大學院 1994

    4 김규연, "조선왕릉의 神路․御路 형식에 관한 연구 - 非定型 신로․어로를 중심으로 -" 한국전통조경학회 29 (29): 38-49, 2011

    5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Ⅰ] 종합학술조사보고서" 2009

    6 김상협, "조선왕릉 현궁(玄宮) 조성방법, In 능묘를 통해 본 동아시아 諸國의 위상" 고려대학교 박물관 2010

    7 전나나, "조선왕릉 봉분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일고 - 문헌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구조를 중심으로 -" 국립문화재연구소 45 (45): 52-69, 2012

    8 황정연, "조선시대 능비(陵碑)의 건립과 어필비(御筆碑)의 등장" 국립문화재연구소 42 (42): 20-49, 2009

    9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 신구문화사 2009

    10 국립문화재연구소, "사진으로 보는 북한국보유적" 2006

    11 한국문원 편집실, "문화유산-왕릉" 한국문원 1995

    12 장경희, "고려왕릉" 예맥 2010

    13 한국문화원연합회경기도지회, "경기도능원총람 상․하" 2008

    14 秦弘燮, "韓國의 石造美術" 文藝出版社 1995

    15 林玲愛, "開城恭愍王陵石人像硏究" 한국불교미술사학회 2001

    16 金九鎭, "舊王陵神道碑와 石物에 대하여" 18 : 1975

    17 權容玉, "朝鮮王朝王陵文人石像의 服飾形態에 관한 연구" (4) : 1981

    18 金旼奎, "朝鮮時代長明燈硏究" 동국대학교 2008

    19 李敏植, "朝鮮時代 陵墓碑에 關한 硏究 : 경기도 지방을 중심으로" 漢城大學校 大學院 1996

    20 정해득, "朝鮮時代 京畿地域 墓祭石物 硏究" 조선시대사학회 (51) : 55-88, 2009

    21 조선총독부, "朝鮮古蹟圖譜"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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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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