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개편 이후의 역사는 종교적 단체로서의 면모보다는 사회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1920년대에 천도교 청년들은 ‘한울님’을 다분히 범신론적으로 해석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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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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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개편 이후의 역사는 종교적 단체로서의 면모보다는 사회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1920년대에 천도교 청년들은 ‘한울님’을 다분히 범신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초월성’을 탈각시키고, 일본을 통해 수입한 서양철학과 진화론을 통해 천도교 교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주류를 형성하였다. 때문에 동학초기의 영성은 물론이고 1910년대까지만 해도 강조되었던 영성이나 영적(靈迹)에 대한 논의는 1920년에 들어와서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대신 문명개화의 근대적 종교로서 민족운동·사회운동을 이끌려고 하였다. 때문에 종교성은 고갈될 수밖에 없었고, 모든 사람들 안에 ‘내유신령’으로서의 한울님을 모시고 있고, 수련을 통해 그것을 발견·체험함으로써 모두가 한울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의 영성은, 체험이 빠진 ‘인내천주의’라는 이념적 표어로 대체되었고 그것은 민족운동의 이념적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담론적 도구로 전락하였다.
천도교혁신파 또한 ‘동도주의’를 내세우면서 동학의 전통을 계승하려고 했지만, 그 ‘동도주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고, 사회주의에 경도되면서 ‘한울님’에 대한 해석조차 신파의 이론가들보다 더 무신론에 가깝게 해석하면서 해월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중심으로 한 인본주의의 절대평등으로만 의미를 축소시킨 감이 있다. 이후 천도교는 이돈화의 ‘범인간적 민족주의’라든가 청우당의 ‘조선식 신민주주의’등의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사회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닌, 또는 미국이나 소련식 민주주의도 아닌 우리 사상에 바탕한 우리식 운동의 길, 또는 제3의 길을 모색하려 하였다.
모든 문화는 고유한 이야기와 흔적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들의 시도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 고민을 이어받아 ‘동도’, ‘동학’, 또는 ‘동’에 대한 성찰은 오늘날 더 깊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