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여말선초기에 진행된 儒佛交替를 배경으로 하여 ‘懶翁 顯彰 운동’의 추이와 그 역사적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懶翁은 생전에 ‘살아있는 부처[生佛]’로 추앙받았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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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여말선초기에 진행된 儒佛交替를 배경으로 하여 ‘懶翁 顯彰 운동’의 추이와 그 역사적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懶翁은 생전에 ‘살아있는 부처[生佛]’로 추앙받았다고 한...
본 연구에서는 여말선초기에 진행된 儒佛交替를 배경으로 하여 ‘懶翁 顯彰 운동’의 추이와 그 역사적 의미를 검토해 보았다. 懶翁은 생전에 ‘살아있는 부처[生佛]’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선종이 수행자 개개인의 成佛을 추구하기는 하나, 실제로 선종의 역사에서 ‘생불’로 추앙받은 승려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나옹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나옹이 돌연히 사망하고 그 직후에 몇 가지 異蹟이 목격됨으로써 나옹에 대한 추모열기가 전국적으로 조성되었으며, 이때부터 대략 150년 정도 나옹에 대한 현창 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나옹의 사리를 봉안한 「영전사지보제존자탑」이 전형적인 3층 석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승려의 부도를 불탑처럼 만든 예는 아직까지는 「영전사지보제존자탑」이 거의 유일하다. 더욱이 쌍탑으로 조성하였다는 점에서, 나옹을 부처로 숭배하였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나옹이 부처로 숭배되었기 때문에, 나옹의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 즉 ‘經’의 권위를 갖게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나옹을 부처의 화신으로 하는 ‘熾盛光明經’이다. 이 경전은 원본이 전하지 않고, 16세기 저술에 인용문 형태로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또 인왕산 국사당에는 나옹 진영이 모셔져 있는데, 그 모습은 나발과 육계를 한 전형적인 부처의 형상이다. 나옹은 물론이고 승려를 부처처럼 그린 경우도 이것이 유일하다. 국사당이 원래 남산에 설치되어 국가적인 제사를 받들던 곳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불탑형 부도, 熾盛光明經과 辯正經, 부처 형상의 나옹 진영은, 나옹이 생전에 생불로 추앙받았다는 기사와 더불어, 여말 선초 나옹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옹 추모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그 지향점이 나옹을 부처로 추앙하려는데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 점에서 나옹 현창 운동이라 부를 만하다. 부처란 불교도에게 있어서는 완전한 인격체[聖人]이자 동시에 절대자 즉 神이었다. 나옹 현창 운동에 참여한 불교도들은 그들을 구원해줄 존재로서 부처를 갈망하였으며, 懶翁을 그 역사적 화신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지배세력인 儒者들은 더 이상 부처를 존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부처를 ‘오랑캐’로 격하하고 그 가르침을 이단으로 몰아 배척하였다. 이는 조선사회의 지배세력이 불교적 가르침과 부처의 권위를 철저히 부정하였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