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영화 과거의 기억: 정보화 시대 인문학의 새로운 가능성

국문 초록 (Abstract)

인문학, 특히 역사학은 그 동안 주로 문자 텍스트에 의존하여 연구를 수행해 왔다. 물론 문자 텍스트가 대단히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고 또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료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최근 들어 이미지가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미지는 오늘날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화 현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역사학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초연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그 가운데 특히 영화라는 폭발적인 매체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영화라고 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극영화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뉴스 필름, 인터뷰 필름 등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이 자료들은 지금까지 역사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구의 선구적인 연구자들의 작업에 힘입어 영화는 역사의 중요한 자료이며 또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 무엇보다도 영화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그 시대 사회의 여러 면모들을 화면에 직접 담은 영화는 그 어느 문자 텍스트보다 강력하게 해당 사회에 대해 증언을 한다. 그것은 다큐멘터리 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극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스토리의 뒤에 깔려 있는 여러 면모들을 잘 분석하면 영화는 화면에 찍힌 대상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전해 주고, 더 나아가서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 - 국가이든, 자본이든, 특정 인종 집단이든 - 자체에 대해 중요한 정보들을 노출시킨다.
2. 또 영화는 예컨대 인터뷰의 방식을 통해서 사료를 제작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중요 인사들만이 글의 형태로 역사에 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발언하고 증언하도록 할 수 있다.
3. 또한 영화는 우리 시대의 역사 인식을 스토리에 담아서, 혹은 직접적인 현장 취재의 방식으로, 심지어는 "몰래 카메라"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마디로 영화는 기존의 문자 텍스트와는 현격히 다른 방식으로 역사의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대단히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가능성에 대해 서구의 역사학계는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주목하여 많은 성과를 내고 있고, 학회, 전문 학술지, 세미나 등의 여러 방식으로 이를 천착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와 같은 접근에 대해 우선은 배우고 또 더 나아가서 우리 나름의 독창적인 연구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웰옳磯?
그러나 영화를 역사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역사가들, 내지는 인문학 일반의 연구자들이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자를 다루는 것과는 다른, 이미지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과연 영화와 같은 이미지는 어떤 방식으로 역사인식을 나타내는가?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답하려고 한다. 우리의 가설은 영화는 문자 텍스트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여러 분야 종사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전공 위에서 공동의 연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서구의 발전된 이론을 단순히 수입하는 데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학과의 연계를 처음부터 고려하면서 진행하도록 해야 한다.
영화와 역사학의 조우는 대단히 실험적인 성격의 연구이지만, 그것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검증을 거친 실험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실험성을 통해, 현재 맥이 빠져 있는 인문학에 대해 하나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