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신라 중고시대 낭도와 화랑과의 관계를 살펴본 것이다. 먼저 낭도들은 신분에 따라 화랑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랐다. 眞骨 신분의 젊은이는 명예나 武事 등 화랑이 추구하는 理想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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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403-43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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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신라 중고시대 낭도와 화랑과의 관계를 살펴본 것이다. 먼저 낭도들은 신분에 따라 화랑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랐다. 眞骨 신분의 젊은이는 명예나 武事 등 화랑이 추구하는 理想을 ...
본고는 신라 중고시대 낭도와 화랑과의 관계를 살펴본 것이다. 먼저 낭도들은 신분에 따라 화랑을 선택하는 기준이 달랐다. 眞骨 신분의 젊은이는 명예나 武事 등 화랑이 추구하는 理想을 쫒는 경우가 많았고, 頭品 신분이나 平民의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출세나 지향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화랑을 선택하였다. 물론 화랑의 입장에서도 낭도가 되려고 찾아오는 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랑이 정한 어느 정도의 기준에 합당하였을 때 낭도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낭도와 화랑의 만남은 쉽지 않았지만 인연을 맺게 되면 낭도의 입장에서는 매우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으로 낭도와 화랑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화랑도 무리에서 모시던 화랑이 讓名하고 새로운 화랑이 선출되었을 때 그 휘하의 낭도들 가운데는 계속해서 낭도로 활동하지 않고 전임 화랑을 따라 양명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수의 무리를 거느린 화랑의 경우 모든 낭도들과 가깝게 지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골 신분을 가진 낭도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 그들은 낭도와 화랑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또한 낭도의 나이와 화랑의 나이를 지금까지는 서로 비슷한 것으로 파악하였는데, 연구 결과 대체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낭도들 가운데 관직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화랑과 낭도와의 관계가 친구나 동년배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의 관계가 카리스마적 관계도 아니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본고를 통해 신라 중고기 낭도들의 모습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그들의 성원권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自願에 의해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원들은 그들의 단체에 대하여 매우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것이다. 결국 낭도와 화랑이 모여 만든 화랑도는 청소년 집단의 공동체이거나 이해집단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다시금 입증된다고 하겠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is thesis examined Hwarang and Hwarangdo(the code of Hwarang) in the middle years of Shilla in the viewpoint of Nangdo. First, Nangdo had a different basis to choose Hwarang. Jingol, the true bones, mostly pursued the ideal such as fame and chivalry...
This thesis examined Hwarang and Hwarangdo(the code of Hwarang) in the middle years of Shilla in the viewpoint of Nangdo. First, Nangdo had a different basis to choose Hwarang. Jingol, the true bones, mostly pursued the ideal such as fame and chivalry while non-royal kins like Dupum and commoners chose Hwarang for their success and career advancement. However, that doesn't mean Hwarang unconditionally accepted Nangdo. They accepted Nangdo only if Nangdo met their standards. In other words, for Nangdo, having a relationship with Hwarang is quite difficult but very honorable to Nangdo.
Nangdo and Hwarang usually kept close relationship but sometimes didn't. For example, when one Hwarang retired and a new one replaced his position, the Nangdos under his control also retired. Also, it was hard for Hwarang with lots of Nangdos to have close relationship with all of them. With this situation, Jingol Nangdo's role was important. They were the medium of Nangdo and Hwarang.
Generally, it was accepted opinion that the age of Nangdo and Hwarang was similar. However, research found that there was numerical difference between the age of Nangdo and that of Hwarang. That was more outstanding when Nangdo was in government post. This situation implies the relationship between Hwarang and Nangdo. They were not about the same age and friends, either. Furthermore, they were not in the charismatic relationship.
To become Nangdo was making a decision, not automatically decided. It needed one's voluntary application and thus, Nangdo had strong pride for their organization. That proves Hwarangdo consisting of Nangdo and Hwarang was a sort of youth community or organization sharing same interests.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盧泰敦, "羅代의 門客"
2 李鍾旭, "신라 화랑도의 편성과 조직ㆍ변천" 10 : 1989
3 李鍾旭, "신라 중고대시의 화랑도" 27 : 1996
4 李基白, "韓國의 傳統社會와 兵制.韓國史學의 方向" 一潮閣 1978
5 三品彰英, "花郞の制定.新羅花郞の硏究" 三省堂. 1974
6 崔光植, "新羅의 花郞에 대한 新考察.한국의 사회와 역사" 一志社 1991
7 朴承吉, "新羅花郞徒의 敎政團體的 性格과 그 社會學的 意義" 2 : 1985
8 李純根, "新羅 貴族勢力과 결합한 武人勢力" 23 : 1991
9 李基東, "新羅 花郞徒의 社會學的 考察.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 1984
10 李基東, "新羅 花郞徒 연구의 現段階.李基白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 1997.新羅社會史硏究.一潮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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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李鍾旭, "신라 중고대시의 화랑도" 27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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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朱甫暾, "新羅 花郞徒 硏究의 現況과 課題" 8 : 1997
12 鄭雲龍, "新羅 花郞制 成立의 政治史的 意義.화랑문화의 신연구" 문덕사 1996
13 田美姬, "新羅 眞平王代 家臣集團의 官僚化와 그 限界" 48 : 1993
14 金煐泰, "僧侶郎徒考" 7 : 1970
15 李鍾旭, "三國遺事 竹旨郞條에 대한 一考察" 2 : 1986
16 金台植, "三國遺事 竹旨郞條 탈구축을 통한 新羅 花郞과 그 花主" 21 : 2008
17 "三國遺事"
18 李基白, "三國時代 佛敎 受容 그 社會的 意義.歷史學報.6 ; 1986.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 "三國史記"
‘신라삼국통일론’에서 ‘남북국론’으로 - 김영하, 2007「新羅中代社會硏究」, 일지사
신라불교사 연구를 위한 새로운 입문서 - 金福順, 2008「新思潮로서의 신라 불교와 왕권」, 景仁文化社
학술지 이력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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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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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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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69 | 1.69 | 1.8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1.64 | 1.57 | 3.463 | 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