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과 긍정적인 진술 사이의 모순을 해명함으로 바울의 율법신학을 이해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Ⅱ장에서 바울의 율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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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2005
학위논문 (석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 신학과신약학 전공 , 2005
2005
한국어
227.06 판사항(21)
서울
iii, 84p.; 30cm
참고문헌 : p.8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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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과 긍정적인 진술 사이의 모순을 해명함으로 바울의 율법신학을 이해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Ⅱ장에서 바울의 율법신학에 대한 연구사를 살펴보았는데, 종교개혁자들은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율법을 이해했으며 단지 루터와 깔뱅 사이에 소위 율법의 제3기능이라고 하는 구약성경의 도덕법에 대한 유효성에서 차이가 났을 뿐이다. 루터는 구약 율법이 신약 성경과 일치하는 한에 있어서만 구속력이 있다고 주장한 반면에, 깔뱅은 구약의 도덕법이 신자들에게 의무적인 것임을 주장하였다.
이런 전통적인 흐름에 대해 20세기 초엽 브레데는 바울의 신학에서 믿음에 의한 칭의가 중심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며 바울 당시 유대교에 대한 논쟁적인 반응으로 바울신학의 대표적인 중심축은 구속에 대한 종말론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또 스텐달은 정통적으로 주장되어온 것처럼 바울의 이신칭의 문제가 단지 죄용서를 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탐구라는 점에 대해 반박하면서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 문제였음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전통적인 입장에서 바울의 율법관 연구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이제는 바울의 사상을 그 당대 역사적 상황에서 전망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 샌더스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며 유대교의 율법관에 대해 바울이 율법주의적으로 보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에 대해 지금까지 학계는 찬반으로 나뉘어 토의하고 있다.
다음으로 Ⅲ장에서 바울 이전의 율법이해를 전승사적으로 살펴봄으로 바울의 율법관이 어떤 흐름 가운데서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았다. 먼저 구약에 있어서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했고, 이스라엘은 그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했다. 이런 구약의 기본적인 원리가 율법의 직접적인 기초이다. 따라서 율법을 어길 때 그 관계는 깨어지거나 붕괴된다. 구약성서와 예수 시대를 잇는 쿰란공동체는 자신들을 하나님의 언약공동체로 보고 그 공동체의 가입은 철저한 율법 수행을 전제하고 있다. 한편 쿰란 공동체의 성서 해석은 신약 공동체의 성서 해석과 공통점이 있는데, 두 공동체는 모두 성서를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자신들의 성서 해석자들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특정 지도자의 성서 해석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한편 역사적 예수는 메시아 시대의 토라 선포자이다. 예수는 십계명에 대해서는 동기까지 포함한 철저한 순종을 요구하였지만 제의적 계명에 대해서는 율법의 약화내지는 폐지를 주장했다. 예수에게서 율법의 강화는 좁은 의미의 윤리적 계명에 해당되고, 율법의 약화는 제사와 제의 규범에 관계된다.
Ⅳ장에서 로마서에 대한 배경 이해를 위해 바울 저술 당시의 로마 교회를 살펴보았는데, 형태는 회중이 모이는 교회의 모습을 아직 갖추지 못한 가정 교회였으며 구성원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공존하는데 유대인 추방령인 글라우디오 칙령의 영향으로 이방인이 우세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 방문을 앞두고 로마 교회에 있을지도 모를 자신에 대한 오해를 불신시키기 위해 일종의 자기 추천서 형식으로 자신의 복음을 변증적인 목적으로 썼다.
그 후에 Ⅴ장에서 본격적으로 로마서에서 율법에 대해 바울이 진술하는 내용 중에서 부정적인 진술들과 긍정적인 진술들을 나누어 석의 방법론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부정적인 진술은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는 율법(롬4:15)과 범죄를 더하게 하는 율법(롬 5:20상) 그리고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롬 7:5)이라는 세 구절로 요약해 보았다. 부정적 진술을 말하는 율법은 벗어나야 할 대상이다. 죄를 자극하고 충동질하는 율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죄의 권세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와 사망과 함께 무서운 삼두체제를 이루고 있는 세력이다. 이를 바울은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음으로 긍정하는 진술 죄를 깨닫고 정죄하는 율법(롬 3:20),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 율법(롬 3:21),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계명(롬 7:12)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수여한 율법(롬 9:4)이라는 네 구절로 요약해 보았다. 이처럼 율법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를 이해하는 것은 부정적인 진술보다 훨씬 수월하다. 율법의 기원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하나님께 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며 복음의 의를 증거하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은 생명과 구원을 증거하고 지시하고 있지 그 자체가 생명과 구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율법이 그를 좇는 이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법이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을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바울이 가장 이상적인 법으로 묘사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Ⅵ장에서 변증법적으로 이 대조적 진술을 해명해 보았다. 바울은 전통적인 유대인으로 긍정적인 진술을 하였는데 다메섹에서 부활한 그리스도와의 이후에 부정적인 진술이 나타났다고 본다. 부정적 진술과 그 반제인 긍정적 진술은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합이 이루어진다. 율법은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즉 완성이 되신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요구를 신자들로 하여금 성취케 하는 이가 성령이다. 하지만 신자 앞에는 성령을 좇음으로 인한 생명과 육신을 좇음으로 인한 사망이 놓여 있어 끊임없는 선택을 요청받는다. 대조적 진술에 대해 이원적으로 시간적으로 구분할 수 없으며,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낫다는 상대적인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에는 부정적인 진술이 있고 그 반대편에 위치한 긍정적인 진술이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통합되는 변증법적인 해석이 타당하다 할 것이다.
끝으로 Ⅶ장에서 바울의 율법신학을 마태 그리고 야고보와 비교하였다. 바울과 마태는 율법과 그리스도를 보는데서 시각차가 나타나는데, 바울은 율법과 예수의 단절을 시도하는데 비해 마태는 그리스도를 율법의 새로운 해석자 또는 내면까지 강화한 율법의 완성자로 본다. 이런 차이는 바울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음을 인정할 때 풀린다. 이방인 개심자들에게 도덕법을 제외한 율법은 자칫 멍에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마태 공동체는 바울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 근처 시리아에 거주했기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나름의 유대적 요소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율법을 약화시킬 이유가 이방인에 비해 적다. 다음으로 야고보와의 비교에서 발견된 차이점은 구원에 있어 믿음과 행위의 역할이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한 반면에 야고보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헛것이며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차이는 먼저 믿음과 행위라는 같은 용어를 다르게 사용한데서 발생하며, 바울도 행위에 대한 최후 심판을 남겨 두었기에 양자 모두 믿음과 행위가 구원의 요소라고 말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의 최후심판은 공력에 대한 심판이며 성령을 구원의 보증이라 한 점 그리고 로마서 8장 31절 이하에서 단지 칭의 받은 사람이 미래 구원을 받을 때 가질 확신만은 논한 것을 보면 현재의 칭의와 미래의 구원에 대한 뚜렷한 구별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야고보서가 바울의 선포를 오용하여 좋은 행실을 맺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엄중한 경고가 됨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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