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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전기 ‘迎契丹使臣儀’의 내용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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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10~12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고려-거란-송의 관계로 구축되었다. 특히 고려는 거란과 충돌 및 화호를 통하면서 사대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면은 『고려사』의 연대기 기사에서 사신 파견 및 왕래와 관련한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고려사』 예지 빈례 가운데 영북조조사의(迎北朝詔使儀)나 영북조기복고칙사의(迎北朝起復告勅使儀)가 마련되었다. 이를 본다면 양국 간에는 일정한 외교의례가 정비되었다 여겨진다.
      한편 거란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성과는 다수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거란 인식, 관계, 전쟁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문화적, 사상적,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거란사신에 대한 고려 측의 의례는 아직까지 연구가 미흡하다. 국제 관계, 대외 관계의 상징성을 담고 있는 의례 즉 ‘고려 전기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이해는 고려의 자주의식과 대거란관계의 특수성, 국제 질서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전제할 때 앞으로 집중적 조명을 통해 그 내용과 의미를 분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본다.
      본 연구는 이 같은 면을 고려하여 고려에서 북조(北朝) 즉 거란 사신을 어떻게 맞이하고 접빈과 전별의 연향을 행하였는가를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고려하면서 본 연구를 통해 다루려는 주요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은 역시 왕조의 교빙관계와 그 원리, 의례내용과 상징성 등을 찾아내는 작업일 듯하다. 이를 위해 고례(古禮)로서 『서경(書經)』이나 『춘추』․『예기』․『관자』․『맹자』 등에서의 국가 간 교빙의 원리를 다루고, 다음으로는 이러한 원리가 왕조의례로 크게 정비된 『대당개원례』에서의 빈례 구성의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나아가서는 고려전기의 빈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할 수 있는 송의 『태상인혁례』 및 『예각신편』, 『송사』예지, 『요사』 등에서의 관련 의례 내용을 추출 검토함으로써 교빙의례의 원리와 적용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송 측 사신의 기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 역시도 비교분석에 큰 도움이 되므로 이에 대한 이해도 함께 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거란국 사신의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므로 기본적으로 고려 건국 이래 대거란 인식의 성립과 변화에 대하여 사료 및 연구 성과를 검토하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는 고려왕조의 대거란 인식의 기본자세를 이해하는데 바탕이 되므로 연구사 정리와 함께 새롭게 이해할 있는 면이 없는가 역시도 찾아보려 한다.
      다음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 고려에서의 거란국 사신의이다. 고려 측 사료로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은 것이 영북조조사의(迎北朝詔使儀)나 영북조기복고칙사의(迎北朝起復告勅使儀)이다. 의례 내용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사를 맞이하는 장소, 상읍의 예, 배․무․배의 예, 국신(國信)․물색(物色)의 과정(過庭), 다주식(茶酒食) 하사 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이것이 송-거란 사이의 의례와의 차이 및 유사점 또는 조선시대 명 사신 관련 의례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도 부가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동시에 북조 사신의의 분석을 위해 고려 측 소속 관원과 그들의 역할을 주목하고 동시에 전체적인 의례의 구성을 단계별로 구분하고자 한다. 즉 송-거란 간 이루어진 견의(見儀)-연의(宴儀)-사의(辭儀)의 내용은 거란국 사신에 의해서도 수용되어져 이들은 고려에 대해 같은 유형의 예를 행할 것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고려에서의 이 같은 빈례 과정은 국경으로부터 사신을 맞이하고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를 규정하고 있는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 접대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있다. 거란국 사신의 입경 단계서부터 전연(餞宴) 후 돌아가기까지의 내용에 대해서도 보완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서는 『고려사』 및 문집자료, 『요사』 등을 통해 검토하려 한다.
      결국 거란 사신에 대한 고려의 의례 내용과 그 의미 분석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즉,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 대한 이해를 총괄할 경우 그 결과는 다시 고려-금의 관계, 고려-원의 관계, 고려-명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려-거란 관계가 일방적 강요에 의한 사대관계가 아닌 상호적 사대관계의 면을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례절차의 구체적 내용을 분석하였을 때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와 연향은 거란과의 충돌을 거치면서 강화된 중세 고려왕조의 자주의식과 천하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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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2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고려-거란-송의 관계로 구축되었다. 특히 고려는 거란과 충돌 및 화호를 통하면서 사대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면은 『고려사』의 연대기 기사에...

      10~12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고려-거란-송의 관계로 구축되었다. 특히 고려는 거란과 충돌 및 화호를 통하면서 사대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면은 『고려사』의 연대기 기사에서 사신 파견 및 왕래와 관련한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서는 『고려사』 예지 빈례 가운데 영북조조사의(迎北朝詔使儀)나 영북조기복고칙사의(迎北朝起復告勅使儀)가 마련되었다. 이를 본다면 양국 간에는 일정한 외교의례가 정비되었다 여겨진다.
      한편 거란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성과는 다수 축적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거란 인식, 관계, 전쟁 등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 문화적, 사상적,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거란사신에 대한 고려 측의 의례는 아직까지 연구가 미흡하다. 국제 관계, 대외 관계의 상징성을 담고 있는 의례 즉 ‘고려 전기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이해는 고려의 자주의식과 대거란관계의 특수성, 국제 질서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을 전제할 때 앞으로 집중적 조명을 통해 그 내용과 의미를 분명히 드러낼 필요가 있다 본다.
      본 연구는 이 같은 면을 고려하여 고려에서 북조(北朝) 즉 거란 사신을 어떻게 맞이하고 접빈과 전별의 연향을 행하였는가를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이를 고려하면서 본 연구를 통해 다루려는 주요 내용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다룰 필요가 있는 것은 역시 왕조의 교빙관계와 그 원리, 의례내용과 상징성 등을 찾아내는 작업일 듯하다. 이를 위해 고례(古禮)로서 『서경(書經)』이나 『춘추』․『예기』․『관자』․『맹자』 등에서의 국가 간 교빙의 원리를 다루고, 다음으로는 이러한 원리가 왕조의례로 크게 정비된 『대당개원례』에서의 빈례 구성의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나아가서는 고려전기의 빈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할 수 있는 송의 『태상인혁례』 및 『예각신편』, 『송사』예지, 『요사』 등에서의 관련 의례 내용을 추출 검토함으로써 교빙의례의 원리와 적용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송 측 사신의 기록인 『선화봉사고려도경』 역시도 비교분석에 큰 도움이 되므로 이에 대한 이해도 함께 하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거란국 사신의의 내용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이므로 기본적으로 고려 건국 이래 대거란 인식의 성립과 변화에 대하여 사료 및 연구 성과를 검토하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는 고려왕조의 대거란 인식의 기본자세를 이해하는데 바탕이 되므로 연구사 정리와 함께 새롭게 이해할 있는 면이 없는가 역시도 찾아보려 한다.
      다음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실제 고려에서의 거란국 사신의이다. 고려 측 사료로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은 것이 영북조조사의(迎北朝詔使儀)나 영북조기복고칙사의(迎北朝起復告勅使儀)이다. 의례 내용 속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사를 맞이하는 장소, 상읍의 예, 배․무․배의 예, 국신(國信)․물색(物色)의 과정(過庭), 다주식(茶酒食) 하사 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이것이 송-거란 사이의 의례와의 차이 및 유사점 또는 조선시대 명 사신 관련 의례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도 부가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동시에 북조 사신의의 분석을 위해 고려 측 소속 관원과 그들의 역할을 주목하고 동시에 전체적인 의례의 구성을 단계별로 구분하고자 한다. 즉 송-거란 간 이루어진 견의(見儀)-연의(宴儀)-사의(辭儀)의 내용은 거란국 사신에 의해서도 수용되어져 이들은 고려에 대해 같은 유형의 예를 행할 것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고려에서의 이 같은 빈례 과정은 국경으로부터 사신을 맞이하고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를 규정하고 있는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 접대와 비교할 때 큰 차이가 있다. 거란국 사신의 입경 단계서부터 전연(餞宴) 후 돌아가기까지의 내용에 대해서도 보완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서는 『고려사』 및 문집자료, 『요사』 등을 통해 검토하려 한다.
      결국 거란 사신에 대한 고려의 의례 내용과 그 의미 분석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즉,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 대한 이해를 총괄할 경우 그 결과는 다시 고려-금의 관계, 고려-원의 관계, 고려-명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고려-거란 관계가 일방적 강요에 의한 사대관계가 아닌 상호적 사대관계의 면을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례절차의 구체적 내용을 분석하였을 때 거란 사신을 맞이하는 의례와 연향은 거란과의 충돌을 거치면서 강화된 중세 고려왕조의 자주의식과 천하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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