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김창협과 이의현, 신정하, 이하곤, 이덕수를 농암 계열 문장가로 규정하고,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기에 걸친 농암 계열 문장가들의 문장론을 “韓歐正脈”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
본 연구는 김창협과 이의현, 신정하, 이하곤, 이덕수를 농암 계열 문장가로 규정하고,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기에 걸친 농암 계열 문장가들의 문장론을 “韓歐正脈”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고찰하였다.
우리나라에서 古文이 본격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이다. 윤근수, 최립, 신흠, 유몽인, 이정구, 허균, 조익, 이식, 장유 등은 이 시기에 활동했던 주요 작가들이다. 이들 중 윤근수, 조익, 유몽인은 진한고문가의 성향을 띠고, 신흠, 이정구, 장유, 이식은 당송고문가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들이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이분되는 것은 아니다.
농암 이전 고문가들은 文道合一을 위해 육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제가서를 광범위한 독서의 대상으로 삼아 문학 창작의 전범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전범으로 제시된 육경과 제가서가 道의 문제에서 서로 상충되는 면이 존재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육경과 제가서에 대한 先後와 比重에 있어 명확한 구획이 요구되었다. 뿐만 아니라 文道合一의 관점에서 道를 떠나 文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는 수위의 정도 또한 문제로 남는다. 또 농암 이전 고문가들은 명대 전후칠자 문장의 난해성을 지적하면서도 그들 문풍에 경도되었다. 이들은 당시의 연미한 唐宋文에 대한 반발로 헌걸찬 진한고문에 매료당했는데, 문제는 명대 전후칠자의 진한으로의 복고는 擬古라는 방법적 병폐를 안고 있었다. 진한고문은 난해성, 의고라는 문제가 있고 기존의 당송문은 부화한 관각체로 자리매김 되어 있어 또다른 출구가 필요했다. 이에 제기된 것이 한문사대가들에 의한 당송고문인데, 아직 시작단계로 구체적이지 못하였다. 文氣가 승한 진한고문에 비해 재미가 없어 보이는 당송고문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명대 전후칠자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文氣를 대신하여 篇章法을 들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했다.
이러한 앞 시기 고문가들의 고민을 그대로 떠 안으면서 후기 당송고문론을 확립한 사람들이 농암 계열 문장가들이다.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전기 고문론 중에 당송고문을 표방하는 한문사대가의 문론을 이으면서,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韓歐正脈論을 주장하였다.
韓歐의 古文이란 “道를 함의한 정제된 문”이라 할 수 있다. 고문이라는 말 자체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문에 대한 관심표명이다. 이에 대해 초기 고문가들이 형식만 꾸미지 말고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고 내세운 것이 경전의 체제이다. 한유는 문장의 質로 유가의 道를 천명하고, 경전의 체를 받들어 자신의 문장을 지으려 노력했던 문장가였으며, 이러한 한유의 문론을 계승한 사람이 구양수이다.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이 韓歐의 문체를 표준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한구정맥론을 통하여 文道合一의 문론을 전개하였다. 그 첫 번째는 六經을 근본으로 하라는 주장이다. 문도합일을 지향했던 문장가들은 文以貫道, 文以載道 등의 개념을 통해 언제나 문보다는 道를 우위에 두었다. 그런데 문장학 자체의 독자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道를 경시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이에 먼저 육경에 근본하고 史體는 文氣를 키우는 데 참고하면 된다고 하여, 六經과 史體에 있어 先後와 輕重의 구분을 지어주었다. 두 번째는 擬古 비판을 통한 文章之文의 추구이다.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擬古가 종국에 模擬와 剽竊이 되고 마는 것은 風級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극복 가능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한구정맥론의 이론을 바탕으로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古文 作法論을 전개하였다. 작문의 기본 요건으로 精讀을 통해 識을 기르고, 識見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自得之妙) 자신의 말로 글을 써야 한다(詞必己出)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詞必己出의 방법으로 意, 氣, 法의 조화를 제시했고, 그 지향처로 達意論을 전개했다. 意, 氣, 法이 조화를 이뤘다는 것은 뜻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가 제대로 갖추어졌다는 것(意正辭稱)이고, 이 意正辭稱의 목적은 내용전달을 정확히 하기(達意) 위함이다.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단순히 秦漢을 법 받을 것인가, 唐宋을 배울 것인가의 개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법 받으며, 무엇을 배울 것인가의 구체적인 실제를 고민했다. 농암 계열 문장가들은 정확한 文體 인식을 통해 文體論을 전개했으며, 切深, 雅麗, 簡整한 문체 완성을 위해 篇章法과 字句, 語助辭의 운용을 말하였다.
이러한 농암 계열 문장가들 문론의 의의는 ‘唐宋古文의 提唱과 散文論 分化의 시발점이 됨’과 ‘畿湖文章學의 확립’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