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서구사회에서 문학은 근대의 시민적 공론장이 형성되는 모태가 된다. 그것은 바로 문학적 감상과 비평이 현실의 국가 권력 및 경제적 법칙을 벗어난 영역으로서, 시민계급의 입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G3755590
-
2005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0
상세조회0
다운로드18-19세기 서구사회에서 문학은 근대의 시민적 공론장이 형성되는 모태가 된다. 그것은 바로 문학적 감상과 비평이 현실의 국가 권력 및 경제적 법칙을 벗어난 영역으로서, 시민계급의 입장...
18-19세기 서구사회에서 문학은 근대의 시민적 공론장이 형성되는 모태가 된다. 그것은 바로 문학적 감상과 비평이 현실의 국가 권력 및 경제적 법칙을 벗어난 영역으로서, 시민계급의 입장에서 삶과 가치, 사회와 현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의 문학적 공론장에 내재되었던 이러한 이중적 기능은 본격적 대중저널리즘이 시작되는 19세기 중반 이래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시민적 공론장의 위기는 일차적으로 저널리즘과 문학간의 경쟁과 정당성 투쟁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저널리즘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문학적 권위를 빌어오고자 하고, 다른 한편 유미주의로 분화된 모더니즘문학은 저널리즘의 언어오염을 비판하는 양상으로 표출된다.
본 연구의 대상인 독일의 에곤 에르빈 키쉬 (Egon Erwin Kisch 1885-1948) 는 이러한 대중저널리즘이 초래한 시민사회의 공론장의 위기의 정점이자 마지막에 위치한 작가이며, 바로 저널리즘과 문학의 통합을 시도함으로써 양자의 분리의 필요를 확실하게 가시화 시켰던 인물이다. 즉, 키쉬는 1920년대 들어 저널리즘이 보다 사회적 인정을 획득하게 되자, 구체적 대상에 밀접한 글쓰기인 저널리즘의 글쓰기가 ‘현실’과 ‘진실’에 보다 다가간 것으로 규정하고, 국가권력에 대항해 시민사회의 진실을 대변했던 18세기-19세기 초의 문학적 공론장의 적법한 계승자로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저널리즘 이해는 저널리즘이 허용하는 주관적 내러티브의 자유를 저널리즘적인 성찰과 사유로 이용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학적 구성과 상상력의 장치로 이용함으로써 과거 문학이 담당했던 진실의 보루로서의 기능을 되살리고자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보고된 대상이 르포르타주의 리얼리즘을 넘어서, 문학적 알레고리가 되는 경향이나, 리얼리즘을 문학적 연출과 구성의 효과로서 확보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고, 결국 현대대중사회에서 돌이킬 수 없게 진행된 공론장의 하위체계의 분화, 문학과 저널리즘의 분화에 위배되는 발상으로 역사적으로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키쉬의 르포르타주 문학은 1920년대의 대부분의 전위적 예술 실험들처럼 1933년 민족사회주의자들의 집권과 더불어 일차적으로 단절의 위기를 맞는다. 이후 지식인들의 반파시즘 투쟁에 키쉬는 자신의 펜으로 나름대로 참여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1920년대 확신에 찼던 리포터 키쉬로서가 아니었다. 키쉬의 활동의 단계별 변화에 대하여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Siegel, Christian Ernst: Egon Erwin Kisch. Reportage und politischer Journalismus, Bremen 1973, 89이하. 이차대전이 끝나고 키쉬의 르포르타주 문학은 매우 이질적인 방식으로 수용되고 평가되었다. 1950년대 독일연방공화국의 보수주의는 문학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모더니즘, 개인의 내면으로의 회귀로 나타났고, 키쉬는 망각된 존재로 문학사에서 사라졌다가 소수의 바이마르공화국을 연구하는 독문학자들에 의해 다시 발견된다. 그러나 저널리즘학은 키쉬에게 르포르타주 장르의 창시자로서 뚜렷한 자리를 인정하였고, 1994년부터 슈테른지는 키쉬 르포르타주 상을 제정, 포상하고 있다. 그에 반해 구동독의 문학사는 1970년대 이래 키쉬를 독일 사회주의 문학사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 중의 하나로 규정하고, 일종의 국민문학자로서의 위상을 부여하였다. 1945년 이후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ie literarischen Reportagen Egon Erwin Kischs markieren eine historische Zaesur, in der der Streit zwischen dem Journalismus und der Literatur seit dem letzten Drittel des 19. Jahrhundert bis zum Beginn des 20. Jahrhunderts noch einmal und zur letzt...
Die literarischen Reportagen Egon Erwin Kischs markieren eine historische Zaesur, in der der Streit zwischen dem Journalismus und der Literatur seit dem letzten Drittel des 19. Jahrhundert bis zum Beginn des 20. Jahrhunderts noch einmal und zur letzten Entscheidung ausgetragen wurde. Dieser Streit war jedoch in Wirklichkeit der Prozess einer neuen Verhandlung der Stellung und Bedeutung des Journalismus, dessen traditionelle Funktion als der kritische Vertreter der Oeffentlichkeit durch den Kommerzialismus der Massenpresse zu Beginn des 20. Jahrhunderts in Gefahr geraten worden war. Kisch versuchte, mit seiner emphatischen Reportagetheorie und subjektiven Reportagen diese Krise zugunsten der ersteren zu wenden, und zwar durch die Rueckfuehrung auf den Wahrheitsanspruch, den die buergerliche Literatur seit ihrer Geburt fuer sich erhoben hatte. Dieser Versuch hat sich - so kann man aus heutiger Sicht sagen - allerdings als nicht mehr haltbar erwiesen. Die aestehisch autonome Literatur und der berichterstattende Journalismus gehoeren jeweils anderen Subsystemen der modernen Oeffentlichkeit an, die nicht mehr zusammenzufuehren sind. Seine literarischen Reportagen gelten jedoch als ein historisches Denkmal fuer das hohe Selbstverstaendnis und den Ethos der buergerlichen Journalismus und hat in diesen ein neues Genre des sujektiven refleltiverenden Schreibens eingefuehrt und etabli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