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자 가문은 9대를 거쳐 진사 벼슬을 지냈고. 10대(혹은 12대) 300여 년간 부와 명성을 유지하면서 영남지방 최고의 가문이 되었다. 최부자 가문이 명문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요인...
경주 최부자 가문은 9대를 거쳐 진사 벼슬을 지냈고. 10대(혹은 12대) 300여 년간 부와 명성을 유지하면서 영남지방 최고의 가문이 되었다. 최부자 가문이 명문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일차적으로 가문 구성원들의 생활철학과 처세술에 기인하지만, 종가의 풍수지리적 입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이해되고 있다. 본고는 종래의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주 최부자
가문의 풍수지리적 입지를 다양하게 분석하여 명예와 부의 형성, 그리고 유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를 연구했다.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이 형성하기 시작하여 12대 최준까지 지속되었다.
300년간 만석꾼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개인적 삶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본고는 최부자 가문 내 중요인물의 음택지와 주거지를 동일하게 중시했다. 음택지는 발복하고, 주거지는 살아있는 동안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부자 가문의 일차적 주거지였던 이조리 마을은 명당의 지기가 흩어지지 않는 장풍국을 이루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가운데가 볼록하고 주위가 낮은 전형적인 돌형 형국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세 갈래의 물줄기가 마을 앞에서 합수하여 북쪽으로 逆流를 하며 흐르니 마을은 부를 이루며 특히 풍수에서는 삼합수 안을 명당으로 본다.
부를 유지하기 위해 교동의 고택은 낮은 배산의 용세를 비보하기 위해 집터를 조성하면서 파낸 흙으로 뒤쪽을 돋우고 그곳에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식재하였다. 그 결과 청룡과 백호가 상대적으로 위용을 갖추게 되었고, 백호 끝자락은 최부자댁을 완전히 감사면서 집 앞 남천의 가운데 까지 뻗어 나와 흐르는 물을 잘 거수해주고 있다. 용맥 우측의 쌍귀사는 고택을 향해 강한 힘을 밀어주면서 횡룡으로 입수하였다. 그 결과 고택은 전형적인 와형의 혈자리에정확하게 입지했고, 집 앞의 안산인 도당산은 창고사로 재물이 새나가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음택지는 돌혈과 와혈로 대별되지만, 공통적으로 백호자락이 잘 발달된 특징이 있다. 음택지 모두가 백호자락이 겹겹이 싸여 혈장에 강한 응기작용을 하면서 길격을 이루었다. 특히 묘소 아래쪽에 조성된 선저수가 재물을 쌓아보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 외에도 고택과 묘소의 향법이 자왕향, 태향태류, 자생향으로 이기풍수 이론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부와 연관된 백호와
물의 조건들이 최부자 가문의 부와 명예를 유지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