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프로젝트의 1차년도 연구과제는〈일본과 조선의 근대 수용과 근대예술교육의 특성〉을 분석·고찰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목표로 하여 연구내용을 구성해 나갈 것이다.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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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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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프로젝트의 1차년도 연구과제는〈일본과 조선의 근대 수용과 근대예술교육의 특성〉을 분석·고찰하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목표로 하여 연구내용을 구성해 나갈 것이다.
첫째, 일본 양학의 수용은 그 역사가 오래되는데 이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어떠한 계기 속에서 발전을 이루었으며 그 배경적 요인은 무엇인가?를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는 조선과 비교할 때 서로를 잘 이해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둘째, 일본 양학 발달 과정에 있어 다양한 갈등을 거치면서도 양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계기는 무엇이고 어떤 논리를 관철하여 발달시켜 갔는가? 그리고 그 발달이 이루는 특화된 구조는 무엇인가? 를 집중 분석할 것이다.
셋째, 일본은 양학진흥 정책 속에서 교육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근대교육제도를 성립시켰는가?의 문제이다. 현재 동경대 전신이 양학 번역소에서부터 시작한 전통을 갖는 것은 많은 시사점을 주는 것이다. 근대교육제도 실시는 명치유신 이후 정부의 정책과 의도를 관철하는 최전선으로서 그 제도 성립의 과정에서 반영된 주요 특성을 간파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넷째, 동북아 삼국 중 가장 소극적이었던 조선이 서학을 수용함에 있어 어떠한 양상을 드러내는가?를 19C말 조선의 언론기사를 분석하여 서구사상에 대한 조선의 입장과 나아가 교육론의 주체적 변용을 포착하고자 한다. 특히 근대교육의 실시로서 동문학이나 육영공원, 일어학교 등 외국어 교육기관의 실태를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일본의 번역교육과 비교하고자 한다.
다섯째, 일본의 양학 수용에 있어 예술 부문은 역사, 지리, 과학과 더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일본의 근대 예술교육정책의 전개양상과 성격은 무엇이고 특히 1920년대 야마모토 가나에(山本鼎)의 반전은 어떠한 의미와 양태를 드러내는지 사상적 맥락에 입각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일본의 예술교육정책과 관련하여 조선총독부의 예술교육정책은 어떠한 성격을 띠는지? 신문기사나 조선 예술가의 기억 속에 자리한 조선의 예술교육운동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고, 1920년대 조선의 주체적 예술교육운동으로서 방정환의 그것은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는지? 를 고찰하여 총론적 정리로서 일본과 조선의 근대 수용과 근대예술교육의 특성을 비교할 것이다.
2차 년도에서는 일본이 어떻게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양학운동을 벌여나갔고 자본제국주의가 사회모순을 야기시킴에 따라 어떠한 사상적 저항의 양상을 띠었는지? 를 살펴보고자 한다. 메이지유신기 나카무라 게이우는 일본의 부국강병과 신속한 산업자본주의 발달을 위해 기독교 수용을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점차 일본사회가 자본제국주의화함에 따라 반대로 이토우 쇼신이나 가와카미 하지메와 같은 지식인들은 이에 대한 저항운동을 벌였다. 특히 이들은 1920년대 『개벽』지 등을 통해 조선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현재 국내에서 이들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 이에 본 연구는 일본에서 수행된 기존 연구를 활용하면서도 각 인물들의 원전을 분석하여 조선 언론에 알려진 내용과도 비교하고자 한다.
또한 일본의 사회변화와 함께 농촌부락민들에 대한 지방정책과 교육은 무엇이었으며,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진흥교육이 일본의 지방정책 혹은 부락민 정책과 어떠한 유사점과 연계를 갖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의 자본주의 발달을 위해 양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입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가속화됨에 따른 사회문제와 이에 대한 지식인의 저항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둘째, 자본주의 근대화에 따른 지방 개량 정책은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셋째, 천민 부락민과 연소노동자에 대한 교육정책은 무엇이었는가?
넷째, 일본 정부의 지방통제로서 청년단·청년훈련소는 어떤 성격을 지니는가?
다섯째, 스이헤이샤(水平社) 운동과 관련한 일본의 주체적 교육운동은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 그리고 조선의 형평사(衡平社) 운동과 비교할 때 어떠한 차이점과 유사점이 비교될 수 있는가?
여섯째, 조선의 농촌진흥교육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는가? 1930년대 조선의 농촌사회의 상황과 졸업생지도, 진흥청년단 및 농촌청년훈련소의 활동은 어떠한 성격을 갖는가? 일제의 농촌교화로서 공민교육은 무엇이었는가? 이를 당대 신문에서는 어떻게 인식했는가? 조선 거주 일본인들은 또 어떻게 농촌진흥교육을 인식했는가?
일곱째, 일본 자본주의 근대화에 따른 민중지배와 조선 식민지 지배는 어떠한 유사성을 갖는가? 이러한 조선의 근대는 현재에 어떻게 뿌리박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