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를 전후하여 가삼 재배 보급의 확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 말정조는 새로 조성한 화성(華城)의 경제적 진흥 방안의 하나로 가삼 재배와 상품화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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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전후하여 가삼 재배 보급의 확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 말정조는 새로 조성한 화성(華城)의 경제적 진흥 방안의 하나로 가삼 재배와 상품화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1...
19세기를 전후하여 가삼 재배 보급의 확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 말정조는 새로 조성한 화성(華城)의 경제적 진흥 방안의 하나로 가삼 재배와 상품화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19세기 초반 당시 개성 주민들 대부분이 인삼 재배를 생업(生業)으로 삼고 있었다. 매년 북경에 들어가는 홍삼(紅蔘)이 오로지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가삼 재배가 지역적으로 확산되면서가짜로 산삼을 만드는 조삼(造蔘) 사건까지 등장하였고, 가삼을 재배하는 삼전(蔘田)의 규모가 확대되는 양상도 보이고 있었다.
중인 출신 서경창이 제안한 가삼 재배 변통책은 강계 인삼 생산을 획기적으로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는 삼업(蔘業)을 강조하면서 삼업의 성쇠에 강계주민의 생계가 달려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제안은 영남의 가삼(家蔘)과 강계의 종삼(種 蔘)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영남에서 대두한 가삼 재배 기술이 조선 전역으로 보급되어 있고, 그에 따라 가삼 재배를 조선 전역으로 보급시킬 수 있다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19세기 가삼 재배법의 상세한 내용을 보여주는 이학규(李學逵)의 「삼서(蔘書)」 를 분석하였다. 이학규의 「삼서」를 구성하고 있는 12개 조목을 ‘가삼 재배 기술의원리’에 해당하는 2개 조목, 19세기 ‘가삼 재배 기술의 근간’에 해당하는 5조목, ‘가삼 재배 기술의 보충’에 해당하는 5개 조목으로 재정리하였다. 그의 논의에서 가장중요한 문제는 토양의 문제 즉 득‘ 지(得地)’의 문제였고, 다음으로 가삼의 종자 즉 삼자(蔘子)를 고르는 방법으로 채취하는 시후, 방법 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또한 종자(種子), 종근(種根) 등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면서 강조하고 있었다.
이학규의 논의에서 인삼 재배에 적합한 토양 선택의 문제에서 과감할 정도의포용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가삼 재배의 지역적 확산에 기술적인 문제가 별달리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19세기에 가삼 재배가 조선전역에서 모두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기내(畿內), 광주(廣州), 전라도 지역, 영남 지역에서 각각 개별적인 성격을 지닌 가삼 재배 기술을 적용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삼 재배의 수익성이 높다는 점에 착안하여빈인(貧人), 단호(單戶)들도 가삼 재배에 참여하고 있었다.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round the 19th century, the cultivation of Gasam (domesticated ginseng) spread rapidly across Joseon Kingdom. King Jeongjo promoted its commercialization to boost Hwaseong’s economy. By the early 1800s, Kaesong had become the primary production hub...
Around the 19th century, the cultivation of Gasam (domesticated ginseng) spread rapidly across Joseon Kingdom. King Jeongjo promoted its commercialization to boost Hwaseong’s economy. By the early 1800s, Kaesong had become the primary production hub for red ginseng exported to Beijing. The industry grew so large that "counterfeit wild ginseng" (josam, 造蔘) appeared, and ginseng fields expanded nationwide.
As the industry grew, scholars proposed technical reforms. Seo Gyeongchang argued that the livelihood of northern regions like Kanggye should shift from gathering wild ginseng to systematic planting (Jongsam, 種蔘), reflecting a contemporary reality where cultivation techniques had already standardized across the country.
Lee Hak-gyu’s Samseo (Book of Ginseng, 蔘書) provides a detailed technical breakdown of these 19th-century methods. There were two Core Principles.
The first is Focused on "obtaining the right land" (Deukji, 得地) and meticulous seed selection. And the Second is Cultivation Techniques: Detailed methods for planting seeds/roots, springtime planting, and winter storage.
The technical adaptability of ginseng allowed it to thrive in diverse environments.
Regional innovations included: Gyeonggi(京畿)-Using mats to block heat and rain, Gwangju(廣州)-Building stone walls against theft, Jeolla(全羅)- Implementing the Pyeonghoeng (horizontal) planting method, Yeongnam(嶺 南)-Using bamboo irrigation for droughts. Due to its high profitability, Gasam cultivation eventually transcended social class, becoming a vital economic activity for even the poorest househo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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