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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 정치형태와 국왕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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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210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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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흔히 신라 하대의 정치형태를 ‘貴族聯立’이라 말하나 그리 딱히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國王은 모든 관직과 진골 신분을 초월한 존재였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즉위하여 王統이 바뀐 宣德王代와 文聖王代는 왕과 유력한 가계의 세력자에 의한 연합정권의 색채가 농후하였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즉위라 해도 왕통이 바뀌지 않은 憲德王 · 興德王代는 정치적으로 太子(副君)나 上大等 · 兵部令에 임명된 아우들보다 초월한 왕이면서, 친족상으로 兄弟가 함께 중요 관직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공유하는 형태의 王家에 의한 寡頭政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元聖王과 景文王은 강한 專制的 王權을 행사하여 皇帝의 위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보아도 전체 780~889년 중 귀족연립적 성격을 보였던 것은 宣德王(780~785)과 僖康王 · 閔哀王 · 神武王 · 文聖王 재위기(836~857)로 28년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시기는 그렇지 않았다.
      한편 元聖王과 景文王家期에 국왕이 황제적 위상을 가졌다고는 하나, 중앙 진골귀족들이 정권에서 이탈 현상으로 정부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어갔다. 결국 眞聖女王代에 이르러 농민반란이 발생하여 전국이 혼란에 빠졌으며, 또 중앙 통치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자 지방세력이 대두하였다. 그 결과 後三國의 혼란기를 맞이하고 마침내 신라는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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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신라 하대의 정치형태를 ‘貴族聯立’이라 말하나 그리 딱히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國王은 모든 관직과 진골 신분을 초월한 존재였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즉위하여 王統이 바뀐 宣...

      흔히 신라 하대의 정치형태를 ‘貴族聯立’이라 말하나 그리 딱히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國王은 모든 관직과 진골 신분을 초월한 존재였다. 다만 비정상적으로 즉위하여 王統이 바뀐 宣德王代와 文聖王代는 왕과 유력한 가계의 세력자에 의한 연합정권의 색채가 농후하였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즉위라 해도 왕통이 바뀌지 않은 憲德王 · 興德王代는 정치적으로 太子(副君)나 上大等 · 兵部令에 임명된 아우들보다 초월한 왕이면서, 친족상으로 兄弟가 함께 중요 관직을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공유하는 형태의 王家에 의한 寡頭政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元聖王과 景文王은 강한 專制的 王權을 행사하여 皇帝의 위상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보아도 전체 780~889년 중 귀족연립적 성격을 보였던 것은 宣德王(780~785)과 僖康王 · 閔哀王 · 神武王 · 文聖王 재위기(836~857)로 28년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시기는 그렇지 않았다.
      한편 元聖王과 景文王家期에 국왕이 황제적 위상을 가졌다고는 하나, 중앙 진골귀족들이 정권에서 이탈 현상으로 정부의 기능은 점점 약화되어갔다. 결국 眞聖女王代에 이르러 농민반란이 발생하여 전국이 혼란에 빠졌으며, 또 중앙 통치력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자 지방세력이 대두하였다. 그 결과 後三國의 혼란기를 맞이하고 마침내 신라는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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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form of politics in the Late Period of Silla is commonly referred to as ‘aristocratic coalition’. However this term is not accurate. As kings of Silla were considered beings of position transcending all public offices and Jingol(眞骨). Only the rule of King Seondeok and King Munseong who ascended the throne in abnormal way changing the royal line, holds apparent indications of coalition government formed by the strong lineage.
      However, the monarchs who ascended the throne through succession as King Heondeok and King Heungdeok, were stronger rulers than politically appointed crown prince or Sangdaedeung(上大等), Byeongburyeong(兵部令). Ruling together as brothers, they exclusively shared the power of main public offices forming an oligarchic system run by the royal family.
      Among others, King Wonseong and King Gyeongmun were rulers wielding an absolute authority, pursuing the status of the emperors. In terms of time, the rule over the whole period between 780~889 has characteristics of aristocratic coalition including King Seondeok and King Huigang, King Minae, King Sinmu, King Munseong. Apart from these 28 years of their reign however, other periods do not show traces of aristocratic coalition.
      Under King Wonseong and King Gyeongmun kings had a status of the emperor. But after the breakaway of Jingol aristocrats, the power of their government started to diminish. Queen Jinseong had a strong local influence resulting in the progression towards new period of the Late Three Kingdoms and ultimate collapse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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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orm of politics in the Late Period of Silla is commonly referred to as ‘aristocratic coalition’. However this term is not accurate. As kings of Silla were considered beings of position transcending all public offices and Jingol(眞骨). Only ...

      The form of politics in the Late Period of Silla is commonly referred to as ‘aristocratic coalition’. However this term is not accurate. As kings of Silla were considered beings of position transcending all public offices and Jingol(眞骨). Only the rule of King Seondeok and King Munseong who ascended the throne in abnormal way changing the royal line, holds apparent indications of coalition government formed by the strong lineage.
      However, the monarchs who ascended the throne through succession as King Heondeok and King Heungdeok, were stronger rulers than politically appointed crown prince or Sangdaedeung(上大等), Byeongburyeong(兵部令). Ruling together as brothers, they exclusively shared the power of main public offices forming an oligarchic system run by the royal family.
      Among others, King Wonseong and King Gyeongmun were rulers wielding an absolute authority, pursuing the status of the emperors. In terms of time, the rule over the whole period between 780~889 has characteristics of aristocratic coalition including King Seondeok and King Huigang, King Minae, King Sinmu, King Munseong. Apart from these 28 years of their reign however, other periods do not show traces of aristocratic coalition.
      Under King Wonseong and King Gyeongmun kings had a status of the emperor. But after the breakaway of Jingol aristocrats, the power of their government started to diminish. Queen Jinseong had a strong local influence resulting in the progression towards new period of the Late Three Kingdoms and ultimate collapse of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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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국문초록
      • I. 머리말
      • II. 정치형태의 다양성
      • III. 국왕의 황제적 위상
      • IV. 맺음말
      • 국문초록
      • I. 머리말
      • II. 정치형태의 다양성
      • III. 국왕의 황제적 위상
      • IV.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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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병헌,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8

      2 정운용, "한국고대사입문 3" 신서원 2006

      3 이재환, "한국고대사 연구의 시각과 방법" 사계절 2014

      4 김영하,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동향" 서경문화사 2007

      5 김창겸, "한국 고대사 연구의 현단계" 주류성 2009

      6 신형식, "통일신라사연구" 한국학술정보 2004

      7 김수태, "신라중대정치사연구" 일조각 1996

      8 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 일지사 1993

      9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0 김창겸, "신라시대 태자제도의 성격" 13 : 1993

      1 최병헌,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78

      2 정운용, "한국고대사입문 3" 신서원 2006

      3 이재환, "한국고대사 연구의 시각과 방법" 사계절 2014

      4 김영하,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동향" 서경문화사 2007

      5 김창겸, "한국 고대사 연구의 현단계" 주류성 2009

      6 신형식, "통일신라사연구" 한국학술정보 2004

      7 김수태, "신라중대정치사연구" 일조각 1996

      8 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 일지사 1993

      9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10 김창겸, "신라시대 태자제도의 성격" 13 : 1993

      11 今西龍, "신라사 연구" 서경문화사 2008

      12 김동수, "신라 헌덕·흥덕왕대의 개혁정치" 39 : 1982

      13 이문기, "신라 하대정치와 사회연구" 학연문화사 2015

      14 권영오, "신라 하대 정치사 연구" 혜안 2011

      15 김창겸, "신라 하대 왕위계승 연구" 경인문화사 2003

      16 하일식, "신라 집권관료제 연구" 혜안 2006

      17 이영호,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 지식산업사 2014

      18 전덕재, "신라 정치사회사의 전개에 대한 고전적 이해와 그 한계 —≪신라정치사회사연구≫에 나타난 이기백의 신라 정치체제 변천에 대한 이해체계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회 (144) : 335-361, 2009

      19 김창겸, "신라 원성왕계 왕의 황제·황족적 지위와 골품 초월화" 52 : 1999

      20 이문기, "신라 김씨 왕실의 소호김천씨 출자관념의 표방과 변화" 23·24 : 1990

      21 김지은, "신라 경문왕의 왕권강화정책" 21 : 2002

      22 김창겸, "신라 ‘명주군왕’고" 12·13 : 1997

      23 강희웅, "동양 삼국의 왕권과 관료제" 국학자료원 1999

      24 전기웅, "나말려초의 정치사회와 문인지식층" 혜안 1996

      25 박재우, "고려 君主의 국제적 위상" 고려사학회 (20) : 45-8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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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8-07-07 학회명변경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KCI등재
      200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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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69 1.69 1.8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64 1.57 3.463 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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