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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서도소리의 서울 유입과 도시문화로의 전환 = The incoming of Seodo Sori(Songs of Northern Western Area) and converting to the urb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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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399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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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quire into the process and path of converting the Seodo Sori(Songs of Northern Western Area) to urban culture in Seoul. The main messengers of Seodo Sori could be catergorized as two parts; Kisaeng as the official entertainers group and Naltangpae, who has had great role in the process of introduce their local songs to the whole country. As a result of the changement around the system of Kisaeng, Kisaeng in Northern Western Area started to come up to capital and work systematically. In addition, The scope of activity of Naltangpae who had been rooted in the Northern Western Area covered the whole country.
      The invasion of Seodo Sori in the 19th century shows the aspect of negotiating between the culture of the center and local culture as well as the relation of court culture and ethnic culture. In the early 20th century, Seodo Sori became the mainstream of urban culture in Seoul. Especially, the Kisaeng played an active role in diffusing the popularity.
      As a consequence, in the 1930's when the urban culture was well constructed, the Kisaeng from Northern Western Area and their local songs were welcomed by the public of Seoul. The main reasons of popularity are as follows; The pubic of Seoul loved the 'familiar and strange' feeling of local songs. In addition the skilled entertainers group might call up the cheer of the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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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quire into the process and path of converting the Seodo Sori(Songs of Northern Western Area) to urban culture in Seoul. The main messengers of Seodo Sori could be catergorized as two parts; Kisaeng as the officia...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quire into the process and path of converting the Seodo Sori(Songs of Northern Western Area) to urban culture in Seoul. The main messengers of Seodo Sori could be catergorized as two parts; Kisaeng as the official entertainers group and Naltangpae, who has had great role in the process of introduce their local songs to the whole country. As a result of the changement around the system of Kisaeng, Kisaeng in Northern Western Area started to come up to capital and work systematically. In addition, The scope of activity of Naltangpae who had been rooted in the Northern Western Area covered the whole country.
      The invasion of Seodo Sori in the 19th century shows the aspect of negotiating between the culture of the center and local culture as well as the relation of court culture and ethnic culture. In the early 20th century, Seodo Sori became the mainstream of urban culture in Seoul. Especially, the Kisaeng played an active role in diffusing the popularity.
      As a consequence, in the 1930's when the urban culture was well constructed, the Kisaeng from Northern Western Area and their local songs were welcomed by the public of Seoul. The main reasons of popularity are as follows; The pubic of Seoul loved the 'familiar and strange' feeling of local songs. In addition the skilled entertainers group might call up the cheer of the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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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이 연구의 목적은 서도소리가 서울에 유입되면서, 도시문화로 전환되는 양상과 통로를 살피는 것이다. 서도소리를 서울로 전파한 담당층은 크게 관변 예능인인 기녀와 평양 날탕패로 대표되는 선소리패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지역에 국한되었던 노래를 전국적인 노래, 전문가의 노래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중 서도의 기생들은 조선 후기부터 한말까지는 관변 예능인, 풍류방 예능인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기생제도의 변화로 서울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서도의 선소리패는 19세기에 이미 자신의 출신 지역을 떠나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서도소리는 서울 유입 과정에서 중앙문화와의 교섭 과정을 겪으며, 대중성을 넓혀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궁중을 중심으로 성장한 관변문화와 민간문화의 교섭을 통해 정가와 속가가 거리를 좁혀 가고, 때로 융합하던 19세기 시정문화의 흐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도소리는 20세기 벽두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중앙의 무대로 진출하게 되면서 도시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서도소리의 인기를 견인한 것인 날탕패 출신의 남성 창자였다면, 이를 확산한 것은 기생 창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근대적 도시문화가 본격적으로 구축된 1930년대에 오면 서도소리와 이를 부르는 평양기생은 서울 도시문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서도소리의 인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서울의 대중들은 ‘익숙하면서 낯선’ 서도소리에서 소통의 즐거움과 참신한 자극을 동시에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대중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숙련된 예능인 집단과 이들을 발굴하고, 교육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된 것도 서도소리의 정착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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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구의 목적은 서도소리가 서울에 유입되면서, 도시문화로 전환되는 양상과 통로를 살피는 것이다. 서도소리를 서울로 전파한 담당층은 크게 관변 예능인인 기녀와 평양 날탕패로 대표...

      이 연구의 목적은 서도소리가 서울에 유입되면서, 도시문화로 전환되는 양상과 통로를 살피는 것이다. 서도소리를 서울로 전파한 담당층은 크게 관변 예능인인 기녀와 평양 날탕패로 대표되는 선소리패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지역에 국한되었던 노래를 전국적인 노래, 전문가의 노래로 탈바꿈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중 서도의 기생들은 조선 후기부터 한말까지는 관변 예능인, 풍류방 예능인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기생제도의 변화로 서울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서도의 선소리패는 19세기에 이미 자신의 출신 지역을 떠나 전국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서도소리는 서울 유입 과정에서 중앙문화와의 교섭 과정을 겪으며, 대중성을 넓혀갔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궁중을 중심으로 성장한 관변문화와 민간문화의 교섭을 통해 정가와 속가가 거리를 좁혀 가고, 때로 융합하던 19세기 시정문화의 흐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도소리는 20세기 벽두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중앙의 무대로 진출하게 되면서 도시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서도소리의 인기를 견인한 것인 날탕패 출신의 남성 창자였다면, 이를 확산한 것은 기생 창자였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근대적 도시문화가 본격적으로 구축된 1930년대에 오면 서도소리와 이를 부르는 평양기생은 서울 도시문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서도소리의 인기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서울의 대중들은 ‘익숙하면서 낯선’ 서도소리에서 소통의 즐거움과 참신한 자극을 동시에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대중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숙련된 예능인 집단과 이들을 발굴하고, 교육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된 것도 서도소리의 정착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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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성무경, "해제: 『교방가요』의 문화도상 읽기 In: 敎坊歌謠" 보고사 13-63, 2002

      2 송방송, "한국전통음악의 전승양상" 보고사 3-24, 2008

      3 권도희, "한국근대음악사회사" 민속원 12-314, 2005

      4 유민영, "한국근대극장변천사" 태학사 1998

      5 박애경, "한국고전시가의 근대적 변전과정 연구" 소명출판 1-312, 2008

      6 안대회, "평양기생의 인생을 묘사한 小品書 綠波雜記 연구" 우리한문학회 14 (14): 273-308, 2006

      7 전통예술원,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 민속원 2002

      8 이능화, "조선해어화사" 동문선 1992

      9 "조선왕조실록"

      10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 연구" 민속원 8-31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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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박애경, "한국고전시가의 근대적 변전과정 연구" 소명출판 1-312, 2008

      6 안대회, "평양기생의 인생을 묘사한 小品書 綠波雜記 연구" 우리한문학회 14 (14): 273-30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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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이우성, "이조한문단편선" 일조각 1978

      14 장유정, "오빠는 풍각쟁이야: 대중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 민음in 1-43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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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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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1-15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Classical Literature -> Journal of Korean Classical Literature KCI등재
      2017-10-13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Korean Classical Literature Association KCI등재
      2017-10-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Journal of Classical Literature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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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93 0.93 0.9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88 0.93 2.12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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