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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CI등재

    경산 중산동 고려시대 건물지의 성격 -문자기와의 분석을 통해서- = The Character of Goryeo Building Ruins at Jungsan-dong of Gyeongsan as judged by the Excavated Roof Tiles with Inscription(文字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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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Remains of a building, which had existed in Goryeo early period, were found at the ruins located in Jungsan-dong of Gyeongsan. From the building, roof tiles with inscription, gilt bronze sculpture from Unified Shilla period, top-knot pin and celadon porcelain were excavated. Among them, the roof tiles with inscription attracted attention.
    The inscription contained useful information in judging the character of building. Especially, the inscription included the word, ‘Wǎ-cǎo(瓦草)’. Roof tiles containing the word ‘Wǎ-cǎo(瓦草)’ have been excavated from nationwide places. Since the roof tiles with ‘Wǎ-cǎo(瓦草)’ inscription were made during the limited period from Unified Shilla to early Goryeo, it is possible to judge the year of building existence close to absolute year.
    The building remains were poor because of damage in later period; however, it was possible to know the size of the building from the building ruins coverage that the building was not so big. Since the roof tiles do not have Qīng-hǎi-bō-wén(靑海波紋) pattern, which is a typical pattern carried by roof tiles made during Joseon period, it is believed that the building existed within the time period of Goryeo only.
    The roof tile inscription is ‘Dào-yáng-shào-wǎ-cǎo(道揚佋瓦草)’. Here, ‘Dào-yáng(道揚)’ was commonly used for ‘Dào-cháng(道場)’ in woodblock print. The character ‘Shào(佋)’ was used to mean ‘Zhāo-mù(昭 穆)’, while ‘Wǎ-cǎo(瓦草)’ means roof tile. Accordingly, it is possible to judge the character of the building from the inscription on roof tile. The building was a Buddhist temple which also performed the function of praying shrine of an individual.
    The building had been lost by fire and it was abandoned without recovery. The cause of building loss may be the closing of Buddhist temples by the authority in military government(山川裨補都監), which was established by Choi family during military regime period(崔氏武人政權). Another possibility is that it was destroyed when Mongol army invaded Goryeo.
    The bronze sculpture and inscription tiles excavated from the ruins at Jung san-dong, Gyeongsan, are valuable and sufficient in guessing the style of Buddhist ceremony and the trend of Buddhist circle during the Goryeo-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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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mains of a building, which had existed in Goryeo early period, were found at the ruins located in Jungsan-dong of Gyeongsan. From the building, roof tiles with inscription, gilt bronze sculpture from Unified Shilla period, top-knot pin and celadon p...

    Remains of a building, which had existed in Goryeo early period, were found at the ruins located in Jungsan-dong of Gyeongsan. From the building, roof tiles with inscription, gilt bronze sculpture from Unified Shilla period, top-knot pin and celadon porcelain were excavated. Among them, the roof tiles with inscription attracted attention.
    The inscription contained useful information in judging the character of building. Especially, the inscription included the word, ‘Wǎ-cǎo(瓦草)’. Roof tiles containing the word ‘Wǎ-cǎo(瓦草)’ have been excavated from nationwide places. Since the roof tiles with ‘Wǎ-cǎo(瓦草)’ inscription were made during the limited period from Unified Shilla to early Goryeo, it is possible to judge the year of building existence close to absolute year.
    The building remains were poor because of damage in later period; however, it was possible to know the size of the building from the building ruins coverage that the building was not so big. Since the roof tiles do not have Qīng-hǎi-bō-wén(靑海波紋) pattern, which is a typical pattern carried by roof tiles made during Joseon period, it is believed that the building existed within the time period of Goryeo only.
    The roof tile inscription is ‘Dào-yáng-shào-wǎ-cǎo(道揚佋瓦草)’. Here, ‘Dào-yáng(道揚)’ was commonly used for ‘Dào-cháng(道場)’ in woodblock print. The character ‘Shào(佋)’ was used to mean ‘Zhāo-mù(昭 穆)’, while ‘Wǎ-cǎo(瓦草)’ means roof tile. Accordingly, it is possible to judge the character of the building from the inscription on roof tile. The building was a Buddhist temple which also performed the function of praying shrine of an individual.
    The building had been lost by fire and it was abandoned without recovery. The cause of building loss may be the closing of Buddhist temples by the authority in military government(山川裨補都監), which was established by Choi family during military regime period(崔氏武人政權). Another possibility is that it was destroyed when Mongol army invaded Goryeo.
    The bronze sculpture and inscription tiles excavated from the ruins at Jung san-dong, Gyeongsan, are valuable and sufficient in guessing the style of Buddhist ceremony and the trend of Buddhist circle during the Goryeo-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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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경산 중산동 유적에서는 고려전기에 조영된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의 내부에서는 문자기와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금동불, 동곳, 청자 등이 출토되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문자기와인데, 건물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명문에는 ‘瓦草’라는 단어가 동반되어 있다. 사실 ‘瓦草’명이 동반된 기와는 그 출토사례가 전국을 망라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도 통일신라에서 고려전기에 한정되어 제작되기 때문에 절대연대에 버금가는 연대관을 부여할 수 있다. 건물지는 후대의 교란으로 인해 잔존상황이 불량한 상태였다. 다만 잔존 유구를 바탕으로 추정된 범위는 대략 84㎡에 달한다. 건물의 존속 시기는 고려시대 당대에 한정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후행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와문양인 청해파문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자기와의 내용은 ‘道揚佋瓦草’이다. 여기서 ‘道揚’은 목판본에서 ‘道場’과 흔히 호환되고, ‘佋’는 사당의 ‘昭穆’의 의미로 사용되며, ‘瓦草’는 기와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명문의 내용은 '도량의 기와' 정도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건물의 성격을 가늠해 보면, 개인이 발원한 소규모 불당으로 이해된다.
    건물은 화재로 인해 폐사되었고, 더 이상 유지 보수되지 못한 상태로 放棄되었다. 건물의 폐사원인을 고려할 때 무인집권기 최씨정권이 만든 山川裨補都監에 의한 사원정리, 몽고의 병란 양자를 시야에 넣을 수 있다. 경산 중산동 유적에서 출토된 금동불상과 문자기와의 가치는 고려시대 지방 유력자에 의해 경영된 원당의 유행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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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 중산동 유적에서는 고려전기에 조영된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의 내부에서는 문자기와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금동불, 동곳, 청자 등이 출토되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문...

    경산 중산동 유적에서는 고려전기에 조영된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지의 내부에서는 문자기와를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 금동불, 동곳, 청자 등이 출토되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이 문자기와인데, 건물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명문에는 ‘瓦草’라는 단어가 동반되어 있다. 사실 ‘瓦草’명이 동반된 기와는 그 출토사례가 전국을 망라하고 있다. 시기적으로도 통일신라에서 고려전기에 한정되어 제작되기 때문에 절대연대에 버금가는 연대관을 부여할 수 있다. 건물지는 후대의 교란으로 인해 잔존상황이 불량한 상태였다. 다만 잔존 유구를 바탕으로 추정된 범위는 대략 84㎡에 달한다. 건물의 존속 시기는 고려시대 당대에 한정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후행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와문양인 청해파문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문자기와의 내용은 ‘道揚佋瓦草’이다. 여기서 ‘道揚’은 목판본에서 ‘道場’과 흔히 호환되고, ‘佋’는 사당의 ‘昭穆’의 의미로 사용되며, ‘瓦草’는 기와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따라서 명문의 내용은 '도량의 기와' 정도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건물의 성격을 가늠해 보면, 개인이 발원한 소규모 불당으로 이해된다.
    건물은 화재로 인해 폐사되었고, 더 이상 유지 보수되지 못한 상태로 放棄되었다. 건물의 폐사원인을 고려할 때 무인집권기 최씨정권이 만든 山川裨補都監에 의한 사원정리, 몽고의 병란 양자를 시야에 넣을 수 있다. 경산 중산동 유적에서 출토된 금동불상과 문자기와의 가치는 고려시대 지방 유력자에 의해 경영된 원당의 유행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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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인숙, "통일신라~조선전기 평기와 제작기법의 변천"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4

    2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 술정리 사지" 아트인시티 46 : 2011

    3 국립중원문재연구소, "중원의 산성" 예맥 2008

    4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인천 계양산성Ⅱ" 2011

    5 서봉수, "인천 계양산성 출토 기와와 문자자료에 대하여-4차 발굴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韓國木簡學會 (6) : 2010

    6 서울대학교 박물관, "이천시의 문화유적-이천시 매장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1998

    7 백종오, "안성 봉업사지 발굴조사, In ’97경기도박물관 발굴조사 개보" 경기도박물관 1997

    8 이영호, "신라의 신발견 문자자료와 연구동향" 한국고대사학회 57 (57): 169-213, 2010

    9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의 금동불" 예맥 2011

    10 김동하, "신라 소형금동불의 제작기법과 그 전개양상-영주 숙수사지 출토 금동불상군을 중심으로-, In 신라의 금동불" 경주문화재연구소, 예맥 2011

    1 이인숙, "통일신라~조선전기 평기와 제작기법의 변천" 경북대학교 대학원 2004

    2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녕 술정리 사지" 아트인시티 46 : 2011

    3 국립중원문재연구소, "중원의 산성" 예맥 2008

    4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인천 계양산성Ⅱ" 2011

    5 서봉수, "인천 계양산성 출토 기와와 문자자료에 대하여-4차 발굴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韓國木簡學會 (6) : 2010

    6 서울대학교 박물관, "이천시의 문화유적-이천시 매장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1998

    7 백종오, "안성 봉업사지 발굴조사, In ’97경기도박물관 발굴조사 개보" 경기도박물관 1997

    8 이영호, "신라의 신발견 문자자료와 연구동향" 한국고대사학회 57 (57): 169-213, 2010

    9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라의 금동불" 예맥 2011

    10 김동하, "신라 소형금동불의 제작기법과 그 전개양상-영주 숙수사지 출토 금동불상군을 중심으로-, In 신라의 금동불" 경주문화재연구소, 예맥 2011

    11 최맹식, "백제 및 통일신라시대 기와문양과 제작기법에 관한 연구" 13 : 2001

    12 김창호, "남한산성 출토 후삼국-고려초 문자기와의 재검토-, In 한국고대사연구의 현단계(石門 李基東敎授 停年紀念論叢)" 주류성 2009

    13 심광주, "남한산성 출토 銘文瓦에 대한 일고찰" 韓國木簡學會 (창간) : 2008

    14 公州大學校博物館, "구룡사지"

    15 조성윤, "경주 출토 신라 평기와의 편년 시안" 경주대학교 대학원 2000

    16 林英正, "高麗時代의 使役·工匠僧에 대하여, In 伽山李智冠스님華甲紀念論叢 韓國佛敎文化思想史(上)" 1992

    17 韓基汶, "高麗寺院의 構造와 機能" 民族社 1998

    18 "高麗史節要"

    19 "高麗史"

    20 鄭治永, "高麗~朝鮮 前期 기와의 조달양상" 중부고고학회 5 (5): 2007

    21 松井忠春, "韓國慶州地域寺院所用瓦の硏究" 4 : 1994

    22 노명호, "韓國古代中世 地方制度의 諸問題" 집문당 2004

    23 "說文解字注"

    24 상명대학교박물관, "洪城 石城山城-건물지발굴조사보고서" 1998

    25 "東文選"

    26 國立慶州博物館, "新羅瓦塼" 삼화인쇄 2000

    27 윤선태, "新羅 中代末~下代初의 地方社會와 佛敎信仰結社" 신라문화연구소 (26) : 113-135, 2005

    28 國立慶州博物館, "文字로 본 新羅" 학연문화사 2002

    29 國立慶州文化財硏究所, "慶州南山" 2002

    30 유환성, "慶州 출토 羅末麗初 寺刹銘 평기와의 변천과정" 신라사학회 (19) : 129-169, 2010

    31 嶺南文化財硏究院, "慶山 新岱里 遺蹟Ⅲ" 176 : 2010

    32 聖林文化財硏究院, "慶山 新岱·夫迪 朝鮮墓群" 25 : 2008

    33 聖林文化財硏究院, "慶山 中山洞 160-1番地 生活遺蹟" 55 : 2011

    34 國立夫餘文化財硏究所, "彌勒寺址" 1996

    35 崔兌先, "平瓦製作法의 變遷에 대한 硏究" 慶北大學校 大學院 1993

    36 "宣和奉使高麗圖經"

    37 中央文化財硏究院, "安城 長陵里寺址" 126 : 2008

    38 慶北大學校博物館, "大邱龍水洞瓦窯址調査報告書" 1986

    39 嶺南文化財硏究院, "大邱 角山洞 912-6番地 遺蹟" 145 : 2008

    40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南漢行宮址" 2010

    41 公州大學校博物館, "千房遺蹟" 1996

    42 "三國遺事"

    43 박종기, "500년 고려사" 푸른역사 2005

    44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년의 발자취 1990~2010"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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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5-11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KOMUNHWA -> KOMUNHWA (Korea Antiquity) KCI등재후보
    2005-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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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지 인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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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1 0.71 0.7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74 0.69 1.56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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