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중요 사건인 정묘·병자호란 당시 벌어진 주화-척화 논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여 당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고자 하는 시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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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고려대학교, 2016
2016
한국어
340.10911 판사항(6)
320.09519 판사항(23)
서울
ii, 101 p. ; 26 cm
지도교수: 박홍규
참고문헌: p. 9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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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중요 사건인 정묘·병자호란 당시 벌어진 주화-척화 논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여 당시 정치세력에 대한 평가를 재고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최근 광해군에 대한 재조명과 더불어 인조 정권에 대한 평가는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주화-척화 논쟁에 대한 분석은 성리학 비판에만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조대의 정치세력들은 모두 성리학자였고, 이 범주 내에서 논쟁을 벌였다. 이를 두고 성리학과 탈성리학을 논하는 것은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당시의 주화-척화 논쟁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 논쟁을 사상적이고 사변적인 논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판단의 차이점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전쟁관’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주화-척화 논쟁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의 주화파와 척화파는 모두 성리학에 학문적 기반을 둔 ‘사대부’였고, 따라서 서로의 주장이 극명하게 대립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본 연구는 주화-척화 논쟁을 사상적 대립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적 관념’과 ‘자국 관념’으로 구성되는 ‘전쟁관’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맹자와 주자의 전쟁관을 도출해내어 이러한 원형적 전쟁관이 조선 사대부들의 전쟁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경험’이 전쟁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핌으로써 척화론의 논의가 비현실적인 논의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는 ‘역사적 경험’과 ‘원형적 전쟁관’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조선 사대부의 전쟁관을 밝히고, 주화파와 척화파가 각각 어떠한 전쟁관에 의해 주장을 달리하였는지 살펴보고자하였다.
현대의 전쟁은 국제정치의 일부로, ‘국력’이나 ‘안보’와 같은 개념에 의해 정의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조선 사대부들은 전쟁에 대해 우리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 관점이 우리의 관점과 다르다 하여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즉 척화론을 무조건 ‘경도된 명분론’으로 치부하는 시각은 온당한 시각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척화론을 포함하여 주화-척화 논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적 경험에 대한 견해와 전쟁에 대한 관념이 어떠한지 살피고 이를 기준으로 그들의 주장을 평가해야 한다. 이는 조선 정치사에 대한 시각의 맹점, 즉 ‘유교 망국론’과 ‘조선중화주의’사이의 간극을 극복하는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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