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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말 20세기 초 영국 언론의 한국 ‘형상화’와 제국주의적 여론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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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876년 일본에 의한 ‘개항’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제국주의국가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통상’을 통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관심과 목적에 더 앞서 선교사들은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개항’ 이후 영국과 한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체결한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선교사들, 외교관, 교사, 군인, 상인 등이 있었으며 이들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많은 선행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영국대중에게 직접적으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정치적인 ‘재단’을 함으로써 여론을 조성하여 영국 정부의 대한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신문, 잡지 등의 기사들에 대한 수집 및 분석은 여전히 미진하다. 이에 본 연구는 영국의 신문, 잡지 기사를 ‘문화제국주의’라는 틀 안에서 분석하여 첫째, 1800년대 초반부터 1876년 이전까지 영국언론에서 한국은 ‘미지의 나라’로, 동시에 ‘문명국’ 영국과 대비되는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나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둘째, 일본에 의한 ‘개항’ 그리고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의 계속되는 근대국가 수립 노력과 좌절, 즉 일련의 개혁사건들과 반동에 대해 영국언론은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기사의 기본적인 논조 및 인식은 한국이 근대적 개혁, 나아가 근대국가를 수립하는데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회의적인 것이었다. 셋째, 1902년과 1905년 두 차례의 영일동맹 체결,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 일본에 의한 한국 ‘보호국화’에 대해 영국언론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동시에 전쟁과 ‘보호국화’가 영국의 이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보호국화’ 이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해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해 가는 과정까지 영국언론의 보도는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또는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의 ‘식민지화’를 역사적 귀결, 즉 ‘문명국’에 의한 ‘미개국’의 ‘문명화’ 과정으로 파악하며 긍정하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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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6년 일본에 의한 ‘개항’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제국주의국가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통상’을 통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한 것...

      876년 일본에 의한 ‘개항’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제국주의국가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은 ‘통상’을 통한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관심과 목적에 더 앞서 선교사들은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개항’ 이후 영국과 한국이 정식으로 수교를 체결한 이후 한국으로 건너온 수많은 선교사들, 외교관, 교사, 군인, 상인 등이 있었으며 이들이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많은 선행연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영국대중에게 직접적으로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정치적인 ‘재단’을 함으로써 여론을 조성하여 영국 정부의 대한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신문, 잡지 등의 기사들에 대한 수집 및 분석은 여전히 미진하다. 이에 본 연구는 영국의 신문, 잡지 기사를 ‘문화제국주의’라는 틀 안에서 분석하여 첫째, 1800년대 초반부터 1876년 이전까지 영국언론에서 한국은 ‘미지의 나라’로, 동시에 ‘문명국’ 영국과 대비되는 ‘미개하고’ ‘야만스러운’ 나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둘째, 일본에 의한 ‘개항’ 그리고 영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의 계속되는 근대국가 수립 노력과 좌절, 즉 일련의 개혁사건들과 반동에 대해 영국언론은 지속적으로 보도하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기사의 기본적인 논조 및 인식은 한국이 근대적 개혁, 나아가 근대국가를 수립하는데 성공할 수 없으리라는 회의적인 것이었다. 셋째, 1902년과 1905년 두 차례의 영일동맹 체결, 그리고 1904년 러일전쟁의 발발, 일본에 의한 한국 ‘보호국화’에 대해 영국언론은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동시에 전쟁과 ‘보호국화’가 영국의 이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보호국화’ 이후부터 1910년 일본에 의해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해 가는 과정까지 영국언론의 보도는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의 이해관계에 맞춰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또는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의 ‘식민지화’를 역사적 귀결, 즉 ‘문명국’에 의한 ‘미개국’의 ‘문명화’ 과정으로 파악하며 긍정하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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