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분황 원효와 나옹 혜근의 서민교화 = Wonhyo and Naong‘s edification of the people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8582360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국문 초록 (Abstract)

      원효는 교학적으로 일심(一心)사상을 중심으로 화쟁(和諍)을 이끌었고, 삶에서는 무애행을 실천했다. 원효가 막힘이 없다는 무애가를 부른 것은 불교의 내용을 일반 서민들에게 알리기 위함...

      원효는 교학적으로 일심(一心)사상을 중심으로 화쟁(和諍)을 이끌었고, 삶에서는 무애행을 실천했다. 원효가 막힘이 없다는 무애가를 부른 것은 불교의 내용을 일반 서민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기에, 가사는 서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향가로 지었을 것이고, 장단에 맞춰 가사를 읊느라 호로를 들고 춤을 추었던 것이다. 이후 무애가는 가사보다 춤으로 연출되면서 ‘무애무’ ‘무애희’라 불렀다.
      한문도 모르고 시간 여유도 없는 서민들에게 노는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극락세계에 왕생하라는 정토신앙을 권했다. 무애가는 승속을 막론하고 조선조에까지 널리 계승되었으며, 궁중에서는 기녀와무동이 무애가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었다. 원효의 서민교화를 이은 고승은 고려말 나옹이었다. 나옹은 우리말로 서왕가와 승원가를 지어 부지런히 염불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을 권장했다. 오늘날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시는 출처는 없지만 나옹의 시라 전해지는 것은 나옹이 서민 속에 얼마나 친숙하게 다가와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고려 대각국사 의천은 원효의 화쟁사상과 무애행으로 원효를 보살이라 불렀으며, 고려말 승속들은 나옹의 교화력과입적시 나타난 이적으로 나옹을 부처로 추앙했다.
      조선조 전쟁으로 소실된 사찰을 재건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사찰을운영하기 위해 서민들의 지원이 절실했던 시기에 서민들의 인기를 얻던 원효와 나옹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찰의 창건설화에서 원효와 나옹의 이름을 빌려와 사찰에 신성(神性)을 더했다.
      원효와 나옹에 대한 승속의 예경은 조선후기 만들어진 각종 의례집에서 선문조사를 예경할 때도 원효와 나옹을 예경하고 화엄조사를 예경할 때도 원효와 함께 나옹을 예경하고 있다.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