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커첸은 미국 남장로회 전주 선교지부 소속 선교사로서 40여 년 동안 호남지역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험준한 산악으로 뒤덮인 전북의 내륙 지역을 누비며 수많은 농촌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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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Korean
KCI등재
학술저널
65-9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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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맥커첸은 미국 남장로회 전주 선교지부 소속 선교사로서 40여 년 동안 호남지역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험준한 산악으로 뒤덮인 전북의 내륙 지역을 누비며 수많은 농촌교회를...
맥커첸은 미국 남장로회 전주 선교지부 소속 선교사로서 40여 년 동안 호남지역에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험준한 산악으로 뒤덮인 전북의 내륙 지역을 누비며 수많은 농촌교회를 개척하고 시골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순회사역자의 일을 걷는 동시에 도시에서는 전주남문밖교회와 전주 중앙교회의 담임목사로 활동했다. 그는 선교현장에서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선교사들이 지녀야 할 핵심 덕목과 행동 지침을 창안하기도 하였으며, 한국 교회가 해외선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맥커첸은 목회자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평양신학교에서 오래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전주남자성경학교의 교장으로 30년간 봉직했다. 그의 지도하에 수많은 교회지도자가 배출되어 호남지역 교회사의 주역이 되었다.
태평양전쟁으로 송환된 뒤에도 한국인을 위한 그의 선교활동은 중단되지 않았다. 그는 하와이 한인기독교회의 부목사로 재직하면서 한인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동시에 한인 전쟁포로를 위한 포로사역도 하였다. 하와이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신학적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이교도와 기독교의 전쟁’으로 해석하고,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인한 하와이의 ‘세속화’를 경계하며, 한인 사회에 나타나는 ‘영성의 약화’를 우려하였다. 맥커첸은 세속화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강력한 대안으로 장로교의 보수 신학을 내세웠는데 이는 그가 당시 미국 남장로회의 신학적 노선을 철저히 따른 선교사였음을 잘 보여준다.
목차 (Table of Contents)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oyd Tate) 가족의 한국 선교
윌리엄 해리슨(W. B. Harrison)의 한국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