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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왕성의 공간구조와 경관 = The Spatial Structure and Landscape of the Gaya Capital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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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7135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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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Among the Gaya empires, Geumgwan-Gaya, Dae-Ggaya, Ara-Gaya, and Dara-Guk were found to have fortresses where kings and rulers lived. The archaeological aspects, including the surrounding ruins, were organized and the structural features and scenery of the Gaya Kingdom were explored in a macro-level manner. No roads or temples were built based on urban areas such as Silla and Baekje. However, it was confirmed that royal palaces, settlements, royal tombs, ritual facilities, and production facilities were all part of the ancient capital city system. And the view that the royal palace and the Wangmyo station are close to each other within a kilometer of distance can be seen as one of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Gaya's royal castle. Gaya established the space structure of the fortress while building the fortress, which is a memorial facility for the royal palace. In particular, the pattern of placing important facilities in the center and moving special production facilities to the outskirts can be seen as evidence of the perception of the capital city system. However, in the case of Geumgwan Gaya, it must have been difficult to develop into a capital city system due to the 400 years of the southern conquest of Goguryeo and the westward advance of Silla after the establishment of an earthen rampart. It is understood that Dae-Gaya and Ara-Gaya, which were great kingdoms of the end of the Gaya period, were also not in a condition to concentrate on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 from the establishment of an earthen rampart to the late 5th century. In other words, Gaya is an unfinished city, and in other words, the best archaeological data showing the transition period of the ancient Korean peninsula's capital system is Gaya's royal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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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ong the Gaya empires, Geumgwan-Gaya, Dae-Ggaya, Ara-Gaya, and Dara-Guk were found to have fortresses where kings and rulers lived. The archaeological aspects, including the surrounding ruins, were organized and the structural features and scenery of...

      Among the Gaya empires, Geumgwan-Gaya, Dae-Ggaya, Ara-Gaya, and Dara-Guk were found to have fortresses where kings and rulers lived. The archaeological aspects, including the surrounding ruins, were organized and the structural features and scenery of the Gaya Kingdom were explored in a macro-level manner. No roads or temples were built based on urban areas such as Silla and Baekje. However, it was confirmed that royal palaces, settlements, royal tombs, ritual facilities, and production facilities were all part of the ancient capital city system. And the view that the royal palace and the Wangmyo station are close to each other within a kilometer of distance can be seen as one of the common characteristics of Gaya's royal castle. Gaya established the space structure of the fortress while building the fortress, which is a memorial facility for the royal palace. In particular, the pattern of placing important facilities in the center and moving special production facilities to the outskirts can be seen as evidence of the perception of the capital city system. However, in the case of Geumgwan Gaya, it must have been difficult to develop into a capital city system due to the 400 years of the southern conquest of Goguryeo and the westward advance of Silla after the establishment of an earthen rampart. It is understood that Dae-Gaya and Ara-Gaya, which were great kingdoms of the end of the Gaya period, were also not in a condition to concentrate on the development of the capital from the establishment of an earthen rampart to the late 5th century. In other words, Gaya is an unfinished city, and in other words, the best archaeological data showing the transition period of the ancient Korean peninsula's capital system is Gaya's royal ca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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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가야제국에서 왕 또는 지배자가 거주한 성이 조사된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다라국을 대상으로 주변 유적 등 고고학적 양상을 정리하여 가야왕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과 경관에 대해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가야 왕성의 공간구조와 경관에 대해 검토해 본 결과, 신라와 백제와 같이 도시구획을 기본으로 하는 도로와 사찰은 조성되지 않았지만, 고대 도성체제의 구성요소인 왕궁, 취락, 왕묘, 제의시설, 생산시설 등은 두루 갖추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왕궁과 왕묘역이 1km 이내 상당히 지근거리에 인접하며 상호 가시권에 포함되는 경관은 가야 왕성만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로 이해된다. 가야는 왕궁을 보호하는 위곽시설인 토성을 축조하면서 왕성의 공간구조를 확립해 나가는데, 특히 중요시설을 중심지로 배치하고 특수생산시설 등을 외곽으로 이동시키는 양상은 도성체제의 인식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금관가야의 경우 토성 성립 이후 400년 고구려 남정과 신라의 서진 등으로 인해 도성체제로의 발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며 후기가야의 대국이었던 대가야와 아라가야 또한 5세기 후반 토성성립에서 멸망기까지 도성 개발에 진력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가야는 미완의 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을 바꿔 생각하면 한반도 고대국가의 도성체제로의 이행기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가야 왕성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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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제국에서 왕 또는 지배자가 거주한 성이 조사된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다라국을 대상으로 주변 유적 등 고고학적 양상을 정리하여 가야왕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과 경관에 대해 ...

      가야제국에서 왕 또는 지배자가 거주한 성이 조사된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다라국을 대상으로 주변 유적 등 고고학적 양상을 정리하여 가야왕성으로서의 구조적 특징과 경관에 대해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가야 왕성의 공간구조와 경관에 대해 검토해 본 결과, 신라와 백제와 같이 도시구획을 기본으로 하는 도로와 사찰은 조성되지 않았지만, 고대 도성체제의 구성요소인 왕궁, 취락, 왕묘, 제의시설, 생산시설 등은 두루 갖추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왕궁과 왕묘역이 1km 이내 상당히 지근거리에 인접하며 상호 가시권에 포함되는 경관은 가야 왕성만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로 이해된다. 가야는 왕궁을 보호하는 위곽시설인 토성을 축조하면서 왕성의 공간구조를 확립해 나가는데, 특히 중요시설을 중심지로 배치하고 특수생산시설 등을 외곽으로 이동시키는 양상은 도성체제의 인식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금관가야의 경우 토성 성립 이후 400년 고구려 남정과 신라의 서진 등으로 인해 도성체제로의 발전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며 후기가야의 대국이었던 대가야와 아라가야 또한 5세기 후반 토성성립에서 멸망기까지 도성 개발에 진력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결국 가야는 미완의 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을 바꿔 생각하면 한반도 고대국가의 도성체제로의 이행기의 양상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가야 왕성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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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안성현, "함안지역의 가야산성, In 아라가야산성, 보존과 활용" 2017

      2 이정근, "함안 우거리토기생산유적" 국립김해박물관 2007

      3 이희준,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성지 발굴조사 성과" 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 2019

      4 이춘선,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최신발굴성과, In 2018 가야문화유산 최신조사성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8

      5 김지연, "함안 법수면 일대 토기 가마와 조사성과, In 가야와 왜의 토기생산과 교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9

      6 박승규, "옥전고분군과 성산토성의 관계, In 다라국의 도성 성산" 합천군․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19

      7 강동석, "아라가야의 역사와 공간" 도서출판 선인 2018

      8 이은석, "아라가야의 역사와 공간" 도서출판 선인 2018

      9 최경규, "아라가야의 역사와 공간" 도서출판 선인 2018

      10 국립진주박물관, "서부경남의 성곽" 2011

      1 안성현, "함안지역의 가야산성, In 아라가야산성, 보존과 활용" 2017

      2 이정근, "함안 우거리토기생산유적" 국립김해박물관 2007

      3 이희준,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성지 발굴조사 성과" 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 2019

      4 이춘선,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최신발굴성과, In 2018 가야문화유산 최신조사성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8

      5 김지연, "함안 법수면 일대 토기 가마와 조사성과, In 가야와 왜의 토기생산과 교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9

      6 박승규, "옥전고분군과 성산토성의 관계, In 다라국의 도성 성산" 합천군․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19

      7 강동석, "아라가야의 역사와 공간" 도서출판 선인 2018

      8 이은석, "아라가야의 역사와 공간" 도서출판 선인 2018

      9 최경규, "아라가야의 역사와 공간" 도서출판 선인 2018

      10 국립진주박물관, "서부경남의 성곽" 2011

      11 박상욱, "삼국시대의 토성과 목책성" 한국성곽학회 2016

      12 권오영, "삼국시대 고고학개론1-도성과 토목편-" 진인진 2014

      13 홍보식, "삼국시대 고고학개론1 -도성과 토목편-" 진인진 2014

      14 대가야박물관, "산성을 쌓아 궁성을 지키다, 제10회 대가야박물관 기획특별전 도로" 2013

      15 박천수, "비화가야 : 고대 창녕지역의 비화가야를 밝히다" 진인진 2019

      16 이성주, "마을(村落)과 都市에 관한 考古學의 論議" 중부고고학회 11 (11): 5-31, 2012

      17 이희준, "대가야고고학연구" 사회평론 2017

      18 김권일, "대가야 문물의 생산과 유통" 고렁군대가야박물관․(재)영남문화재연구원 2015

      19 이성주, "김해 봉황동유적과 고대 동아시아-가야 왕성을탐구하다-" 주류성 2018

      20 심재용, "김해 봉황동유적 발굴조사, In 고구려 고고학의 제문제" 2003

      21 박대재, "김해 봉황동 유적과 고대 동아시아 : 가야 왕성을 탐구하다" 주류성 2018

      22 국립김해박물관, "기와, 공간을 만들다" 2016

      23 송원영, "금관가야와 광개토왕비문 경자년 남정기사 : 김해지역 고고학 발굴성과를 중심으로" 부산대학교 대학원 2010

      24 민경선, "금관가야 중심지로서의 봉황동 유적 — 최신 조사 성과를 중심으로" 한국고고학회 (109) : 106-141, 2018

      25 최재현, "고령의 기와" 대가야박물관 2017

      26 강동석, "고김해만 일대 금관가야의 도시 경관, In 토지활용과 경관의 고고학" 2018

      27 기경량, "고구려 왕성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2017

      28 전옥년, "고고자료로 본 봉황동유적의 성격, In 봉황동유적" 2013

      29 박천수, "가야토기" 진인진 2010

      30 소배경, "가야의 포구와 해상활동" 주류성 2011

      31 최재현, "가야사의 공간적 범위" 고령군대가야박물관․계명대학교 학국학연구원 2019

      32 심광주, "가야리토성의 축성법과 의의" 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 2019

      33 조효식, "가야고고학개론" 진인진 2016

      34 이지은, "安羅國 都城의 景觀 硏究" 경남대학교 대학원 2012

      35 임학종, "『수리․토목고고학의 현상과 과제』Ⅱ" 우리문화재연구원 2018

      36 이동희, "『가야고분군』Ⅰ"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2018

      37 박영민, "4∼6세기 金官加耶의 邑落 構成" 경북대학교 대학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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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20-04-23 학회명변경 한글명 :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재단 -> 동아시아문물연구소
      영문명 : The Research Foundation of Cultural Relics in East Asia -> The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Relics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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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18-12-01 평가 등재후보 탈락 (계속평가)
      2017-12-01 평가 등재후보로 하락 (계속평가) KCI등재후보
      2013-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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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24 0.24 0.24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25 0.22 0.56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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