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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파국 위치 재론 = Re-discussion of Banpa(伴跛) 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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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riss.kr/link?id=A10664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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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Banpa(伴跛) is a country in Gaya(加耶). It appears in Nihonshoki(日本書紀) and Yangjikgongdo(梁職貢圖. It is mainly seen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According to Baekje(百濟)'s insistence in Nihonshoki, Banpa had taken over the land of Gimun(己汶), originally their land. And Wae(倭= Japan) gives Gimun and Daesa(帶沙) area to Baekje. This is due to the exaggeration and fabrication of Nihonshoki. The fact is that Banpa fought as Baekje advanced into Gaya region in the first half of the sixth century.
      Various views exist on the location of this Banpa. There were a theory of Seongju(星州), Gyeongsangbuk-do, and a theory of Namwon(南原), Jeollabuk-do. But a thoery of Goryeong(高靈) is now prevalent. The theory of Goryeong is based on the idea that the Gaya forces that could fight Baekje in the first half of the sixth century must be Garaguk(加羅國). It is to see Banpa as Gara. Recently, a thoery of Jangsu(長水), Jeollabuk-do has been emerging and attracting attention. The theory of Jangsu is based on that castles(城) and signal-fire(烽堠) facilities are found near Jangsu. This theory is in line with the record of the Nihonshoki that Banpa built castles and set up military warehouses(邸閣) in preparation for Japanese invasion. The theory emphasizes the correspondence between archaeological sources and literature sources.
      This article critically examines these theories. And based on the related feed, Banpa is determined in Seongju. Furthermore, Banpa is regarded as subjugated to Garaguk of Goryeong between 521 and 529. This article considered the margin of historical records for which Banpa can be seen as Garaguk remains because of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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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npa(伴跛) is a country in Gaya(加耶). It appears in Nihonshoki(日本書紀) and Yangjikgongdo(梁職貢圖. It is mainly seen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According to Baekje(百濟)'s insistence in Nihonshoki, Banpa had taken over the...

      Banpa(伴跛) is a country in Gaya(加耶). It appears in Nihonshoki(日本書紀) and Yangjikgongdo(梁職貢圖. It is mainly seen in the first half of the 6th century. According to Baekje(百濟)'s insistence in Nihonshoki, Banpa had taken over the land of Gimun(己汶), originally their land. And Wae(倭= Japan) gives Gimun and Daesa(帶沙) area to Baekje. This is due to the exaggeration and fabrication of Nihonshoki. The fact is that Banpa fought as Baekje advanced into Gaya region in the first half of the sixth century.
      Various views exist on the location of this Banpa. There were a theory of Seongju(星州), Gyeongsangbuk-do, and a theory of Namwon(南原), Jeollabuk-do. But a thoery of Goryeong(高靈) is now prevalent. The theory of Goryeong is based on the idea that the Gaya forces that could fight Baekje in the first half of the sixth century must be Garaguk(加羅國). It is to see Banpa as Gara. Recently, a thoery of Jangsu(長水), Jeollabuk-do has been emerging and attracting attention. The theory of Jangsu is based on that castles(城) and signal-fire(烽堠) facilities are found near Jangsu. This theory is in line with the record of the Nihonshoki that Banpa built castles and set up military warehouses(邸閣) in preparation for Japanese invasion. The theory emphasizes the correspondence between archaeological sources and literature sources.
      This article critically examines these theories. And based on the related feed, Banpa is determined in Seongju. Furthermore, Banpa is regarded as subjugated to Garaguk of Goryeong between 521 and 529. This article considered the margin of historical records for which Banpa can be seen as Garaguk remains because of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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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반파는 가야의 한 나라이다. 일본서기와 양직공도에 등장한다. 주로 6세기 전반 대에 활약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서기가 전하는 백제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자신들의 땅이었던 기문의 땅을 반파가 빼앗았다고 하고 있다. 이에 왜(=일본)는 기문과 대사지역을 백제에 준다. 이는 일본서기의 과장과 날조에 의한 것이다. 그 실상은 6세기 전반 백제가 가야지역으로 진출함에 따라 반파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반파의 위치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경상북도 성주설, 전라북도 남원설 등이 있었지만, 현재 고령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고령설은 6세기 전반 백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야세력은 가라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반파를 곧 가라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라북도 장수설이 대두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장수설은 장수 주변에서 성(城)과 봉수시설이 확인된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반파가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봉수시설(烽堠)과 군사창고(邸閣)을 설치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고고(考古) 자료와 문헌자료의 일치점을 강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설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관련 사료들을 바탕으로 반파를 성주지역에 비정했다. 나아가 반파는 521~529년 사이에 고령의 가라국에 복속된 것으로 보았다. 반파를 가라국으로 볼 수 있는 여지의 사료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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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파는 가야의 한 나라이다. 일본서기와 양직공도에 등장한다. 주로 6세기 전반 대에 활약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서기가 전하는 백제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자신들의 땅이었던 기문의 땅...

      반파는 가야의 한 나라이다. 일본서기와 양직공도에 등장한다. 주로 6세기 전반 대에 활약하는 모습이 보인다. 일본서기가 전하는 백제의 주장에 의하면, 원래 자신들의 땅이었던 기문의 땅을 반파가 빼앗았다고 하고 있다. 이에 왜(=일본)는 기문과 대사지역을 백제에 준다. 이는 일본서기의 과장과 날조에 의한 것이다. 그 실상은 6세기 전반 백제가 가야지역으로 진출함에 따라 반파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러한 반파의 위치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경상북도 성주설, 전라북도 남원설 등이 있었지만, 현재 고령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고령설은 6세기 전반 백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야세력은 가라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 반파를 곧 가라라고 보는 것이다. 최근에는 전라북도 장수설이 대두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장수설은 장수 주변에서 성(城)과 봉수시설이 확인된다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반파가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고 봉수시설(烽堠)과 군사창고(邸閣)을 설치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부합된다는 것이다. 고고(考古) 자료와 문헌자료의 일치점을 강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설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관련 사료들을 바탕으로 반파를 성주지역에 비정했다. 나아가 반파는 521~529년 사이에 고령의 가라국에 복속된 것으로 보았다. 반파를 가라국으로 볼 수 있는 여지의 사료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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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전영래, "천관우선생환력기념한국사논총" 정은문화사 1985

      2 김재홍, "전북 동부지역 가야 고분의 위세품과 그 위상" 호남고고학회 59 : 26-45, 2018

      3 곽장근, "장수군 제철유적의 분포양상과 그 의미" 호남고고학회 57 : 4-25, 2017

      4 군산대학교 박물관, "장수 영취산·봉화산 봉수(장수군 관내봉수 2개소 문화재 시·발굴조사 보고서)" 2016

      5 "일본서기"

      6 주성지, "웅진시대 백제의 蟾津江 水系 진출" 22 : 2003

      7 백승옥, "영·호남 경계지역 가야 정치체의 성격" 백제학회 (30) : 201-226, 2019

      8 "삼국사기"

      9 김태식, "사국시대의 한일관계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4

      10 위가야, "백제의 기문ㆍ대사 진출과정에 대한 재검토 - 513년 국제회의의 실상을 중심으로 -" 수선사학회 (58) : 171-204, 2016

      1 전영래, "천관우선생환력기념한국사논총" 정은문화사 1985

      2 김재홍, "전북 동부지역 가야 고분의 위세품과 그 위상" 호남고고학회 59 : 26-45, 2018

      3 곽장근, "장수군 제철유적의 분포양상과 그 의미" 호남고고학회 57 : 4-25, 2017

      4 군산대학교 박물관, "장수 영취산·봉화산 봉수(장수군 관내봉수 2개소 문화재 시·발굴조사 보고서)" 2016

      5 "일본서기"

      6 주성지, "웅진시대 백제의 蟾津江 水系 진출" 22 : 2003

      7 백승옥, "영·호남 경계지역 가야 정치체의 성격" 백제학회 (30) : 201-226, 2019

      8 "삼국사기"

      9 김태식, "사국시대의 한일관계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4

      10 위가야, "백제의 기문ㆍ대사 진출과정에 대한 재검토 - 513년 국제회의의 실상을 중심으로 -" 수선사학회 (58) : 171-204, 2016

      11 이영식, "백제의 가야진출 과정" 7 : 1995

      12 김태식, "백제의 가야지역 관계사 시고,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 백제연구소 1996

      13 정재윤, "백제와 섬진강" 서경문화사 2008

      14 주보돈, "백제와 가야 그리고 신라의 각축장 금강상류지역" 한국상고사학회 2011

      15 "남제서"

      16 김재홍, "기문과 반파의 역사적 위치 및 성격, 호남과 영남 경계의 가야" 2019

      17 조명일, "금강상류지역의 산성과 봉수의 분포양상, in 백제와 가야 그리고 신라의 각축장 금강상류지역" 한국상고사학회 2011

      18 "광개토태왕릉비"

      19 백승충, "계체․흠명기 ‘임나(국) 4현 할양’ 기사의 성격" 부경역사연구소 (31) : 85-125, 2012

      20 이영식, "가야제국사연구" 생각과종이 2016

      21 김태식, "가야의 공간적 범위 재론, 가야사의 공간적 범위"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계명교 한국학연구원 2019

      22 백승옥, "가야 각국사 연구" 혜안출판사 2003

      23 金鉉球, "百濟의 加耶進出에 관한 一考察" 70 : 2000

      24 곽장근, "湖南 東部地域 高塚의 分布相과 그 意味" 31 : 2000

      25 郭長根, "湖南 東部地域 石槨墓 硏究" 書景文化社 1999

      26 今西龍, "朝鮮古史の硏究" 近澤書店 1937

      27 小島憲之, "春秋時代の軍事と外交" 汲古書院 2015

      28 小林伸二, "春秋時代の‘取’國について; 附庸小國の存在形態" 中國文史哲硏究會 74 : 1995

      29 田中俊明, "日本書紀의 ‘任那’ -가야사의 공간적 범위와 관련하여-, 가야사의 공간적 범위"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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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鮎貝房之進, "日本書紀朝鮮地名攷" 7 : 1937

      32 백승옥, "己汶·帶沙의 위치비정과 6세기 전반 대 加羅國과 百濟, 5~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대가야" 고령군 대가야박물관·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7

      33 홍성화, "己汶, 帶沙 지명 비정에 대한 일고찰" 역사연구소 (82) : 185-212, 2014

      34 田中俊明, "大加耶連盟の興亡と「任那」-加耶琴だけが殘った" 吉川弘文館 1992

      35 김태식, "加耶聯盟史" 一潮閣 1993

      36 千寬宇, "加耶史硏究" 一潮閣 1991

      37 백승옥, "加耶 ‘縣’의 성격과 省熱縣의 위치 ―于勒의 출신지에 대한 재검토" 한국민족문화연구소 (30) : 231-259, 2007

      38 丁仲煥, "加羅史硏究" 혜안 2000

      39 이동희, "全南東部地域의 加耶系 土器와 歷史的 性格" 한국상고사학회 46 (46): 71-112, 2004

      40 이동희, "全南 東部地域 加耶文化의 起源과 變遷" 백제문화연구소 (45) : 5-4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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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小島憲之, "上代日本文學と中國文學, 上" 塙書房 1962

      44 李鎔賢, "‘梁職貢圖’百濟國使條の‘傍小國’" 37 : 1999

      45 백승충, "6세기 전반 백제의 가야진출과정" 31 : 2000

      46 주보돈, "6세기 전반 나제동맹 관계의 향방, in 신라와 백제, 소통과 갈등"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47 유우창, "6세기 加羅의 對 羅·濟 관계" 한국고대사학회 (88) : 331-364, 2017

      48 宋永根, "5~6세기 전라 동부지역의 가야제국과 백제의 진출" 인제대학교 2019

      49 魏加耶, "5~6世紀 百濟와 新羅의 ‘軍事協力體制’ 硏究" 성균관대학교 2018

      50 노중국, "4~6세기 나제동맹의 성격과 의미, 나제동맹" 경상북도문화재 연구원·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18

      51 양숙자, "2018 가야문화유산 최신조사 성과 자료집"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8

      52 조명일, "2018 가야문화유산 최신조사 성과 자료집"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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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6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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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 0.4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5 0.43 1.181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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