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역사학은 경성제국대학과 일본 유학생을 축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학문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순수학문을 추구하는 그룹에서부터 운동지향적인 사람까지 다양한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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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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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역사학은 경성제국대학과 일본 유학생을 축으로 형성되었다. 이들은 학문적 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순수학문을 추구하는 그룹에서부터 운동지향적인 사람까지 다양한 스팩트럼을 이루었다. 역사관의 측면에서도 문헌고증사학에서부터 유물사관의 소지자까지 있었지만, 랑케의 영향을 받아 실증적 규명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점은 공통된다고 하겠다.
이들의 역사인식과 관계는 식민지라는 조선 때문에 '회색지대'에 거주할 수 없게 하였다. 그들은 학문이란 이름으로 운동성을 강조하든 순수성을 강조하든 특정한 연구를 지향했지만, 정치적 태도에서는 분명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은 역사학계의 지형을 새롭게 재구성할 절호의 기회였다.그렇지만 좌우대결과 분단, 그리고 전쟁을 거치며 한국 현대 역사학은 실증주의적인 문헌고증사학 계통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들은 개인적 감정에서 민족적이었을지 몰라도 학문적 내용이란 측면에서 보면 식민사학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남한역사학계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본격화한 것은 4.19를 경험 이후였고, 북한의 학문동향도 새로운 노력의 자극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