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가면서 기독교에 신앙적 활력소를 제공한 것 중의 하나는 오순절 성령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00년 찰스 파램(Cllarles F. Parham)이 성경학교의 문을 열면서 소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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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2003
학위논문(석사) -- 한일장신대학교 한일신학대학원 , 교역학전공 , 2004. 2
2003
한국어
231.1 판사항(4)
전북특별자치도
vii, 69p. ; 26cm .
참고문헌: p. 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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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가면서 기독교에 신앙적 활력소를 제공한 것 중의 하나는 오순절 성령운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00년 찰스 파램(Cllarles F. Parham)이 성경학교의 문을 열면서 소위 방언파라는 이를으로 그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이래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이미 국제적인 대 교단으로 급성장 하였고, 그 증가 추세는 아직도 둔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에 사는 인류들에게 기독교는 인류의 정신적 회복을 가져오게 하는 종교임을 일종의 정신운동민 "성령운동"을 통하여 보여줌으로써 "가뭄 들에 불어오는 신선한 비바람"처럼 느껴져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본문을 통해 얻어진 결과들을 장별로 요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서론 부분으로서 연구 목적은 한국교인들이 바른 신학과 바른 성령운동을 통헤 바른 신앙 생활관을 정립하고자함이며, 연구의 방법은 오순절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제2장에서는 교회와 성령의 관계를 논하였는데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알게하고, 말씀을 듣고 깨닫게하고, 은혜를 보존케하고, 성장케하고, 부흥케하고 전진케한다. 제3장은 한국교회의 성령사역과 성령운동에 있어서 오순절 성령운동은 한국교회를 급 성장시켜온 반면에 샤머니즘으로 전략시키고 신비주의로 빠지게 하는 오류를 범했다. 제4장에서 오순절 성령운동의 강조점을 말하는데 그것은 방언과 신유의 은사이다. 오순절 주의자들은 방언과 신유의 은사는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들이 누려야 할 축복이라고 가리켰다. 제5장은 성령운동의 문제점과 그 영향을 살펴본 즉 문제점에 있어서 성령세례, 방언과대평가, 특정은사, 기복신앙 신학의 빈곤이며, 이런 문제점들로 인한 한국교회의 영향은 급성장으로 인해 신앙의 질적으로 볼 때 너무 형편이 없다. 즉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방언과 신유 등 화려한 "성령의 불꽃놀이"는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기성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영적 빈곤과 은혜였음을 더욱 절감케 하고 오순절주의야말로 한국교회 신자들이 "20세기 한국교회의 성령부재의 광야"에서 바라보고 나가야할 "성령의 구름 기둥이요, 불기둥" 이라는 생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6.25사변이 안겨준 고통의 쓴 잔을 마시면서 인내하고 살던 50년대 중반부터 이 운동이 사람들기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는데 얼마 후에는 무서운 속도로 파급되기 시작했다. 지난 30년 등안 이러한 운동으로 한국교회는 심한 열병을 앓는 셈이 되었고 일부에서는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운동의 초창기에는 일반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심지어는 이단이라는 정죄를 서슴치 않코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운동의 신학적 정당성이 어떠하든지 간에 거기는 별로 개념치 않고 교파를 초월하여 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직. 간접적으로 이 운동의 동조자가 되어 있고, 신학적, 교리적 비판의 칼날도 많이 무디어져 버렸다. 지금은 성령운동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고 문제시하고 있는 내용도 거의가 예언, 악령추방 등 지엽적인 현상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성령운동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아무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유익이라고 한다면 신학적으로 성령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가져다주었고 목회적으로는 기성교회가 크게 각성할 수 있는 자극제의 구실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교회인구의 증가를 가져오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한국교회에 끼친 해독 역시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 비오순절계 교회의 신자들에게 침투해 들어가 그들로 하여금 "성령세례"와 그 증거들로서의 방언과 신유 등 "이적적 은사"들을 추구케 하는 오순절 교회, 성령집회 또는 은사집회에 열정적으로 참여케 하므로 소위 "주일오후 3시 기독교"를 형성해가고 있는 "신오순절주의"자 오늘날 기독교의 제3세력으로 급속한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현대교회의 성령운동과 특히, "신오순절로 이어지고 현대 오순절 주의가 한국 기독교계와 일반사회까지 누리고 있는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경험(그것이 신령한 체험이라고 할 지라도)이 하나님의 구원계시의 서책인 성경보다 높이 평가하는 경험주의적 신앙은 인간의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우월시 하는 사상 때문에 성경적 기독교의 바른 신앙과 신학을 변질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의 축복을 더 좋아하는 수복신앙과 성령운동 성령의 은사들을 더 열망하는 은사주의 등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에 무속신앙의 요소를 혼합시켜서 교인들의 영성을 흐려 놓았으며 성경말씀보다 체험을 우위에 후는 감각적인 신앙풍조를 조성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현실주의에 뿌리를 둔 기복신앙이 전통적인 경건주의 신앙을 크게 오염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자가 성령세례, 방언의 은사, 신유들을 완전히 무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뜨겁게 사랑하며 전파하려는 그러한 뜨거움보다는 어떤 체험을 위해 몸부림치며, 어떤 은사나 방언을 해야만 참 신자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는 은사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하고, 그 사람들을 공격하며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아무도 가지지 못한다. 다만 바울처럼 긍정은 하지만 소극적인 범위 안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튼 한국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의 바른 신학의 정립이 시급하다. 즉, 물밀 듯이 밀려오는 이단과 신흥 성령운동의 신학 사조에 대한 바른 신학사조에 대판 바른 신학의 보급이 유기적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물질적 축복보다는 신령한 축복에 관심을 갖도록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일 것이다. 진정한 오순절 성령의 참된 역사는 "오직 성령과 더불어" "성경을 가지고"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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