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 당시, 지원軍이었던 明나라 군사들은 <전습록>이라는 서적을 가지고 왔었는데, 조선의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전습록>이라는 서적에 마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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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Korean
한국연구재단(N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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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지원軍이었던 明나라 군사들은 <전습록>이라는 서적을 가지고 왔었는데, 조선의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전습록>이라는 서적에 마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는...
❏ 임진왜란 당시, 지원軍이었던 明나라 군사들은 <전습록>이라는 서적을 가지고 왔었는데, 조선의 지배층과 지식인들은 <전습록>이라는 서적에 마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는 否認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습록>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아직 간행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지식인들은 이를 斯文亂賊으로 치부하거나 또는 道․佛만도 못하는 異端이라 비판하며, 아예 禁書로 지목하였다. <전습록>이 간행된 바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양명학 속에 담겨있는 思考와 哲理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아이러니한 사실은 비판대상이었던 <전습록>이 조선에서는 아직 간행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이를 비판하는 곤지기・이단변정・학부통변과 같은 양명학 비판서적이 먼저 간행되었다는 사실과, 동시에 이들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이다.
❏ 그렇다면 조선 관료들은 왜 그토록 양명학을 비판하였을까? 경전을 넘어서는 자유분방한 마음[心]의 이치를 강조해서였을까?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을 것이다. 양명학의 사유구조에 의하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한 자리에서 밥을 먹고, 여자도 인간인 이상 어느 때이나 改嫁할 수 있으며, 士農工商의 신분질서가 이미 와해되고 賣官賣職의 풍토가 일어나면서 평등의식이 자라나기 시작하였고, 이에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자유로운 문학관과 가치관 그리고 세계관이 등장하며 기득권이 누렸던 모든 것이 해체되는 것을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연구진은 양명학비판 문헌 속에서 그 비판논리와 특성을 규명해내고자한다. 일본양명학 연구 역시 마찬가지이다. 집주에 反하는 부분을 찾아내어 그 논리와 특성을 규명하고 근대화 과정의 특징을 찾아낸다.
❏<연도별 연구추진 전략> ❶ 1차년도 (2018.07~2019.06): 1차년도에는 주로 한국양명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 조선의 관료와 재야의 선비들 모두 양명학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역설적으로 보자면 조선에 양명학이 존재했었음의 傍證이다. 따라서 양명학 비판문헌을 조사하여 그 목록을 만들고, 그 문헌들을 선별・발췌・분석해봄으로써 양명학 비판과정에서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자학과 양명학이 실학으로 연계되는 역학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주자학・양명학・실학이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작동되었던 함수관계를 찾아볼 것이다. ❷ 2차년도 (2019.07~2020.06): 2차년도에는 주로 일본양명학 계보를 찾아보고, 일본에 양명학이 전래되는 시기와 수용과정에서의 특징들을 조사・연구한다. 일본 역시 17~18세기에 이르러 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는데, 이와 관련하여 일본 양명학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시코쿠(島)의 마쯔야마를 탐방할 계획이다. 일본양명학과 관련한 각종 문헌들을 전수조사하고 자료들을 수집하여 목록을 만들 것이며, 양명학과 관련한 인물 및 유적지・사진자료 등을 완성시킬 계획이다. 2차년도에 우리 연구진은 일본 양명학자들이 동일한 經文에 대하여 왜 다른 註釋 양상을 보였는지, 그 내용과 이유를 밝혀보는 데에 천착할 계획이다. 임진~정유재란 때, 조선으로부터 일본에『양명문록』이 유입되면서 일본에서는 다양한 경전 주석이 등장하게 된다. ‘藤原惺窩(후지와라 세이카)’의『大學要略』은 양명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이므로 이에 대한 집중연구가 진행될 계획이다. 2차년도 연구대상 인물로는 총 9人을 선별하였는데, 이들의 모든 경전주석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한다. ❸ 3차년도 (2020.07~2021.06): 3차년도는 1차~2차년도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 연구진의 아젠다를 최종적으로 종합・정리하는 단계이다. 조선과 일본에 전래되었던 양명학은 과연 근대화 과정에서 어떤 영향과 역할을 자임하였고, 역사성과 지역성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어떠한 지평을 열어주었는지에 대한 探討를 통하여, 근대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물결에서 정치・교육・문학(서민문학) 등의 방면에 어떤 양상으로의 창신과 변용을 가져다주었는지가 우리 결과물의 최종 목표가 될 것이다.
❏<중점 추진전략과 연구방법> 우리 연구는 철저하리만큼 ‘문헌’ 자료에 대한 분석을 第一의 연구방법으로 설정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양명학 원류를 ‘역사성’과 ‘지역성’의 범주 안에서 살펴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文獻에 대한 분석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에서의 양명학 비판 인물 18人 우선 선별함) 이러한 文獻 연구방법은 일본양명학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일본은 朱子의 集註에 대한 주석 양상을 다르게 보였다는 특징을 규명해나갈 것이다. (일본양명학으로 거론되는 대표 9人을 우선 선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