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우리는 도덕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신율적인 도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틸리히에 따르면 도덕과 성령은 동일한 실재가 아니다. 도덕은 도덕이고 성령은 성령이다. 하지만 도덕과 ...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국문 초록 (Abstract)
이제까지 우리는 도덕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신율적인 도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틸리히에 따르면 도덕과 성령은 동일한 실재가 아니다. 도덕은 도덕이고 성령은 성령이다. 하지만 도덕과 ...
이제까지 우리는 도덕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신율적인 도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틸리히에 따르면 도덕과 성령은 동일한 실재가 아니다. 도덕은 도덕이고 성령은 성령이다. 하지만 도덕과 성령은 종교적인 경험이나 신학적인 진술에 있어서는 상호의존적이다. 도덕은 성령을 요청하고 성령은 도덕을 극복한다. 도덕은 희생이나 도덕법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모호성들 속에서 성령을 요청하고, 성령은 새로운 존재
의 힘 속에서 희생과 도덕법의 모호성들을 치유하고 극복한다. 말하자면, 실존과 본질의 분열 속에 있는 인간의 생명은 모호한 희생과 모호한 도덕법 속에서 모호하지 않은 생명을 요청한다. 그리고 성령은 인격의 중심을 신적인 중심 초월적인 통일성으로 이끌어감으로써 곧 인격의 자기초월 속에서 실존과 본질의 재결합을 창조함으로써 단편적으로나마 모호하지 않은 인격적인 자기통전을 구현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틸리히의 윤리학은 도덕과 종교적 실체의 통일 속에서 도덕의 물음을 극복한 신율적인 윤리학이며, 성령에 의해서 창조된 사랑 속에서 도덕의 물음을 극복한 아가페의 윤리학이며, 실존과 본질의 재결합 속에서 도덕의 물음을 극복한 은혜의 윤리학이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신율적인 윤리학은 무엇보다도 비신율적인 윤리학을 심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실 비신율적인 윤리학은 법의 윤리학이다. 법의 윤리학은 소외를 극복할 수 없고 오히려 법 자신에 대한 증오감만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 결과 비신율적인 윤리학은 동기유발의 힘과 구체적 상황에서의 선택의 원리와 도덕적 명령의 무조건적인 타당성을 나타낼 수 없다는 점에 의해서 스스로 심판 받고 있다. 따라서 틸리히는 도덕의 모호성은 오직 신율적인 윤리학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틸리히는 생명의 자기통전의 모호성 곧 희생이나 도덕법의 모호성은 실존과 본질의 재결합이 주어질 때만 곧 성령에 의해서 창조된 사랑(아가페)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틸리히에게 있어서 사랑은 법이 아니고 현실이며 당위의 문제가 아니고 존재의 문제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인간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고 성령의 현존의 창조를 의미한다. “사랑은 성령의 현존의 창조이다. 사랑은 은혜이다.
목차 (Table of Contents)